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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많이 불편하시길!”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1.02 16:50
1 그 뒤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 유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대 지방에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2 그런데 유대 사람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니, 3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형님은 여기에서 떠나 유대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4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5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8 너희는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거라. 나는 아직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9 이렇게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요한복음 7:1~9/새번역)

예수님의 형제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다른 측면입니다. 바로 그 형제들의 불신입니다. 형제들조차 주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믿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왜 숨어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인정을 받기 위해 가신 길이겠습니까. 형제들의 철저한 몰이해, 사실 당대에 주님을 이해한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모든 것을 걸고 쫓은 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길, 이해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고 죽이려드는 그 길을 홀로 가셨습니다.

▲ Johnson Tsang, 「Under the Skin」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한 후에 말했습니다. “내게는 훌륭한 음악, 훌륭한 바이올린, 훌륭한 활이 있습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한데 모아 놓고 방해가 되지 않게 비켜서기만 하면 됩니다.”(앤소니 드 멜로,『개구리의 기도1』,176) 주님도 비켜서기만 하신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뿐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시욕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셨을 것입니다. 인정욕이 목적이었다면, 세상이 죽이려드는 길을 가실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이 미워하고 죽이려드는 이유를 주님 직접 밝히십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7절b) 예수님 말씀하시는 세상은 누구입니까? 당대의 종교 권력자들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방식이 절대적이라 굳게 믿었던 이들입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주님을 미워하는 세상은 누구일까요?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일까요? 가장 열심히 주님을 섬긴다는 기독교 권력자들은 아닐까요? 그들에게 권력을 실어주는 수많은 신앙인들은 아닐까요?

찬양 받고 예배 받는 예수님만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미움 받지 않는 예수님이 진정 그리스도 주님이실까요? 이 땅이 이천 년 전과는 전혀 다르게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면, 역시 미움 받으실 것입니다. 악에 빠진 권력자들의 눈에 가시 같고, 그들에게는 지극히 위험한 분이실 것입니다. 교회의 악함과 위선을 증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착하고 순종적이기만 한 신앙이 가능할까요? 주님과 함께 미움 받아야 자연스럽습니다. 주님과 함께 위험하고 불편한 삶이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주님께서는 불편을 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불편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신앙, 주님이 불편해야 자연스럽습니다. 당대의 많은 신앙인들에게 그러셨듯이 주님께서 불편하게 하실 것입니다. 혹시 전혀 불편하지 않다면, 그 주님은 대체 누구신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가 오고 가는 때입니다. 새해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기를 빌어준다면, 어떨까요? “새해 주님 더 깊이 만나셔요,” 그 축복의 인사에는 이런 의미가 담길 것입니다. “새해 많이 불편하시길~!”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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