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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겨 있는 철학“말은 하느님의 마루” - 우리말에서 듣는 하늘의 소리 (5)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20.01.12 16:57

몸, 맘, 믐

우리말의 ‘ㅁ’은 모든 것이 모여 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말로 말놀이를 할 때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다. ‘ㄱ’에서 대표적인 중요한 말은 ‘가다’다. 모든 것은 남아 있지 않고 다 간다.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있다가 가는가일 뿐이다.

그런데 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다 없어져버렸을 것이다. 그러기에 가는 것이 있으면 나는 것이 있어야 한다. ‘ㄴ’은 ‘나다’다. 이처럼 가고 나고 가고 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세계다. ‘가온 찍기’는 가고 나서 가고 오는 그 가운데에 태극점[․]을 찍은 것이다. 이것이 ‘ㄱ․ㄴ[가온]’이다.

‘ㄷ’은 ‘ㄴ’에 덮개를 하나 씌운 것이다. 나서 되고 나서 되는 되풀이를 생각하면 된다. ㄷ은 ‘되다’며 되어 가는 것이다. 되어 가는 것을 강조하여 ‘됨됨이’라는 말도 생겨난다.

‘ㄹ’은 그야말로 ㄱ, ㄴ, ㄷ이 합쳐진 것이다. 가고 나고 되어 가는, 계속되는 모든 끊임없는 변화와 활동 그 자체를 뜻한다. 다석은 그러기에 ㄹ에 태극점[․]을 찍는다. 이것은 한자의 ‘中’과 같다고 하였다.

우리말에서 ㄹ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다 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알, 얼, 깔, 꼴, 일’ 등처럼 ㄹ이 들어가는 것들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살살, 솔솔, 탈탈, 털털’처럼 변화와 활동을 표현하는 부사에는 어김없이 ㄹ이 들어 있다. 변화가 모인 것이 ㅁ이다.

우리말의 ‘몸’에서 아래의 ㅁ은 땅을 모은 것이고 위의 ㅁ은 하늘을 모은 것이다. 우리의 몸은 하늘과 땅을 모은 것이다. 우리말 몸에는 ㅁ에 담겨 있는 활동하며 움직이는 움직임의 원리까지 간직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말의 닿소리를 가지고 한 말놀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오행(五行)이 들어 있다. ㅁ은 오행에서 흙[土]에 해당된다. ㄱ은 나무[木]에, ㄴ은 불[火]에, ㅅ은 쇠[金]에, ㅇ은 물[水]에 해당된다. 이렇게 한글 속에는 우리들의 고유한 삶의 철학이 들어 있다.

홀소리를 살펴보자. 모음은 우리말의 생명이고 그 시작은 아래아[․]다. ‘․’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빔 속에서 무언가 하나 막 생겨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서양 과학자들의 말을 빌린다면 빅뱅(Big Bang, 대폭발)이다. 무(無)에서 유(有)가 생성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이것은 하늘[天]의 세계다. 하늘인 이 태극점 ‘․’이 양 옆으로 움직이면 ‘ㅡ’가 되고, 그것은 땅을 말한다. 하늘인 태극점이 위 아래로 움직이면 ‘|’가 되고, 그것이 곧 사람이다. 우리말은 ․(天)․ㅡ(地)․|(人)이 어우러져 모음을 이루고 있다.

우리말은 이와 같이 천지인 합일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말 속에는 이미 영성적인 존재로서의 심성이 결과 태로서 무늬지어 들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 사물, 자연을 대하고 보는 방식과 양태들이 우리말 속에 새겨져 있다. ‘․’가 ㅡ, |와 만나서 ㅏ, ㅓ, ㅗ, ㅜ 등으로 변한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인 ‘ㅣ’가 한번 더 붙으면 ㅑ, ㅕ, ㅛ, ㅠ 가 된다.

천지인(天地人) 사이에서 그 사이를 잇는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말에서는 인간이 중요하다. 우리말은 태극점[․]을 안고 있는가 아니면 밖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태극점을 안고 있으면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어떤 것이다. 그리고 태극점이 밖으로 나가면 이제 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극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아’로 시작한다. ‘․[ㅇ]’은 입을 벌여 목구멍을 동그랗게 연 채 놔두고 내는 소리다. 인간이 맨 처음 하는 옹알이도 받침이 없는 소리들이다. ㅇ 위에 덮개 하나를 얹으면 ‘ ’가 되고 그것에다 덮개 하나를 더 얹으면 ‘ㅎ’가 된다. ‘ ’[덮개]는 ․[ㅇ] 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는 것이다.

바탈, 가, 깔, 꼴

인간은 빔 사이에 있다. 우리말에는 매우 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물체와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말 ‘바탈’이다. 이 말을 사용하면 출판사에서 바탈을 제 멋대로 바탕으로 바꾸어버린다. 사전에 그런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던 낱말도 사전에서 빼버리고서는, 사전에 없다고 없는 말로 치부해버린다.

사전에 있는 말들은 기록이라는 흔적으로 남은 것들을 모아서 담은 것들이다. 즉 흔적의 산물이다. 흔적이 생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사용되었어야 하는가. 사용된 것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여 담지 않다가 나중에는 담겨 있지 않다고 하여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언가 뒤바뀌었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바탈’은 바탕이 되는 물체, 물질이다. 이것을 ‘속알’이라고도 한다. 속안에 들어 있는 알맹이, 알갱이, 가장 근본적인 차원의 물질을 뜻한다. 다석은 바탈이 ‘받할’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한다. ‘받할’은 ‘받’과 ‘할’이 모여 만들어진 글자로서, ‘받’은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의미하고, ‘할’은 그 받은 것을 갖고 해야 할 바를 뜻한다. 따라서 ‘바탈’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으로서 살아가면서 실행해내야 할 바를 가리킨다.

바탈, 속알에는 우리말로 ‘깔’, ‘꼴’, ‘결’이 무늬져 들어 있다. 전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틀이 있고 그것은 일종의 얼개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한자를 사용하여 바탈을 질료 또는 원질료, 그리고 깔, 꼴은 형태, 이데아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순수 우리말을 가지고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깔’은 사전에 ‘물건의 바탕이나 맵시’로 풀이되어 있다.

바탈이 어떤 형태를 갖추려면 ‘가’가 있어야 한다. ‘가이 있음’이라는 표현이 있다. 무한한 것은 ‘가이 없음’이다. ‘가’는 물건이나 어떤 것의 둘레, 언저리를 말한다. 만일 ‘가’가 없다면 우리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바탈, 속알이 무언가 둘레, 언저리 속에 간직되어 어떤 형태의 모양이든 갖게 되면 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가’는 가이 없는 ‘가’가 아니라 가이 있는 ‘가’다. 모든 존재하는 유(有)는 가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이 있는 있음이다. 그런 가를 갖게 되면 그 거기에는 빔 사이의 차원이 포함되어 들어간다.

‘깔’은 때깔, 빛깔이나 맵시로 볼 수 있고, ‘꼴’은 모양새, 형태를 뜻한다. 이 둘을 합쳐서 그리스 철학에서는 실체라고 이름했고 그것은 질료에 대비되어 형상 또는 형태라는 의미를 가졌다. ‘결’은 주름과 연관지어 설명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주 진화의 결이 새겨져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게끔 된 나름대로의 ― 변화의 나이테처럼 ― 변화의 결(태)을 가지고 있다.

‘결’의 사전적인 의미는 ‘빛의 파동’, ‘겉에 보이는 무늬’, ‘주름의 형상’이다. 프랑스 철학에서 ‘주름’이라는 낱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결’로 소화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용어를 ‘결’에 대한 분석으로 정리해 나간다면 우리말로 철학함이 충분히 가능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틀’, ‘얼개’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그 안에 이러한 사물의 있음의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즉 빔 사이에 있는 것은 이런 차원을 다 가지고 있다. 바탈, 얼개가 있고 깔, 꼴을 갖추면서 그 안에 결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있음은 고정된 있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감(됨)의 있음이다. 되어가서 되고, 되고 되어서 사물이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됨됨이’라고 한다. 됨됨이는 사람이나 물건의 된 품을 말한다. 우리말에 이런 좋은 말들이 있으니, 그것을 본질, 속성, 존재라는 어려운 말들로 표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모든 사물들에게서 우리는 이런 됨됨이를 볼 수 있다.

사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빔 사이에 있다. 동양의 사상은 일종의 조화사상이다. 천지인(天地人) 조화, 자연조화 같은 말에 있는 조화를 순수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사이좋게 사이 나눔’으로 볼 수 있다. 조화의 사상은 바로 사이좋게 사이 나눔을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모든 ‘사이’를 사이좋게 사이 나누면서 있다면 바로 그것이 조화다.

우리말의 ‘사이’는 간격, 공간도 의미하지만 모양새라는 의미도 있다. 모든 사이에 나타나는 것들이 모양새다. ‘~새’는 됨됨이나 상태, 정도 등을 나타내는 접미어라고 한다. 즉 됨됨이와 관련되어 있다. 꾸밈새, 쓰임새라고 말한다. 사이에서 ‘가’를 갖고 ‘깔’과 ‘꼴’을 갖추고 있는 모든 것들은 ‘새’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새’에는 또 새롭다, 새 사람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모든 것이 사이에 있는데, 사이에 있다 보니 워낙 자연스러워 사이에 있는 것을 사이에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이에 있음이 눈에 뜨이게 되면 그것을 새것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전에는 눈에 뜨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을 ‘새롭다, 새것’이라고 한다.

참새나 독수리와 같은 새도 사이를 날고 있는, 사이에 있는 전형적인 것이다. 또 사이는 어떤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새’를 써 ‘새빨간, 새파란’에서처럼 강조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사이’(새)가 아주 많이 들어 있다.

우리말 철학의 바탕

⑴ 홀소리: 하늘 (·), 땅 (ㅡ), 사람 (ㅣ)

⑵ 닿소리
- ㄱ: 보냄: 거룩, 검
- ㄴ: 받음: 나다, 날다
- ㅁ: 입, 언어: 먹다, 마신다, 문다
- ㅅ: 인간: 사람, 삶, 숨, 싹, 씨
- ㅇ: 공, 근원, 근본: 〜이다

⑶ 되어감의 원칙
- 하늘의 기운, 땅의 기운을 모아 몬(物)이 된다
- 바탈이 바탕에 모여 가이 있는 깔과 꼴을 갖춘 다양한 몬이 되어간다
- 끊임없는 되어감 속에서 새겨지는 됨됨이는 몬의 특정한 결과 무늬를 만들어낸다
- 그것이 그 몬의 독특한 바탈과 속알이 되며 거기에는 됨됨이의 결이 주름져 있다
- 몬은 바탈과 속알에 간직돼 있는 결을 풀어나간다
- 끊임없는 됨과 풀음(되풀이) 속에 됨됨이가 이루어진다
- 됨 → 되풀이 속에서 질서, 형태, 구조가 생긴다 (몸 → 짓 → 품 → 틀)
  물질(양, 질료)에서 질적 변화가 생긴다
  물질(양, 질료)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상이 생겨 나온다.
- 있음은 사이에 있음이다: 빔-사이, 때-사이, 몬-사이, 하늘-땅-사이에 있음
  모든 것은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그물코를 이루고 있다
- 되풀이의 패턴이 바탈(속알)에 갈마듦(번갈아 듦)의 결을 새겨놓는다.
- 됨됨이 속에는 탈, 깔과 꼴 그리고 결이 응축되어 있다.
* 있음 → 모음 → 되어감 → 됨 → 됨됨이 → 부대낌 → 되풀이 → 물음 → 
  되삭임 → 배움 → 되먹임 → 앎 → 삶 → 살림

끝으로 우리말에 대한 다석의 감탄을 되새겨 보자.

“우리 한글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말에는 하늘의 계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으[ㅡ]’로 세상을 표시하고 하늘 점[·]을 찍고[ㅜ] 신발 짝[ㄴ]을 올려놓으면 ‘누’가 되고 , 사람[ㅅ]을 올려놓으면 ‘수’가 되며, 원[ㅇ]이나 무한을 올려놓으면 ‘우’가 됩니다. 곧 ‘누수우’가 됩니다. ...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이것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 글에는 무슨 하늘의 계시가 있음이 분명합니다.”(1)

미주

(미주 1) 유영모,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911/2.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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