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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아(성인숭배)와 라트리아(예배)의 차이성령과 성경 (4)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12.28 17:10

칼빈은 12장에서 왜 우상숭배가 배척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적극적으로 피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상과 구별되며 하나님만이 완전한 예배를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 두 장에서 말한 기본적인 생각을 상기시켜줍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냉냉한 사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수반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서, 칼빈은 제2권 8장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합니다.

“성경이 유일신을 말할 때에는 언제나 그 명칭만 가지고 논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른 것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순수한 종교와 미신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명백해진다”(I. xii.1).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인간이 고안해낸 허구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과 경건’과 ‘우상숭배’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 가톨릭의 성인들을 표현한 성화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이 성인숭배(dulia)와 최고의 예배(latria)를 구별하여, 형상물에게 표하는 존경을 dulia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에 반대하여, 이러한 구별은 단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죽은 자들과 천사에게 드려도 아무 죄가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고안해낸 것일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사실 그들이 성인들에게 돌리는 영광은 실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배(latria)가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는 것은 추호도 상처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변명한다는 것입니다(I.xii.2).

칼빈은 성경에는 이러한 구별이 자주 등한시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깨우침을 받기 전까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회상시키는 자리에서,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dulia) 하였더니”(갈4:8)라고 말했던 사실  상기시켜줍니다.

바울이 여기서 ‘라트리아’(latria)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미신이 변명될 수 있겠는가? 분명히 그는 사악한 미신에 ‘둘리아’(dulia)란 명칭을 붙임으로써 ‘라트리아’(latria)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둘리아’(dulia)를 정죄한다.

다른 한편, 칼빈은 요한이 결코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을 천사에게 돌리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가 천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로 천사의 책망을 받았던 일을 회상시켜줍니다(계 19:10, 22:8-9).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특히 설 같은 명절에 부모님과 일가, 친척, 주위의 어르신들께 엎드려 절하는 그러한 관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세속적인 경의에 불과하며, 따라서 용인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칼빈이 경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인간에 대한 예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사실을 고넬료를 통해서 해명해줍니다(행10:25이하).

칼빈이 보기에, 고넬료의 경건은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최상의 경외를 드릴만큼 미숙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 대신에 그를 예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의 그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만류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칼빈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인간에 대한 예배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속하는 것을 무분별하게 피조물 에게 옮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주석합니다. 칼빈은 이 부분을 이렇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그의 영광을 티끌만큼이라도 손상시켜서 는 안 된다는 것과, 그에게 속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I.xi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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