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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민주주의와 정치를 질식시킨다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5)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0.02.03 17:03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최근의 정치 위기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갖고 있다. 가짜뉴스가 공론의 장을 뒤흔들어 공화주의 정치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하는가?

선동을 위해 가짜뉴스가 터무니없이 생산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을 우두머리로 하는 역대의 독재 정권들이 공화주의 정치의 껍질만 남겨두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언론 보도와 지식인들의 용기 있는 발언이 소통되는 공론의 장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언론 탄압은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조작하여 만들어내는 가짜뉴스가 정작 디지털 언론 매체들과 SNS를 통하여 끊임없이 생성되고 급속히 전파되는 요즈음 공론의 장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되는 경우가 흔하다.

선동가들은 가난, 실직, 차별, 배제, 기회박탈, 패배, 전쟁 등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저장된 간뇌를 건드려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멸시, 증오,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가짜뉴스를 교묘하게 조작해내어 군중을 선동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선동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선동 이론과 기술을 체현하고 있는 듯하다.

가짜뉴스에 반복해서 접하는 사람들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공포와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가짜뉴스와 선동을 걸러내어야 할 공론의 장이 디지털 매체와 SNS를 통해 차고 넘치는 가짜뉴스와 선동에 도리어 뒤흔들리고, 공론 형성에 바탕을 두는 공화주의 정치가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가짜뉴스’ 담론의 정치적 효과

최근에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큰 주목을 끌게 만든 것은 트럼프의 선동정치였다. 트럼프 이전에도 선동정치를 일삼는 정치가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그의 선동정치는 가짜뉴스 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트럼프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등과 같이 그에게 비판적인 언론 매체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하여 일축하고, 그 자신은 복잡한 사실 관계들의 일면을 극히 단순하게 요약한 뒤에 그 자신이 선동을 위해 디자인한 담론의 프레임에 넣어 유통시킨다.

▲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는 정치권에서 오히려 가짜뉴스를 유통시키는 장본인이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Getty Image

트럼프가 영어 문자를 기준으로 280자 이내로 작성하여야 하는 트위터를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주로 전달하는 것도 선동정치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렇게 해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선동적인 메시지가 진실일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이지만, 대외비로 분류되는 최고급 정보들을 다루는 위치에 있는 미국대통령이 그 정보들을 선택하고 배치하고 디자인하여 트위터에 꾸겨 넣은 메시지의 유통이 갖는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트럼프가 앞장을 서서 그런지 ‘가짜뉴스’ 담론은 우리 시대에 눈에 띄는 담론 현상이 되었다. 정치가들을 위시하여 언론 종사자들, 전문가를 자처하는 지식인들, 장삼이사(張三李四), 심지어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목사들조차 가짜뉴스를 태연히 만들어 유통시키고 있고, 가짜뉴스가 심각한 폐해를 불러일으키는 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정치적 표적을 정해놓고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선동은 혐오정치의 표본을 보여주고, 정치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참으로 위험한 언동이다.

가짜뉴스의 산실: 인식론적 냉소주의와 프로타고라스주의

그런데 이처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까닭을 선동 정치에서만 찾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선동정치는 가짜뉴스가 범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창궐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가짜뉴스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널리 유통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객관적 사실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인식론적 냉소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객관적 사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나타나는 인식론적 냉소주의는 인식론적 구성주의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각 사람이 사실의 구성과 해석의 기준이고 개인의 특이성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포스트모던적 주장이 인식론적 냉소주의에 덧붙여지면, 사람들이 저마다 전파하는 메시지가 ‘가짜뉴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차이와 특이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인식론적 냉소주의가 불행한 동거를 하고 있는 오늘의 담론 상황은 각 사람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한 고대 아테네의 프로타고라스가 무덤 문을 열고 나와서 가짜뉴스를 뻔뻔스럽게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국이다.

요즈음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고 심지어 불순한 의도를 갖고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고 멸시와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선동하는 일이 태연하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공화주의 정치는 활성화될 수 없다. 가짜뉴스와 선동정치는 공화주의 정치를 위기에 빠뜨린다.

진리의 추구가 정치의 정당성을 보장한다

공화국 시민의 동등한 참여의 권리에 근거한 공화주의 정치는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토론을 통하여 공동체를 규율하는 규범들과 법률들을 제정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토론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사실을 구성하고, 그 사실에 대한 판단에 근거하여 공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이다. 토론의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여야 하고, 논증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위시한 소피스트들과 토론을 벌이며 보편타당한 진리를 구성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각자가 각기 다른 주관적인 의견을 내세우고 우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올바름과 보편성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는 의견만이 진리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시민들의 토론을 통하여 합의한 규범에 따라 법률을 제정하는 아테네 공화주의 정치의 핵심 과제였다. 진리의 추구는 정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바탕이었다. 왜냐하면 사리에 맞게 의견을 모아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 원칙에 따라 공동체를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화주의 전통에서 정치의 핵심 원리이다. 루소의 ‘일반의지’나 칸트의 ‘이성의 공적인 사용,’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혹은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동등한 참여에 바탕을 둔 공동결정 등은 공화주의 정치의 원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1)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시민들이 공화주의 정치를 지킨다

공화주의 정치는 진리를 추구하는 시민들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역량을 갖춘 시민들만이 진리와 가짜뉴스를 분별하고, 가짜뉴스를 앞세워 증오와 선동을 일삼는 사람들의 폭력을 저지한다. 공화주의 정치는 시민사회를 활성화함으로써, 계급들과 계층들, 단체들과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지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또한 국민소환권, 법안발의권 등의 제도를 창설함으로써 강화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 공론의 장을 구축하고 활성화하는 일일 것이다.

공화주의 정치를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시민들에게 인식론적 구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식론적 냉소주의와 프로타고라스주의로 퇴행하지 않는다. 인식론적 구성주의는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오만과 독재를 저지시키고, 사실을 구성할 때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사실에 관한 독단적 주장을 억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실상은 그들이 각기 다르게 구성하여 내세우는 사실에 관한 주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 주장을 덮어놓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내로라하는 보수적인 언론 매체들이 유통시키는 보도나 세평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프레임에 맞추어 사건이나 사실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엮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시민들은 보수적인 언론 매체들의 교묘한 조작과 교활한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을 빙자하는 주장들의 사실성과 타당성은 공개적인 검증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

공화주의 정치는 누구나 올바른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진리에 바탕을 두는 정치이다. 그 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들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기본 원칙들에 담겨 있다. 공화주의 정치가 그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 진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계급들과 계층들, 단체들과 집단들, 특히 정체성 집단들에게 활짝 열려 있어야 하고, 개성적이고 특이한 관점에서 끊임없이 풍부해지고 다양해져야 한다. 포스트모던적 관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공화주의 정치는 모더니즘의 틀에 갇혀 딱딱하게 굳고야 만다.

공화주의 정치는 승리할 것이다

공화주의 정치는 가짜뉴스에 의해 방해받겠지만, 가짜뉴스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공화주의 정치는 신중하게 가리고, 헤아리고, 결정하는 긴 호흡의 정치이다. 가짜뉴스를 전파하여 증오와 선동을 일삼는 조급한 정치에 비해 굼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급하거나 조바심을 쳐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를 갖고서 선동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과 그 선동에 넘어간 사람들이 성찰하고 토론할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탄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뒤흔들고 무력화하려는 공론의 장을 지키고 않고서, 가짜뉴스와 선동을 어떻게 걸러낼 수 있겠는가? 진지하게 진실을 추구하며 토론을 통하여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공론의 장이 없는 곳에서 공화주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진리 추구에 바탕을 둔 공화주의 정치는 거짓에 근거한 선동정치를 반드시 이길 것이다. 공화주의 정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들을 지키고자 하는 강력한 시민들에 의해 수호될 것이다.

미주

(미주 1)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로는 강원돈, “민중이 참여하는 정의 포럼의 구성 문제,” 『신학연구』 67(2015), 186-199를 보라.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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