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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을 통해 신학을 배운다‘칼 라너’의 『칼 라너의 기도』(복있는 사람, 2019)
이정훈 | 승인 2020.01.04 17:11

“기도”, 수십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매주일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외울 때마다 “이것은 입으로 해야 할 기도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할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도문 한 구절 한 구절에 무엇이 보태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기도문은 ‘완벽’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그저 이 기도문에 합당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를 주제로 쓰인 책들은 읽지 않는다. 그대로 따라 읽기만 해도 저절로 기도가 되는 책들도 참 많지만 필자 개인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뿐더러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데 입으로 하는 기도가 무엇이 그리 대수겠는가” 하는 입으로 잘 하지 못하는 기도에 대한 변명만 늘어난다. 정말 게으르고 악한 종의 변명일 뿐이다.

대신학자의 기도문이자 신학 해설집

이런 필자에게 2019년의 마지막에 출판된 따끈한 책이 한 권 던져졌다.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필자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책이었다. 학문적 배경 자체가 ‘로마가톨릭’이지만 로마가톨릭을 넘어 개신교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칼 라너”(Karl Rahner)의 『칼 라너의 기도』(복있는 사람, 2019)라는 책이다.

로마가톨릭의 대신학자 칼 라너가 평생을 가다듬은 기도문 37편이 들어 있다. 칼 라너의 대한 이야기는 옮긴이인 손성현 교수가 “옮긴이의 글”에 잘 수록해 놓아서 생략하지만, 한 부분만 언급하고자 한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제자, 수많은 추기경·주교·신학자들의 스승, 신학 전통과 현대 사상의 탁월한 중재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신학 자문 위원으로 활약하며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인물, 논쟁적인 글로 로마 교황청의 사전 검열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수많은 지성의 감탄을 자아낸 웅숭깊은 저술의 달인 …, 교회와 신학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하여간 칼 라너의 『칼 라너의 기도』 책을 읽고 있으니 기도문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흡사 기도문을 가장한 ‘교의학’(Dogmatik, 영미 계통에서는 조직신학이라고 한다)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칼 라너 교수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필자로서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을 가다듬은 책이라고 하니 칼 라너의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맞겠고, 이 책의 큰 분류는 이렇게 되어 있다.

I. 하나님 앞에서
II. 그리스도와 함께
III. 성령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설명하는 교의학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또한 큰 주제 아래 작은 제목으로 표시된 기도문에 대한 제목들도 교의학에서 다룰 법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II. 그리스도와 함께” 아래 묶인 기도문의 제목들을 몇 개 나열하면, ‘그리스도, 모든 것 안에 계신 모든 것’,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말씀’, ‘올리브 산의 고난이 지금 우리 안에 타나나는 것에 대하여’, ‘주님의 승천’, ‘당신을 따르는 길, 이웃 사랑’, ‘하나님의 말씀, 나를 향한 언약’ 등이다.

기도문의 내용도 감성이 가득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기도문들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의 기도문인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말씀”(82-99) 가운데 “네 번째 말씀”,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제 당신께 죽음이 다가옵니다. 그 죽음은 육체적 삶의 종말, 구원과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최후, 파괴와 곤경, 상상할 수 없이 깊은 수렁입니다. 죽음이 다가옵니다. 모든 것을 다 비워 내는 죽음, 지독한 무기력,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져 내린 폐허. 그 앞에서는 모든 것이 뒤로 물러나고 모든 것이 도망가 버려서,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황량함뿐입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죽음의 황량함. 그 밤, 정신과 감각의 밤, 그 공허,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마음의 공허, 그 순간에도 당신의 영혼은 여전히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기도 속에서 고통으로 다 타 버린 마음의 비참한 폐허는 하나님을 향한 유일한 기도였습니다. 아, 고통의 기도, 철저하게 버림받은 기도, 가장 밑바닥의 무기력한 기도, 버림받은 하나님의 기도, 이 모든 것은 기도 이전의 기도입니다.”(91)

어떤 교의학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만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철저한 육체적 죽음이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곳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고도로 이성적인 교의학 책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마음을 울리는 표현들과 함께 너무 분명하게 기록해 놓았다. 오히려 마음으로 접근하는 표현들이기에 신학적 언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세 번째 말씀”인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아들이여, 보라, 네 어미니다.”(요 19:26-27)에 이런 해석이 들어있다.

“그러나 당신의 십자가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느낀 것은, 아들의 죽음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한 어머니의 외로운 고통,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로 거기 서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바쳤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죽음을 맞으시는 순간에도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녀는 십자가 아래 교회였습니다. 하와의 후손이었습니다. 여인의 아들과 뱀이 벌이는 최후의 전투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여인을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셨을 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주신 것입니다.”(89-90)

로마가톨릭의 마리아론 혹은 교회론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서술한 것이다. 개신교인으로 로마가톨릭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주 좋은 개론서로 사용해도 되겠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는 차후에 생각하고 로마가톨릭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칼 라너

기도문이자 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다룬 책으로는 백점 만점에 80점이라는 박한 점수을 주고 싶다. ‘칼 라너’라는 대학자의 쓴 기도문대로 기도하겠다는 생각은 애저녁에 접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도문들을 읽다가 보면 굉장한 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책을 이렇게 평가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 되지만, 오히려 이 평가가 이 책의 찬사가 아닐까 한다. 칼 라너의 기도문을 따라 읽다 보면 감성과 이성을 자극한 신학적 언어가 가득차 있는 책임을 깨닫게 된다. 매마르고 신학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는 두툼한 교의학 책들의 내용들이 기도와 함께 다가옴을 느낀다.

필자 스스로도 누군가에게도 권하지 않는 기도에 관한 책을 이렇게 권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신학적 사고와 기도가 함께 하는 이 책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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