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15) 첫 문장입니다. 동방 박사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다가 헤롯 왕을 만난 장면을 묵상하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매혹적인 문장은 이런 메아리로 되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사실상 없다. 다만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따르는 신앙인이 있을 뿐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헤롯 왕이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을 알아내려 합니다. 하나님 주신 말씀을 통해 위치를 확인합니다. 유대 베들레헴! 말씀은 역시 진리였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줍니다.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뜻이라면 왜 직접 가지 않았을까? 왜 동방 박사들에게 미행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본문의 의미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환영하는 이방인과 죽이려 하는 유대인의 대비를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 논란과 진의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태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

▲ Escher, 「angels & demons」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헤롯도, 대제사장과 율법 교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지키는 것만 중요합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진리를 이용할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 그 뜻을 환영하고 따르는 중심이 없습니다. 그 중심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사랑의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의 칼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정말 그럴까? 이런 물음 자체가 불경한 일입니까? 사탄도 성경말씀으로 주님을 시험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8:7)는 말씀은 어떻습니까? 켈러그라피로 인기 높은 이 말씀은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맥락이 담고 있는 의미는 대략 이렇습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았다면, 시작이 미약해도 나중은 창대할거야. 그런데 지금 이렇게 무너졌으니 넌 분명 죄를 지은 거야.’ 억울하게 고통 받는 친구의 상처에 소금을 치는 이 말이 하나님의 진리입니까?

성경말씀이 무조건 진리라고 고집할 때, 다음 우화는 충격적일 것입니다. “세계 모든 종교의 모든 성서를 수정하자는 안건이 유엔에 제출되었다. 옹졸이나 잔인이나 완고를 조장할 만한 대목은 모조리 삭제하자고; 어떻게든 인간의 존엄과 복지에 역행하는 요소는 깨끗이 불식하자고. 이 제안의 발의자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몰려가 자세한 설명을 청했다. 예수의 설명인즉 쉽고 간단했다. ‘성서도 안식일의 경우와 마찬가지요. 성서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성서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앤소니 드 멜로 『종교 박람회』, 72)

얼마나 자주 성경말씀을 자기 욕망과 편견을 위해 이용합니까. 누군가를 정죄하면서 자기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이용합니까. 얼마나 다양한 소수자, 약자를 억압하는 논리로 사용해왔습니까?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 율법에 뭐라고 쓰여 있던 새롭게 하십니다.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고 구원하는 뜻이 궁극이셨습니다.

사람을 위해 성경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야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성경의 진의를 찾기 위해 겸손하고 성실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코걸이 귀걸이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최소한 중심만은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해 읽는 중심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듣는 중심이 없으면, 소용없는 정도가 아니라 위험합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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