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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기름 부으심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1.09 16:30
18 어린이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으심을 받아,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의 적대자입니다. … 24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속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있으면, 여러분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은 그가 친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데,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 27 여러분으로 말하자면, 그가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 속에 머물러 있으니, 여러분은 아무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참이요, 거짓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28 그러므로 자녀 된 이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요한일서 2:18~28/새번역)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라지만, 마지막 때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이천 년 동안이나 계속. 지구 저편에서는 숲의 불바다가 꺼질 줄 모르고, 다른 쪽에서는 전쟁의 불바다를 예고합니다.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이 여전히 창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와 배타와 폭력을 자행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말세의 징조라면 늘 마지막 때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때는 늘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날을 끊임없이 내일이라는 가상 속으로 지연시킵니다. 그러나 실은 어제도 내일도 현재 속에만 존재합니다. 직선적 시간이라는 머릿속 그림이 없다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이 마지막 선택과 둘이 아닌 풍경일 것입니다. 지금 여기가 시작이면서 끝입니다. 시간에 대한 그런 진실에 깨어나면, 지금 여기에 새로이 태어나면서도, 마지막인 것처럼 살 수 있을까요?

▲ George Tooker, 「Stations of the Cross」(1984)

마지막 때가 계속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적대자를 분별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할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종말의 증거로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적대자는 누구입니까? 참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22절).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적대자이겠습니까? 지금 여기에서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참 사람으로 참 하나님을 살아내셨음을 부인하는 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부인하는 방식입니다. 혀로는 인정하지만, 손과 발이 부인한다면, 속기 쉽습니다. 유신론의 가면을 쓴, 은밀한 무신론의 덫입니다.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서, 하나님 죽은 것처럼 사는 일상이 더 무서운 무신론입니다.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전도하고 설교하는 무신론자가 더 무섭습니다. 성육신의 교리, 몸으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 소위 정통신학의 교리들은 인정하면서, 주님을 재물에, 성공에, 명성에 가져다 붙이는 이들이 더 무서운 적대자들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본 훼퍼) 살아야 하건만,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 겉모습이 너무나 신앙적이어서, 자신도 속아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적대자인지, 무신론자인지를 모릅니다. 주여, 주여 부르짖으며 주님 이름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루지만, 주님 모르신다고 하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도용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해결책으로 제시된 “기름부음” 역시 변질되었습니다. 이 은유는 너무 오염돼서 계속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메시야를 세웠던 몸짓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임재를 표현했던 비유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맥락에 이식되었습니다. 재정과 성공에 이식시켜 맘몬을 하나님으로 만듭니다. 기름 부으셔서 성공한다, 기름 부으셔서 거룩한 부자가 된다.… 주님도, 제자들도 이루지 못한 거룩한 부자를 기름 부음을 통해 욕망합니다. 기름부음은 주님 저항하셨던 정치종교권력의 구조악에는 침묵합니다. 기름부음으로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아니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권력의 이데올리기를 주님의 뜻으로 떠받듭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주님을 광야의 시험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상흔이 있어야만 주님이심을 도마는 알고 있었습니다. 도마의 의심에서 배워야겠습니다. 말세의 때 걷고 있는 자신의 길이 십자가의 상흔을 지녔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의 증거로 그만한 지표도 드뭅니다. 주님이신지 알아보듯, 주님의 길인지, 말과 혀가 아니라 그 삶의 손과 발로 알아봐야 합니다. 손과 발의 상처로 알아봐야 합니다. 말세의 때, 불바다 앞에서도, 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흔적을.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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