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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철학과 칼빈의 인간학창조와 섭리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1.18 18:04

제1권 15장은 창조에 관한 마지막 장으로, 칼빈은 여기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으로 묘사된 피조물 인간을 다룹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신학적 인간학”이라고 일컬어졌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이 창조에 관한 장에서 전개하는 인간학은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학

정말 여기서 그것은 그 주제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칼빈이 15장에서 다루는 인간학은 배타적으로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인간, “최초의 고결한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I.xv.1).

칼빈은 제2권에서 아담이 타락하고 난 이후의 비참한 인간의 상태를 다룰 것입니다. 타락은 본래 피조된 인간을 지금의 인간과 구별하는 심연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인간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습니다.

▲ William Blake(1757-1827), 「God Judging Adam」(1795)

15장에서는 창조 당시의 인간을, 그리고 2권 1-4장에서는 타락한 상태의 인간을 각각 다룹니다. 먼저 칼빈이 창조 당시의 인간을 다루는 것은 인간의 현재 상태에 관한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것은 우리의 현재의 비참함이 결코 창조 때에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10, 12, 18, 21, 25, 31)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선언되는 것과 같이 필연적으로 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은 죄가 본성의 결함이라는 증거,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잘못 만드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수 없습니다(I.xv.1).

헬라철학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칼빈이 여기서 전개하는 인간학은 주로 영혼의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이 철학, 특히 헬라철학에서 차용한 관념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칼빈이 영혼을 육체와 분리된 본질로서 묘사할 때, 그러므로 그것이 피조되었지만, “영혼이 육체와 구별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성경은 우리가 흙집에 살다가(욥4:19) 죽을 때에 육신의 장막을 벗을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을 것”(I.xv.2)이라고 설명하며 영혼을 불멸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의 성경해석에서 플라톤적 이원론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영혼을 “불멸적이면서도 창조함을 받은 실재”(I.xv.2)라고 말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가 헬라 철학자들로부터 빌린 이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틀 속에서 작용합니다. 그리고 그가 때때로 철학자들의 견해들이 성경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그는 정확히 신학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들과 헤어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선, 칼빈이 철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창세기 1장 26절에 근거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그의 교리에서 설명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칼빈은 ‘형상’과 ‘모양’ 사이를 구별하는 오랜 전통과 단절하며(그는 그것들을 동의어로 간주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사실 영혼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I.xv.3). 이 전제로부터 칼빈은 앞에서 철학적인 용어들로 진술했던 영혼 불멸에 대한 그의 이론을 이번에는 신학자로서 발전시킵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형상은 타락에 의해 부패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중생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중생은 인간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자체인 아들, 하나님의 지혜이신 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 중생은 이생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만(성화를 통해서, 『기독교강요』 제3권의 주제),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삶에서만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된 실체이며 불멸적인 것입니다(I.xv.4).

여기까지 철학과 신학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 일치는 어떻게 영혼의 능력들이 작용하는가를 질문할 때 사라집니다. 칼빈은 플라톤의 견해를 제외하고는 영혼의 정의를 철학자들에게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오직 플라톤만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 안에 있고, 불멸의 본질을 지닌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플라톤의 영혼의 교리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단순하게 소개합니다. 영혼은 두 부분, 즉 오성 혹은 지성과 의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성이 하는 일은 대상을 식별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반면에, 의지가 하는 일은 오성이 선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선택하며 추구하고, 오성이 부인하는 것을 거절하며 피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성은 영혼의 지도자요 지배자이며, 의지는 오성의 명령을 항상 유의하며 자신의 욕망에 있어서도 오성의 판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I.xv.7).

이렇게 영혼의 모든 능력은 이 두 부분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에 지성을 주셔서 “선을 악에서, 정의를 불의에서 각각 가려내며, 또한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하여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과 마땅히 피해야 할 것을 구별하도록” 하셨고, 또한 “이 이성의 빛”에 “의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선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I.xv.8).

헬라철학이 혼돈했던 인간학

처음 인간은 이러한 완전한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기만 했다면 ‘자유의지’로써 영생에 도달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다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타락했던 것이다”(I.xv.8). 아담은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타락하여 자신이 받은 축복을 부패시키기까지는 그의 지성과 의지는 참으로 올곧아서, 하나님께 바르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철학자들은 타락 이전의 인간과 이후의 인간을 혼동했으며,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철학자들은 어둠 속에서 크게 헤매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폐허 속에서 건축물을, 흩어진 파편 속에서 균형이 잘 잡힌 구조물 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에게 선악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없다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아닐 것이라는 원리를 고수하였다. … 만일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었더라면 인간은 지금까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래] 인간에게 감춰져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천지를 혼동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그들은 철학자들의 견해와 하늘나라의 교리를 타협하고 그렇게 하늘과 땅 그 어느 것과도 관계하지 않게 됨으로써 타락하여 영적 파멸에 빠진 인간에게서 여전히 자유선택을 찾는 분명히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I.xv.8).

칼빈은 이렇게 자유의지의 문제에서 기독교 이전의 철학자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2장에서 자유의지를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자유의지는 선이나 악을 택하는 자유로서 정의된다는 것만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의 이해에 의하면 아담의 타락은 인간에게서 이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타락에 대한 지식은 이교도 철학자들이 전혀 모르는 성경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그들은 타락과 그리고 선과 악 사이의 선택에서 지성과 의지의 결합된 행동의 결과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인류의 본래 상태를 그의 현재 상태로 오해 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관념은 현재의 조건이 아니라 본래의 인간의 조건에 관해서만 정확했습니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견해를 신봉하는 기독교인들은 칼빈이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영적인 계시의 유익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만큼 더 비난할만한 것이었 습니다(I.xv.8). 펠라기우스, 반펠라기우스파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들이 여기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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