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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의 진보적 그리스도인들, 주체사상을 변화시키다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9)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1.16 17:36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6)_‘민족’ 복권기(1980~1990)의 종교 인식(3)

A: 지난 연재들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의 역사에서 ‘민족’의 복권과 ‘종교’의 복권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북의 역사에서 1980년대는 민족이 복권되고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민족 복권기였으며, 동시에 종교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으로 변화하는 종교 복권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거쳐 1990년대 남북 간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북 내부적으로는 ‘수령의 종교이해’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어 ‘주체사상의 종교관’이 정립됩니다.

따라서 1980년대 민족 복권기는 주체사상의 종교관 정립을 위한 마중물이 되는 시기로서 그 중요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시기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극적인 사건은 문익환 목사를 필두로 하는 이른바 ‘애국적 종교인’들의 방북이었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사 문익환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1989년 3월 25일 평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후 문익환 목사는 ‘수령’ 김일성과 두 차례 회담하였으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허담 위원장과의 공동명의의 발표문에서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공동발표문에는 남의 청년들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이어, 1989년 6월 30일에는 가톨릭 신자인 임수경 수산나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의 자격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이에 가톨릭 신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평양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그 해 광복절인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하여 남으로 귀환하였습니다.

▲ 민간인의 방북의 물꼬를 튼 한국기독교장로회 문익환 목사(사진 왼쪽)과 전대협 임수경 학생은 방북 후 체포되어 법정에 서야 했다.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수산나의 방북이 북 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였습니다. 이들이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에 가서 예배드리고 발언하는 장면은 여과 없이 북의 텔레비전을 통해 북의 ‘전체 인민’들에게 노출되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방북 기간 동안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드렸으며, 묘향산의 보현사를 방문하여 북의 승려들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북에서 임수경 수산나와 문규현 신부의 장충성당 방문 사실이 보도되자, 장충성당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각 지방의 많은 ‘오래 된’ 신자들이 연락을 해오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장충성당 관계자가 밝힌 바대로 임수경 수산나와 문규현 신부의 방북은 북의 천주교를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임수경 수산나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기간에 열린 “청년학생종교인토론회장”에 참가하여 통일을 위한 남북 청년 종교인들의 활동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1989년 7월 4일자로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에 「청년학생종교인들의 신앙간 담화, 례식 진행」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북의 주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임수경 수산나는 주일에는 반드시 장충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렸으며, 성호를 긋는 등의 가톨릭 의례를 북의 주민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임수경 수산나와 문규현 신부가 함께 판문점을 넘어가는 장면은 전국에서 생중계 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판문점 남측으로 넘어가기 직전 북측으로 돌아서서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에서는 “북한 인민 2천만이 모두 다 울었다”고 이 일이 있은 직후 평양을 방문한 미국 장로교 소속 홍동근 목사는 증언하였습니다.

홍동근 목사는 같은 해인 1989년 가을부터 미국과 평양을 오가며 김일성대학에서 기독교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11월 김일성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서 평양으로 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현재 평양의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남측의 종교인들이 북을 방문하여 ‘수령’ 김일성을 접견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투옥을 기꺼이 감수하고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당시 북의 주민들에게 커다란 혼란과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북의 주민들은 관계 기관 등에 진정하여 ‘종교’를 나쁘게만 설명하고 있는 1981년판 『현대조선말사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민들의 요구는 ‘종교’에 대해 중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1991년판 『조선말 대사전』이 편찬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반향은 주체사상 이론가들이 모여 있는 평양 사회과학원 산하 주체사상연구소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연구소는 민족 복권기, 즉, 종교 복권기인 1980년대를 통하여 ‘주체사상’이 ‘종교’에 대해 어떠한 견해와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런 성과와 1989년 종교인 방북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에 이르러 일정하게 ‘주체사상의 종교관’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연구소 박승덕 소장은 1990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4차 북미 기독학자 연례대회’에 참가하여 「기독교에 대하는 주체사상의 새로운 관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논문의 제목에서 이 시기에 ‘주체사상’이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현대 기독교는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세계 종교로서의 특성을 강화하면서도 매개 민족의 토양에 뿌리박고 민중문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투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기독교의 세속화 운동과 토착화 운동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습니다.”라고 현대 그리스도교를 평가하였습니다. 이는 주체사상이 1970년대 반종교운동 심화기에 에큐메니칼 운동과 토착화 운동, 민중신학에 대해 보여주었던 부정적 평가를 완전히 정면으로 뒤집은 것입니다.

또한 그는 같은 논문에서, “주체사상은 현대 기독교와 그 신학이 부정적인 점과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민중과 민족, 인류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긍정적인 점과 가치 있는 면들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운명 개척’은 주체사상의 고유한 ‘사명’입니다. 따라서 이 평가는 주체사상이 ‘종교’를 평가함에 있어, ‘운명 개척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인정’은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박승덕 소장은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이 상호인정을 전제로 함께 대화와 협력을 제고해 나가자는 제안을 다음과 같이 이어갔습니다.

“주체사상은 기독교 사상과의 공통점을 모색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공동의 방도를 탐구하는 것을 주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 남조선에서 창출된 민중신학, 이남과 해외의 기독교 신학자들 속에서 제창되고 있는 통일신학과 주체사상의 대화를 시작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문제, 민중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서 주요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주체사상과 기독교, 주체철학과 기독교신학이 인간의 운명문제를 축으로 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해 나간다면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며 우리 인민과 인류의 밝은 장래를 열어나가는 데 응당한 기여를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주체사상연구소 박승덕 소장의 이러한 제안은, 인간의 ‘운명’문제라는 화두를 가지고 구성된 주체철학이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담고 있습니다.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간 ‘운명’의 ‘구원’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통해 진정한 인간 운명 구원을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 공동의 ‘실천’을 통해 공동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 신봉자들의 이러한 대화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응답하여야 합니다.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대화를 제안한 지 꼭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남과 북 사이에서, 특히 남의 그리스도교와 북측의 관계기관 사이에서 많은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 주체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이 인간의 운명문제를 축으로 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진행하여 왔는지를 돌아볼 때, 그 성과가 미미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 싼 정세를 볼 때, ‘인간의 운명문제를 축으로 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주체사상과의 대화로 부르시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도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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