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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나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1.11 17:45

칼빈은 14장부터는 창조와 섭리의 교리를 진술합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연속적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지배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창조의 관념은 통치의 관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통치는 창조의 현실적인 의미를 규정합니다. 따라서 섭리의 교리는 창조의 교리에서 마지막 말을 장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칼빈은 두 개의 교리들을 잇달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나아가는 그의 접근방법을 보여 주고, 또한 그의 창조 교리의 맥락에서 인간론에 대해 최초의 윤곽을 기초하게 했습니다. 우선 창조의 교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선하심에 대한 가르침으로 명확하게 제시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에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신 후에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사물의 순서에서 인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해와 별의 운행을 조정하시고 땅과 물과 하늘에 는 생물로 채우시고 식량으로 풍부한 과실을 맺게 하실 때에, 앞을 내다보시며 열심히 일하시는 한 가족의 아버지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자신의 선하심을 보여주셨다(I.xiv.2).

이 구절은 창세기에서 자세히 언급되는 엿새 동안의 노동을 암시합니다. 인간이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의 창조와 함께 완성되었다는 의미로서 명료하게 이해됩니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창조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두드러진 표본”(xv.1)일 뿐만 아니라 또한 창조의 주요한 사용자이고 수익자입니다. 세계 안에 있는 만물은 그를 위해 만들어졌고, 이것이 여섯째 날에 그가 창조된 이유입니다(I.xiv.22).

칼빈은 또한 인간과 관련하여 영적 존재들, 즉 선한 존재(천사들)와 악한 존재(마귀들) 양쪽 모두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보이지 않는 영역들, 즉 영적 존재에 관해 말하기 전에, 하나의 주의사항을 말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성경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모든 교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모호한 문제에 대하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도록 겸손과 진실에 관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더욱이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건덕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내어 명상하도록 끊임없이 힘써야 하며, 호기심에 빠지거나 무익한 것들을 탐구하는데 마음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I.xiv.4).

칼빈은 디오니시우스의 『하늘의 천사계급』(Celestial Hierarchy)을 생각하며 이 말을 합니다. 칼빈은 이 책이 마치 저자가 하늘에서 직접 본 것을 기록한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를 대단히 교묘하고 예리하게 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은 대부분 서툰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신학자의 임무는, 말을 많이 함으로써 귀를 즐겁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확실하며 유익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양심을 강화하는데 있다.”고 말하며, 사도 바울을 예로 듭니다.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고후12:2) 바울도 이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본 그 은밀한 것을 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고후12:4).” 그러므로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을 토대로 천사들에 관해서 알기를 바라시는 것”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I.xiv.4).

그러므로 칼빈의 천사론은 철저하게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유용성의 개념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경이 가르치는 천사들이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모든 일을 실행하시기 위해 쓰시는 “하늘의 영”이라는 개괄적인 개념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천사들의 명칭을 하나하나 해설합니다. 천사들이 ‘천군’으로 불리는 것은(눅2:13), 근위병처럼 왕의 위엄을 장식하고, 때로는 지휘관의 지시를 기다리며 언제든 지시가 떨어지면 수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시고 집행하시기 때문에 “정사”, “권세”, “주관하는 자”로 불립니다(골1:16; 엡1:21; 고전15:24). 천사들은 ‘신들’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는데(시138:1), 이것은 그들의 사역과정에서 “마치 거울처럼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I.xiv.5).

그러나 칼빈은 성경이 “위로와 신앙을 강화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교훈에 강조점을 둔다.”는 것에 특히 주목을 합니다. 천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분배자요 관리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고, 우리의 길을 가리켜주고 인도해 주는 자들입니다(I.xiv.6). 개인이 자신의 ‘수호천사’를 두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성경의 증거를 살펴볼 때 의심스럽고, 사실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칼빈은 “한 천사만이 우리 각자를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천사가 한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지키고 있다.”(I.xiv.7)는 것이 성경적인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사는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I.xiv.10).

칼빈의 마귀론에 대한 표현방법이 또한 유용성의 개념에 근거해 있습니다. “성경이 마귀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것은 우리를 깨워서 저들의 술책과 계략을 경계하며, 따라서 이들 강력한 원수들을 정복하기에 충분한 힘 있고 강한 무기로 우리를 무장시키려는데 있다”(I.xiv.13). 칼빈은 우리와 싸우는 대적은 군주의 지배를 받는 “군대”(눅8:30)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의 머리이신 것과 같이 마귀는 불신앙의 무리들과 불경건 자체도 군주인 마귀를 두고 있습니다(I.xiv.14). 틀림없이 마귀도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마귀가 어떻게 타락했는지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헛된 사변을 경계하며 단 하나의 중요한 사실만을 강조합니다. 악마의 사악함은 본래적인 특성이 아니라 자발적인 그들의 타락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마귀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지식으로 만족하자고 제안합니다. “악마는 창조 시 본래는 하나님의 천사였으나 타락하여 자멸하였으며, 남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었다”(I.xiv.16).

그러나 마귀는 단지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을 뿐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의지와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I.xiv.17). 이 점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욥1:6, 1:12, 2:1, 2:6; 왕상22:20이하; 시78:49; 살후2:9,11).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결백하다거나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귀는 본래 사악한 존재여서, 매사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악함이 마귀를 재촉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신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지와 허락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능의 고삐로 잡아매고 제지하시기 때문에 그는(마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만을 행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I.xiv.17).

이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귀들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기 때문에, 신자들은 결코 사탄에 의해 정복되거나 압도당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들은 자주 근심에 빠지지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잃지는 않는다. 심한 타격을 받아 쓰러지기도 하지만 후에 다시 일어난 다. 상처를 받기는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다. 요컨대, 그들은 전생애를 통해 수고하여 마침내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I. xiv.18).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셨으며(히2:14), 교회를 해하지 못하도록 사탄의 모든 세력을 타파하셨기 때문입니다(I.xiv.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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