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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심판의 이중주(아모스 6:1-14)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 승인 2020.01.03 15:40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태평성대를 자랑하며 축배를 들고 있었지만, 성령에 힘입어 예리한 눈으로 시대를 읽어낸 예언자 아모스가 보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멸망에 이르는 안일함이었습니다. 1절에서 시온의 ‘교만(솨아난, שַׁאֲנָן)’이 곧 안일함이고, 사마리아인들의 ‘마음 든든함(빠타흐, בָּטַח)’도 그들의 신앙적인 안일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 시대에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풍요는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보잘 것 없는 풍요였습니다(2절). 특히 블레셋의 도시들은 넓은 영토를 지배하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보다 발전된 문명과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축배를 들며 사치를 일삼는 것은(4-6절) 사실은 주제넘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중대한 신앙적 잘못은, 그들이 누리게 된 풍요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고 자신들이 이룬 것이라고 떠벌린 점이었습니다(13절). 이스라엘은 교만 때문에 신앙적으로 안일해졌고, 마음이 풀어져서 긴장감을 잃게 되자 포악해지게 된 것입니다(3절).

▲ 모든 풍요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잊은 백성에게 남은 심판이었다. ©Getty Image

신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인정하고 감사하는데,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자들이 감사를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죄악입니다.

무엇보다 교만해진 사람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고, 남들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포악한 갑질맨(혹은 갑질우먼)이 되어버리고, 세상의 질서를 왜곡하는 불의한 미꾸라지로 살아가게 됩니다(12절).

필요 이상으로 많은 소비를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감사는 잊었으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감각적인 쾌락)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꼭 맨 앞으로 달려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역주행하고 있다면, 그냥 멈춰서서 방향만 돌려도 시대의 선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과소비와 쾌락주의, 성공지상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에 가장 앞선 사람은 절제와 겸손을 연단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단어가 알려주는 지혜가 되겠습니다.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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