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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연방제 창안에 따른 북한의 종교인식 변화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8)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1.09 16:38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5)_‘민족’ 복권기(1980~1990)의 종교 인식(2)

A: 지난 연재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연재에서는 민족 복권기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의 배경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토론에서 대남비서 김중린의 민족주의 관련 발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김중린의 해당 발언은 ‘수령’ 김일성이 제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수령’ 김일성은 1980년 10월 10일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북과 남이 공동으로 천명한 숭고한 리념과 원칙에 기초하여 그리고 나라의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가장 빠르고 확신성 있는 조국통일방도를 찾아야 하며 적극적인 노력으로써 그것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우리 당은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하는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도는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북과 남이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해방 후 오늘까지 북과 남에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제도가 존재하여 왔으며 거기에서는 서로 다른 사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족적 단합을 이룩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면 어느 한쪽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북과 남이 제각기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화하거나 그것을 상대방에 강요하려 한다면 불가피적으로 대결과 충돌을 가져오게 되면 그렇게 되면 도리어 분렬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전 민족이 한결 같이 조국통일을 지상의 과제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사상과 제도의 차이가 통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으며 하나의 통일국가 안에 서로 다른 사회제도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결코 남조선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복종시킬 것입니다.

우리 당은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우에서 북과 남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 밑에서 북과 남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할 것을 주장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수령’ 김일성은 남과 북이 하나의 사상과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는 통일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다양한 사상이 용인되는 연방국가의 창립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북에서는 ‘종교’도 ‘사상’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된 연방공화국 내에 다양한 ‘사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양한 ‘종교’도 인정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향적인 입장의 변화는 북의 ‘주체사상’이 더 이상 남의 ‘종교’를 적대시 할 이유가 없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북은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과 북이 총선거를 통하여 ‘하나의 단일정부’를 구성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상에 근거하여 잠재적인 경쟁 상대로서 남의 ‘반동사상’의 일종인 ‘종교’의 허위성과 해독성을 널리 선전할 필요가 대두되어 북은 1970년대 내내 반종교운동을 심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령’ 김일성이 직접 ‘새로운 길’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을 제안한 마당에, 북의 주체사상 이론가들은 구태여 남의 유력한 사상조류인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할 이유를 찾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심하게 비판하였던 진보적 그리스도교 운동이 1970년대 내내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1980년대 들어서는 조국통일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목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종교’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할 요구가 북의 주체사상 이론가들 내에서 진지하게 제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의 종교 인식이 커다란 변화를 보이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해는 1988년입니다. 이 해에 평양에서는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건립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개신교 조직인 ‘조선기독교도련맹’과 구별되는 ‘조선천주교인협회’가 발족되었습니다. ‘조선불교도련맹’은 이 해부터 부처님 오신 날, 성도절, 열반절 등 중요한 불교 절기를 매년 기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8년 5월에 묘향산 보현사에서 거행된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는 이런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북의 언론은 1988년 5월을 기해 보현사의 대장경 보존고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의 번역이 완료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남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988년 2월 29일 이른바 ‘88선언’이라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제37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이 선언은 분단에 대한 교회의 죄책 고백, 민중의 참여 보장을 명시한 통일 원칙 제시, 분단 50주년인 1995년을 통일 희년으로 선포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내었습니다. 남 개신교의 이러한 움직임은 북의 종교 인식 변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북에서 종교 인식의 전향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 데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89년 6월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이 제안된 다음 해인 1981년에 1988년 하계올림픽의 서울 유치가 발표되었습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과 평양의 올림픽 공동유치를 위해 물밑에서 노력하였고, 1988년 1월에 북이 올림픽 불참을 통보할 때까지 올림픽 공동개최 제안이 유효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북에서는 세계적인 축제들을 앞두고 북의 종교시설들을 국제적인 기준에서 불편함이 없이 갖추어야 하는 요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단순히 외형적인 종교시설들을 갖추는 것을 넘어서 세계 각국에서 방문할 종교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원활하게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야 할 데 대한 요구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습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목전에 둔 이 시기의 다양한 조건들은 북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를 위한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민족화해와 통일 위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북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에 있어 화룡점정의 계기가 된 것은 문익환 목사, 임수경 수산나, 문규현 신부의 방북이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들의 방북을 계기로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이 변화하는 장면들과 그 결과로 생성된 주체사상의 새로운 종교 이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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