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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마르크스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2)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0.01.13 17:31

지난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전후해서 독일, 영국, 미국 등지에서 마르크스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최근의 연구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개인주의자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이다. 개인주의자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개인주의가 지체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특히 마르크스가 개인주의자로서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개인의 독립과 자주성을 중시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부르주아 사회를 혁명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이 점이 오랫동안 외면되어 왔지만, 독일 브레멘 대학교 철학 교수로 활동했던 한스 외르크 잔드퀼러(Hans Jörg Sandkühler)를 위시하여 많은 학자들은 마르크스가 개인(Individuum)의 독립과 자주성이 갖는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음을 또렷하게 부각시켰다. 개인은 마르크스가 초기 저서들로부터 후기 저서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지칭할 때 즐겨 사용했던 낱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원자처럼 고립된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유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 ‘유적 존재’(類的存在), 곧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한다고 생각했고, 인간이 사회적 관계들의 응결체라는 것을 강조했다.

▲ 한스 외르크 잔드퀼러 교수

마르크스에게 개인주의와 사회주의는 모순을 이루지 않았다. 그는 개인주의를 표방했지만, 자유주의를 비판했고, 공화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들이 국가에 앞서서 주어져 있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이 이기주의와 부르주아 지배를 공고히 한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국가가 실정법에 의해 보장하는 권리들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국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는 대의제를 넘어서서 사람들의 공동이익과 공동의지를 구현하는 공동체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믿었고, 그 공동체의 틀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들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당연시했지만,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물건의 귀속관계를 매개로 해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인 재산권이 사회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노동을 자본의 지배 아래 두고 노동의 소외(와 노동자 착취)를 가져오는 현실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믿었다.

모든 개인이 자유와 평등과 복지를 향유하여야 한다

부르주아가 표방하는 만인의 자유와 평등과 복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허구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철저하게 억눌리고, 수탈당하고, 굴욕을 당하고, 비인간화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만인의 자유와 평등과 복지를 부르짖는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를 살폈다. 그는 계급지배와 계급착취가 부르주아 사회에서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분석했고, 이를 가차 없이 폭로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개개인이 자유와 평등과 복지를 누리는 주체라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사회를 추구했다. 각 사람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평등하며,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 복지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 복지수급권자의 번호를 등에 붙이고 돌아다니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은 익명의 대상으로서 집단에 해소되어서는 안 되고, 집단의 이름으로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이 연대하고 단결하여 구축하는 사회주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들을 보존하고 한층 높은 차원에서 구현한다. 마르크스가 내다 본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에 바탕을 두고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사회였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여 공동체를 규율하는 사회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국가 기구들은 재구성되어야 하고, 국가 공권력의 행사는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개인주의자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그 어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도 부당하게 유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적인 약탈 경제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키고, 반자본주의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개인도 자본의 권력이나 국가 폭력에 의해, 아니 둘이 결탁한 더 큰 폭력에 의해 억눌리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성, 젠더, 연령, 계급, 인종, 직업, 지위, 소득 등등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누구든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들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조 설립의 자유를 짓밟히고 끝내 부당하게 해고된 김용희 씨가 200일 넘게 전자통신탑에서 농성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와 정치가 나서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조 설립의 자유를 유린하고 부당 해고를 일삼는 거대 자본의 야만적인 지배구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그 야만에 의해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들이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자본과 국가의 엘리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법률지상주의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법률지상주의를 방패로 내세우면서 법률 기술자들이 낙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방식으로 법률을 자의적으로 운용하여 사람들의 권리들을 짓밟는 일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 ‘불법’으로 규정된 파업 참여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 조치를 취해서 노동자들의 힘을 분쇄하는 법률지상주의적 야만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검찰이 반드시 기소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먹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해서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들을 유린하는 것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자 마르크스가 자본과 국가의 지배를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인 대안을 놓고 어떤 고민을 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발전이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고, 공동체 발전이 개인의 발전에 토대가 되는 새로운 사회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들을 법과 제도로 보장하고 높은 차원에서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이다.

* 아래서는 개인주의자 마르크스를 부각시키고 있는 글들 가운데 두 권의 책과 한 권의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1. Urs Marti-Brander, Die Freiheit des Karl Marx : Ein Aufklärer im Bürgerlichen Zeitalter(Reinbek bei Hamburg : Rowohlt, 2018).
2. Terry Eagleton, Warum Marx recht hat, Aus dem Englischen von Hainer Kober(Berlin : Ullstein, 2018).
3. 유재건, “마르크스와 역사 : 탄생 200주년에 다시 돌아봄,” 『서양사론』 139(2018), 137-166.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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