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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없는 자전거명상자전거 (10)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 승인 2020.01.03 15:52

(1)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을 자벌(自罰)이라고 한다. - 내벌(內罰)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하는 기도문이 그 예다.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을 타벌(他罰)이라고 한다. - 외벌(外罰)이라고도 한다.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이 한국 사회 모순의 원인을 미제국주의와 군부독재, 독점자본으로 보고 투쟁한 것이 그 예다. 지금도 NGO, 사회단체, 노조는 이런 방식으로 운동한다.
  
실업과 빈곤 문제를 보자. 내벌이 강하면 실업, 빈곤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어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외벌이 강하면 실업, 빈곤이 정부와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어 투쟁에 나선다.

그러니까 내벌과 외벌은

이런 분위기랄까.

종교 쪽에서는 내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 “내가 마음을 바꾸면 됩니다.” 사회단체나 노조는 외벌 중심이다. - “정부가 문제입니다.” 종교는 너 자신을 바꾸라고 말하고 사회단체나 노조는 세상을 바꾸라고 한다.

(2)

자전거를 오래 타면 다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손목과 엉덩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엉덩이 고통이 극심하다. 이것을 안장통이라고 한다. 안장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다. 

(1) 안장을 바꾼다.

➀ 용하다는 안장으로 바꾼다. 안장 가운데 구멍이 나있는 ‘전립선 안장’으로 바꾼다.

➁ ‘전립선 안장’은 정확히는 ‘전립선 보호 안장’이다. - 전립선을 보호하기 위한 안장 (반전)
➂ 여기서 전립선(前立腺)의 ‘선’이라는 것이 줄(線, line)이 아니라 샘(腺, gland)이다. (반전) 그래서 전립선 대신 전립샘이라는 말도 쓴다. 전립샘은 밤톨 크기의 신체기관이다.
➃ 그런데 자전거를 탈 때 통증을 느끼는 곳은 전립샘이 아니라 불알과 똥구멍 사이다. (반전)

전립선은 신체 안쪽에 있어서 자전거를 탈 때 직접 눌리지는 않는다.

➄ 그러므로 보호해야할 것은 전립선이 아니라 회음부이며, 전립샘은 깊은 곳에 있어서 안장에 구멍하나 있다고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반전)

프로 사이클선수들은 중앙에 홈이 있는 안장을 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많다. 사람의 엉덩이와 골반은 생긴 것이 각각이라 비싼 안장을 사더라도 자기 엉덩이와 궁합이 안 맞으면 소용없다. 마치 안경처럼.   

(2)  안장에 젤, 실리콘 같은 재질로 된 커버를 덧씌운다.

짧은 거리라면 유용할 수도 있겠으나 긴 거리는 필요 없다. 오히려 다리의 움직임을 제약해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왜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이 안장커버를 안 씌우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나 공통 견해는 장거리 주행에는 로켓처럼 날렵한 안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3) 패드바지를 입는다.

유용하다. 그러나 이 바지는 자전거를 승차 했을 때는 별 문제 없지만 하차하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장거리 달리면 어차피 아프다. 이런 바지를 입으면 좀 천천히 아플 수는 있다.

(4) 타면서 종종 엉덩이를 들어준다.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사실 엉덩이를 의식적으로 들려하지 않아도, 엉덩이를 무의식적으로 들게 된다. 아프니까.  

이런 방법들은 오답이거나 뭔가 부족한 답이다. 그러면 정답은 무엇일까? 안장통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5) 그냥 단련하는 것이 답이다.

많이 타면 엉덩이가 단련되어 덜 아프다.

프로 사이클리스트들도 안장통을 느낀다. 단지 일반인보다 늦게 통증이 찾아오며 일반인보다 조금 덜 아플 뿐이다.

권투선수라고 맞아도 안 아프겠는가? 마라톤 선수는 달려도 숨차지 않고 다리도 안 아픈가? 그럴 리가 있나. 훈련으로 인해 고통이 늦게 찾아올 뿐이다.

우리는 자벌과 타벌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세상을 바꿀 것인가, 나를 바꿀 것인가? 어떤 것이 바른 방법인가? 사제(司祭)인가 노조(勞組)인가?
정답은 없다.

그러나 자전거 안장통에 관한한, 답이 있다.

단련이다. 많이 타라. 고통에 익숙해지라. 그러면 덜 아프다.

고통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습니다. 
Tribulation brings about perseverance; 
and perseverance, proven character; and proven character, hope.
- 바울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s1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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