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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반회장에 당선되다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1)
한석호 기획실장(전태일 재단) | 승인 2019.12.28 17:06

나에게는 딸이 있다. 딸의 고등학교 3년, 딸과 나는 산에 다녔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총 38회의 산행이었다. 많은 산행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은 대학 입시에 연연하는 고등학생이었다. 많은 산행이었다. 우리는 수능시험 한 달 전에도 산에 갔다.

동반산행을 하면서 나는 딸의 고교 3년을 기록했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부제는 고교생 딸과 함께한 입시산행 3년이다. 책을 출판한 뒤,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연재했다. 연재는 2학년에서 멈췄다. 대학 입학과정을 연재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에큐메니안에서 다시 연재한다. 3학년부터다.

3학년 1학기 반회장에 당선되다

열흘 전 무렵 퇴근했을 때였다. 아내가 반색하며 말했다. “누리가 반 회장에 뽑혔어. 후보가 셋인데 누리가 15표 얻었대.” 제법 표를 받았다. 반원은 25명이랬다. 3학년에 올라와 반이 새로 편성됐고, 2주가 지나 신임 회장을 뽑은 거였다.

내가 딸에게 물었다. “자천이야? 3학년인데 공부에 지장 없겠어?”

“후보 셋 다 다른 애들 추천으로 나갔어. 3학년 땐 투표 당일 그 자리에서 추천하고 뽑아. 고3은 학생회 활동을 거의 안 하니까 괜찮을 거야.” 딸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애가 인기가 많은가 봐.” 아내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다시금 딸에게 물었다. “당선 요인이 인기가 좋아서야 유세를 잘 해서야?”

“몰라, 그냥 뭐.” 말하기 쑥스러운 듯했다. 더는 묻지 않았다.

딸의 초등 고학년 무렵이었다. 반장 선거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고한 적이 있었다. 딸은 애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게 싫다고 했다. 부끄럽고 떨린다 했다. 낙선 두려움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였나.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도 기회가 왔는데 마다했다. 반의 2학기 부회장 후보로 추천 받았는데, 딸아이는 반원들이 자신에게 투표하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다른 친구를 지목해 뽑히도록 했다. 그랬다가 2학년이 되더니 달라졌다. 딸은 2학기 반 부회장 경선에 임했다. 제 발로 출마한 거였다. 요번처럼 후보가 셋인데, 당선됐다.

고3은 활동을 거의 안 한다 했으나, 딸은 지금 총학생회 선관위원이 되어 선거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선거는 공명정대하게 관리해야 한다.” “아빠, 그건 당연한 것 아냐?”

드디어 고3이 되었다. 입시 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하면 정신 못 차린다고 꾸지람 듣기 십상인 대한민국 고3이었다. 하여 딸은 여느 고3처럼 잠을 충분하게 못 잤다. 친구들과도 마음껏 놀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학교에 남아 야자를 했다. 몇 차례 밤도 지샜다. 그러나 딸은 입시에만 쫓기지 않았다. 활동 부담이 적다곤 하나 반회장으로 선출됐다. 조만간 아빠랑 또 산에 갈 거라고 했다.

용산FM ‘엄마와 딸의 동상이몽’도 아직까지 매주 진행했다. 밤엔 친구와 통화했고 SNS로 대화했다. 심심찮게 TV에도 붙어 앉았다. 친구들이 부르면 명동이든 어디든 달려가서 먹고 놀고 깔깔거릴 태세가 늘 되어 있었다. 그래 놓고는 1학기 기말고사에서 목표 등급이 안 나오면 스트레스 받을 게 분명했다. 입시가 코앞에 닥치면 모든 활동을 접을 가능성도 컸다. 그럼에도 어쨌든 지금까진 대한민국 고3 틀에 갇혀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나와 할매는 고3 가족이었다. 아이가 입시에만 전념치 않으면 혼쭐내거나 등짝을 후려쳐서라도 몰아세운다는 대한민국 고3 부모고 할머니였다. 우리도 여느 고3 가족처럼 잔소리하고 옥신각신했다. 그러나 우린 학생회 하는 것을 기뻐했다. 아내는 여전히 딸을 붙들고 용산FM 방송을 진행했다. 나는 호시탐탐 산행을 별렀다. 딸이 활동을 접겠다면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까지의 우리는 아이 입시를 방해했다. 청소년기의 풍부한 경험은 입시 공부 못지않게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고3은 삶 자체가 입시 감옥에 갇힌 죄수였다. 그냥 놔둬도 충분히 힘든 시기였다. 감옥도 모자라 징벌방에까지 처넣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한석호 기획실장(전태일 재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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