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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해석학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1.06 00:08
14 명절이 중간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셨다. 15 유대 사람들이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을 갖추었을까?” 1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17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18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가운데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어찌하여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귀신이 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이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는데, 너희는 모두 놀라고 있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법을 주었다.-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비롯한 것이다.-이 때문에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준다.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몸 전체를 성하게 해주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분개하느냐? 24 겉모양으로 심판하지 말고, 공정한 심판을 내려라.”(요한복음 7:10~52/새번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출신, 학벌, 권위, 율법이라는 자로 재본 결론입니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15절)…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27절). …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수 있을까?(41절) … 지도자들이나 바라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믿은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무리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48절).” 절대로 그리스도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 갈릴리 출신(41절), 배움이 전혀 없는 무식한 자(15절),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저주 받은 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자(48절)로 규정했습니다. 자신들의 자(ruler)가 통치자(ruler)의 기준이라 착각합니다.

▲ Aaron A, 「Let Your Love Grow」

출신, 학벌, 권위, 율법이라는 척도는 그들이 두려워하며 욕망하는 것들이자,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입니다. 이 기준으로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사람도 측정합니다. 그리고 안다고 착각합니다. 안다는 착각이 종교적 진리와 엮일 때, 절대적 잣대의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지를 인정해야할 이유입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때, 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 때, 하나님의 신비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제야 늘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신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니까 가만히 있어야 할까? 오히려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순종과 실천이 말씀의 진의를 깨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려 애써 봐야 압니다. 십자가를 짊어져 봐야 압니다. 용서하려고 몸부림 쳐봐야 압니다. 그제야 주님 주신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무력함과 사랑 없음을 압니다. 그제야 겸손히 주님 주신 영에 의지하게 됩니다. 자신 안에 임재하신 주님께서 사랑하게 하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님도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17절) 바리새파 사람들이, 율법학자들이 실천이 없었습니까? 누구보다 더 철저히 행했습니다. 율법의 규정과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실천하려 애쓸 때,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형식과 규정의 틀을 깨도 그것이 하나님 뜻임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이자 진리임을 체험합니다. 두려워도, 모르겠어도, 힘에 부쳐도 따르려고 애쓸 때, 분별의 안목이 깊어집니다. 실천의 해석학, 순종의 해석학이 빛나는 순간, 바위 같은 자아가 깨지고 사랑이 결국 피어납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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