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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우리말로“말은 하느님의 마루” - 우리말에서 듣는 하늘의 소리 (2)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12.22 17:17

인간은 이미 형성된 세계 속에 태어나서 그 세계 속에서 통용되는 삶의 문법을 배우며 거기에서 지켜지고 있는 삶의 규칙과 사유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고 사유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국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칼 오토 아펠(Karl Otto Apel)은 모국어로 결속되어 있는 언어공동체가 의사소통을 위한 선험적 토대를 이루는 전제조건이라고 보았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오로지 사유, 인식 그리고 행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1)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우리는 앞에서 논리적인 사유능력 역시 언어를 통해서 습득됨을 보았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란 어떤 보편적인 이성적 언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면서 습득하는 자연어, 즉 모국어이다. 따라서 한 민족의 언어에는 그 민족의 세계관이 갈무리되어 있으며, 민족 구성원은 모국어를 통해 이 세계관 속으로 교육되는 것이다.

삶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그 언어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유내용의 동일성과 사유의 동종성을 보장한다. 우리는 모국어를 사용함으로써 같은 사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나누면서도 서로를 연결해 주고 있는 의사소통의 같은 지반 위에서 열린 마음으로 논쟁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사유의 깊이가 철학이나 사상의 깊이를 결정한다면 개념적인 차원에서 언어의 깊이와 넓이가 사상을 규정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절대중심의 시대에서 다극화한 다중심의 시대로 가고 있는 탈중심의 시대에 각자가 서로 다른 세계와 문화에서 중심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 그래서 그러한 중심잡기 위에서 가능한 억압받지 않는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의 토대 내지 전제는 ― 오직 그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 곧 모국어이다.

▲ 언어의 나무 ⓒGetty Image

언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주장을 정리할 수 있다.

① 언어는 세계를 보는 눈이다. ② 언어는 민족을 묶는 끈이다. ③ 언어는 사고방식을 형성해주는 틀이다.④ 언어는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는 무의식이다. ⑤ 언어는 정서의 공감대이다. ⑥ 언어는 자주와 자율의 바탈이다. ⑦ 언어는 자유와 평등의 조건이다. ⑧ 언어는 학문[과학]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⑨ 언어는 사람 사이의 다리이다.  ⑩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은 철학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단순히 이론적 앎만을 뜻하지 않고 실천적 앎[능력, 살아감, 삶]도 함축한다. 철학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공동체적으로 행위하는 주체들이 전개해 나가는 비판적이고 논증적인 상호이해의 과정”(2)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철학을 철학함으로서 이해할 때 철학의 주체적 연관, 상황적 연관, 실천적 연관이 부각된다. ‘우리말로 철학하기’는 우리말로 철학해야 하는 우리들이 처해 있는 철학함의 상황 연관과 주체 연관을 강조하기 위해, 이론적 앎과 실천적 능력의 단일성 속에서 공동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철학함을 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화두’이다.

우리말로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

한글 학자 허웅은 우리글 한글의 의의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적는 데 실패한 우리 ‘한아비’들은 드디어 독자적인 글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것이 ‘훈민정음’, 즉 한글이다. 한글 창제의 동기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자주 독립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적 정신과, 국내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다 글자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사상이 밑바닥이 되어 있다.”(3)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시대사적 현실을 의식하여 주체적으로 철학하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철학해야 한다는 데 대한 충분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우선은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숙고해야 할 점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 제목은 우리말에 대한 학문적 정리 작업의 요청과 그것을 마주보는 철학 측의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언어의 독특함과 구조적 특성을, 우리 언어가 변천해온 역사가 현대 언어학적․언어철학적 연구 결과에 힘입어 학문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 정리되어야 한다. 인간을 언어의 능력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듯이 우리 문화의 태동에 이미 언어적 사건은 전제되어 있다.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대화적 말함의 사건은 우리 역사를 걸쳐 지속적으로 있어 왔겠지만 이것이 글자로 기록되어 본격적인 의미의 문화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글의 형태에서 한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는 필연적으로 한자문화권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철학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언어와 사유의 관계, 언어와 사상의 연관성을 주목해야 한다. 선조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여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러한 맥락에서 고민하고 사색하여 얻은 결과를 글로 남겨 놓았다. 이렇듯 철학 원전들은 그 자체로 분리되어 따로 놓여 있지 아니하고, 물음, 의심, 주장 또는 확인을 표현하면서 그 행위의 주체와 그 주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4)

인간이 깨닫는 문제의식이란 구체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목표설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철학적 문제도 항상, 일정한 목표설정에 맞추어 본, 어느 누구를 위한 문제이다. 문제 그 자체, 다시 말해 묻는 사람 없는 물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로써 표현된 철학적 주제나 대상이란 관련된 주체들에서 분리되어 다루어져서는 안 되고 그 당시의 언어적 상황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이때의 언어는 관련된 주체들간의 상호이해 가능성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상호이해라는 목적을 위한 행위로서 이해될 수 있다. 언어는 곧 세계를 보는 인간의 시각이다. 철학의 문제들을 담고 있는 철학적 명제들의 언어적 [해석학적] 상황을 간과하고서는 특정한 사상이나 철학을 올바로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올바른 한국철학의 정립을 위해서는 주어진 상황에서의 우리말과 사상의 연관성이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되어야 한다.

셋째로, 언어에 대한 이러한 영향사적 의식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현재 우리들의 철학함의 지평을 열어 밝혀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말’로 쓰여지고 풀이한 철학사전, 개념사적으로 연구 조사하여 정리하고 우리의 철학함의 시각에서 분류 해석한 철학사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사적 관점에서 주체적 문제 발견과 해결의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국철학사의 정리와 서술이 시급하다. 그리고 우리 고전들을 포함한 모든 철학 원전들의 우리말 번역이 절실히 요청된다.

넷째로 ‘우리말로 철학하기’는 철학함 자체의 대상[주제] 연관, 주체 연관, 실천 연관의 뗄 수 없는 관련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부딪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말로 사색하고 모색한 이론으로서의 철학에 관심을 쏟아서 우리의 시대적 아픔과 분위기 그리고 정신을 파악하고 표현한 철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을 이렇게 이해할 경우 다른 인문학과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역사학, 국어국문학, 사회학 등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우리말로 학문해 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에서의 ‘한국화’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예술에서 ‘한국화’도 구현되어야 한다.

미주

(미주 1) 참조 Karl-Otto Apel, Transformation der Philosophie. Band 2: Das Aprioi der Kommunikationsgemeinschaft (철학의 변형. 제2권: 의사소통 공동체의 선험), Frankfurt a.M. 1976.
(미주 2) 참조 이기상, <고교 철학 ― 무엇을, 왜 가르칠 것인가?>, 『철학교육연구』제3권 제8호(1987), 19쪽. E. 마르텐스, 『철학교육』, 이기상 옮김, 서광사, 1988, 27쪽 이하, 53쪽 이하.
(미주 3) 허웅, 『한글과 민족 문화』, 교양 국사 총서 1,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1974, 3.
(미주 4) 참조. 이기상, <고교 철학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철학교육연구』제3권 제9호(1987), 15.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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