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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땅에서 행복하라삶을 위하여(마가복음 2:27-2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2.02 17:17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저희는 지금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주 말씀드렸던 본문은 빼고, 지금까지 많이 보지 않았던 본문들을 통해 우리가 때로는 잊고 있었고, 생각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 먼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 후에 귀신 들린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고치시며 말씀을 전하시는 여행을 시작하십니다. 마가복음 2장도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시작되어서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레위라는 제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열두 제자에 대해 이야기 드릴 때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장에 들어서면서 두드러지는 점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이나 치유 행위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품거나 의문을 품어서 예수님께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질문 중 하나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금식에 관한 이야기였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안식일 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우선 저희는 구약성경의 법과 연결하여서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이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안식일입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우리 주일과 다르게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지금도 제7일안식일교에서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단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초대교회 중에도 예루살렘 교회가 그랬듯이 유대교에 가까운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분파라고 보시면 됩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유대인들도 안식일에 하면 안 되는 일 목록이 상당한데, 예수님 시대에는 더 엄격하게 안식일을 지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에세네파의 경우에는 안식일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도 금지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 구하는 일이 옳냐고 물으신 점은 바리새인에 대한 비판보다는 에세네파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교리에는 안식일에 사람은 구해도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는 일을 생명을 위해서 먹을 것을 구하던 행위로 보지 않고, 일반적인 수확 활동으로 보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남의 밭에 있는 밀을 잘라 먹는 일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실 수도 있지만, 신명기 23장 24-25절을 보면 이런 법이 있습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정말 배가 고플 때, 남의 밭에 있는 곡물을 먹어도 되지만, 집에 가져가는 행위, 수확 행위는 금지하고 있는 법입니다. 곡식을 손으로 따도 되지만 낫을 대면 안 된다는 말도 남의 밭에서 대량의 곡물을 수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가 고파 밀이식을 잘라 먹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다. ⓒGetty Image

우리 성경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랐다고 번역되고 있지만, 본래는 뽑았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먹기 위한 밀을 대충 뽑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먹었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자면, 바리새인들은 이들이 뽑아낸 밀을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을 일종의 수확으로 보아서 안식일에 일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수확을 목적으로 했다면 안식일 법뿐만 아니라 신명기 법도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잘라서 먹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안식일에 수확하는 일을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일화를 예로 들어 반박하십니다. 다윗이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고 그와 함께 한 이들에게도 나눠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정확하게 보자면, 사무엘상 21장에 나타난 이야기와는 좀 다릅니다. 사무엘상 21장에는 사울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다윗은 혼자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도망치던 다윗이 놉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갑니다. 아히멜렉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이며 당시의 대제사장입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사울의 비밀 명령을 수행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 그곳 성소에 있던 진설병을 얻어먹게 됩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이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동침하지 않은 성결한 사람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은 성결하다고 말하고 진설병을 얻어 갑니다. 동시에 예전에 죽였던 골리앗의 칼도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얻어 가게 됩니다.

이 일을 들은 사울은 아히멜렉에게 분노하였고, 놉 지역에 있는 제사장들을 몰살합니다. 이 당시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고, 그는 다윗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다윗의 마지막까지 함께 합니다. 아비아달은 나중에 솔로몬이 아니라 압살롬이 죽은 후 맏이가 된 아도니야를 왕으로 추대했다가 솔로몬에 의해 추방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따져보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조금 잘못된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 아비아달 제사장 때라는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아히멜렉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아비아달 때라는 말이 빠집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다윗이 거짓말을 통해 아히멜렉에게서 진설병을 얻었음은 맞고, 하나님께서 이 일로 인해 다윗을 훈계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음식인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하다고 여기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화내지 않으셨던 것처럼, 안식일에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밀을 자르는 일을 잘못되었다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계십니다.

미래의 구원을 위하여

그 이후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오리지널 말씀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랍비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저희는 복음서가 바리새인들을 안 좋게 평가하니까 바리새인들은 마치 꽉 막힌, 전통만 추구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랍비도 여러 분파로 나뉘긴 했습니다만, 이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말씀을 연구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저 나쁜 사람들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랍비들이 율법을 연구했던 이유, 또 그들이 율법을 강조했던 이유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구약성경을 읽어서 당연히 이를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잘못된 삶,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았을 때, 우리는 벌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유대인들은 그 이유를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삶, 더욱 율법적이고, 더욱 빡빡한 삶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자신들이 로마로부터 해방을 얻고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어떻게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영원한 생명과 유대인들이 말했던 생명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생명을 얻기 위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미래를 지향합니다. 미래에 얻게 될 영원한 생명 또는 참 생명을 바라보고 지금을 살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 지향적인 율법 준수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럼 지금은? 지금 현실에서의 생명은?

지금의 삶을 위하여

미래를 지향하는 일이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얻게 될 영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미래만을 바라보다가 지금 우리의 삶이 궁핍해지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냐는 질문을 예수님은 던지십니다.

지금이 행복하고, 지금 삶에서 생명을 얻지 못할 처지인데, 미래에 얻게 될 영생, 언젠가 얻을지도 모를 구원, 언젠가 받게 될 해방이 무슨 의미인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법입니다. 먼 미래에 행복을 얻으라고 가르치신 법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평안하고 행복하게 될지를 가르치신 법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미래 지향은 지금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지금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가기 힘들게만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구원을 위해서 지금의 삶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기독교도 항상 강조해왔던 말씀일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어렵게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영생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어려움을 꾹 참으며 살아가자. 이는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던 때에 인내를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생각일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이런 신앙과 폭탄 테러를 일으키는 이슬람 교인들의 믿음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들도 죽어서 얻게 될 천국의 삶을 위해서 폭탄 테러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 지향적인 삶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까지도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은 그리 편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남의 밭에 있는 밀을 먹어야 할 정도로 풍요롭지도 않은 삶이었고, 어떻게 보자면 비참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풍요로운 삶에 연연하시지 않았습니다. 때로 누군가 자신을 초대하면 그 집에서 먹고 마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셨고, 먹을 게 없으면 없는대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러한 사람들조차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밀밭에 있는 밀을 먹을 수 있다는 법, 남의 포도밭에 있는 포도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법이 있었기에 그 법만 가지고도 우리는 충분히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풍요롭지 않은 삶 속에서도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삶이었음에도 제자들과 즐거움을 나누셨습니다. 빵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걱정할 게 뭐가 있냐고 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즐겁게 살아가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미래 지향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전에 지금 우리의 삶을 위한 법입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행복만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살아가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라시고, 여러분이 즐겁게 살아가시길 바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내리시고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삶의 기쁨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가득 차서, 여러분의 삶도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에게 미래의 구원과 영생 또한 허락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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