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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한(요나 4:1-11)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 승인 2020.01.28 17:48

아침에 온 사람, 정오에 온 사람, 오후에 온 사람이 똑같이 하루 품삯을 받게 되자 아침에 온 사람들이 분노하더라는 예수님의 비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고 싶어 했던 이스라엘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메시지는 이미 요나서와 같은 책을 통해 오래전부터 선포되었던 주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는 질문으로 끝나고,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으로 끝나는데, 가만히 보면 두 질문이 같은 질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기득권에 취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생각의 길목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수없이 용서하시던 그 자비로운 사랑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2-3절).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Jonah's Wrath over Nineveh in the shade of plant」(1877). Woodcut engraving after a drawing. ⓒGetty Image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에 대한 요나의 분노는 단순한 질투의 감정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기득권을 위협받는 자가 느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증오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그것을 빼앗기게 되면 극도의 증오심을 표출합니다. 상고 출신의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어서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건은 중요한 예입니다.

기득권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사람이 그것을 지키려고 싸우기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의 인격과 존엄 같은 것들을 철저히 무시하게 되며, 자기 인격도 포기하고 남의 인격도 함부로 짓밟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요나는 좌우 구분이 안 되는 어린 아기만 12만 명이 넘는 큰 도시가 통째로 멸망하기를 간절하게 바랬고,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죽고 싶다”고 외칠 정도로 극도의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아마 요나에게 ‘기자의 펜대’를 허락했다면 니느웨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가짜뉴스들을 만들어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에 있는 가축들까지도 아끼시는 분이셨습니다(11절). 가나안땅을 점령하러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남김없이 쓸어버리라’고 하셨다던 그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만, 사실은 세상 전체를 아끼시는 이 자비로운 모습이 하나님의 참모습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신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을 잃은 신앙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득권을 위해 싸우는 광신도로 돌변합니다. 뭔가 중요한 것을 빼앗길 것이라는 염려가 사람의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서 앞뒤 구분 없이 할퀴고 물어뜯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을 잃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원망과 불평, 증오와 배제 대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자유롭게 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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