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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염려하는 대신(아모스 3:1-15)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 승인 2019.12.24 15:26

성경에서 예언자는 예지자(혹은 점치는 사람)와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원인을 밝히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6절).

앞으로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알아맞히고 묘사하는 일은 예언자에게 요구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시를 쓰듯이 두리뭉실하게 묘사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에서 예언이 들어맞았느냐 그렇지 않았냐는 예언자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권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앞일과 일치하지 않는 예언이 있습니다. 12절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721년에 아시리아에게 멸망한 이후로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다시 회복되지 못한 것입니다. 점쟁이로 치자면 틀린 점을 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백성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Getty Image

하지만 아모스는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대한 예언자로 대접을 받고, 그의 예언은 성경의 일부로 인정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고 바르게 전했기 때문입니다(8절). 그러므로 예언자의 기능은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고 그분의 뜻을 바탕으로 인생의 중심을 세워주는 ‘대언자’의 역할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14:4-5)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깨달음을 남과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언자의 사명입니다(8절).

점을 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한 그 사람은 자유인으로 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영적인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의 메시지가 단순한 예지적 ‘알아맞힘’과 다른 점은, 앞일을 두려워하는 마음 대신 모든 일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점입니다. 앞날을 염려하는 대신 지금 내 삶을 변화시키고, 지금 나의 언행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율하도록 하는 것이 예언자의 기능이라는 말씀입니다.

점쟁이로 치자면,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앞날을 궁금해하지 않게 만들어서 스스로 손님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인생사에 대한 두려움 대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슴에 품게 하고, 자유롭고 진실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역할이 예언자의 역할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언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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