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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는 겨울 숲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1.16 17:30
28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요한복음 19:28~30/새번역)

요한복음이 주목하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이룬 것입니까? 사람들의 기대는 남김없이 무너졌습니다. 제자 양육을 다 이뤘습니까?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까지 회심시키셨습니까? 회심은커녕 수제자들까지 다 도망갔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까? 아직 부활도, 승천도 남아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제자들이 새롭게 되는 일도 남아있습니다. 대체 이루신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은 그 참담한 실패 속에서 다 이루시는 모습들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 숨결까지 다 이루시는데 사용하시는 주님께 주목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심입니다. 하나님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뜻 그대로를 살아내시는 모습입니다. “목마르다.” 물론 처절한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갈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69:21b의 말씀 그대로를 이루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 억압과 착취, 고통 가운데 능욕 당하는 실존의 자리까지 자신을 비우시고 낮아지십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남김없이 이루십니다.

▲ Mirko Braun ©https://www.flickr.com/photos/mirkobraun/5280362974/

우리의 교회는 무엇을 이루려 합니까? 목회자 청빙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몇 명 이상의 교회, 결산 얼마 이상의 교회에서 얼마나 부흥시켰는지, 또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지 계획서를 원합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얼마나 낮은 자리로 자신을 비웠는지를 궁금해 하는 청빙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목사라 불리는 탁월한 경영자를 원하는 게 아닌가요.

주님께서는 부활도, 부흥도 다 이루심에 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몫은 철저히 하나님의 몫으로 자신을 비워 드리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어디에 쓰실지 어떻게 사용하실지 불확실해지는 자리까지 낮아지십니다. 관심은 하나님의 뜻을 남김없이 이루는 사랑과 순종이셨습니다. 바로 그곳이, 그 십자가가 부활이 잉태되는 자리였습니다.

겨울을 통과하는 나목들도 이룬 것 하나 없이 다 이루는 길을 보여줍니다.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는 일은 하늘과 태양과 비와 함께 할 일입니다. 나목은 이룰 수 없습니다. 다만 믿고 견디고 기다립니다. 철저히 무기력한 그 자리를 받아들이고 견딥니다. 눈 속에 갇혀도, 햇살은 자신 안 깊은 곳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냉혹한 냉기에도 얼어붙지 않는 그곳에서 햇살이 살려주고 붙잡아줍니다. 그래서 나무는 잠들지 않고 그 목소리를 믿고 따릅니다. “내 사랑하는 자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직 겨울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따스합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께서 겨울을 통과하는 나목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겨울을 통과하는 벗이여, 버티고 버티자. 견디고 살아남자. 그 과정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고 든든하게 할 테니…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또한 받을 것이니… 십자가가 서 있는 곳이 부활의 자리였듯, 겨울을 통과하는 그 자리가 꽃피고 열매 맺을 바로 그 자리이니…” 

겨울을 견뎌내는 나무, 그 생명이 이룬 업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견디고 견뎌낸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버티고 버티며 살아남아 준다면, 그보다 더 큰 성취는 없습니다. 우리 서로 안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엇인가가, 우리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남게 합니다. 때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을 그 때, 우리 서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는 신비를 만납니다. 그 신비를 어찌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부재가 내면 깊은 곳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로 스며듭니다.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어도 다 이루도록 사랑해주십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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