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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있다(미가 4:1-13)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 승인 2020.02.04 00:53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은 불의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이었지만(3장),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은 평화와 평등의 세상이 됩니다. 평화란 너무나 귀중한 것이지만 온전하게 이루어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은 결국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대한 기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묵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1) 하나님의 날인 “끝날”이 내세가 아닌 현세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과 2) 그날에 세우실 평화의 나라가 불특정 다수를 위한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1) 현세의 어느 시점에 임하실 하나님의 날이란 이 땅에서 잃지 말아야 할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내세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짓밟는 사람들입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면의 평화를 위해 현실로부터 도피를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무시간적인 소망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이 땅에서 맛보게 될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의 역사를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세계는 멸망하도록 지어진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보시기에 이름답게 지어진 세계이며, 많은 불완전함과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이 개입하고 다스리실 가치를 지닌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나라”는 나치가 꿈꾸었던 특별한 선민 엘리트를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모든 종류의 파쇼들이 지향하는 소수의 절대권력에 의한 평화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히려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가운데 놓였던 자들이 통치자가 되는 나라입니다(6절). 그 나라는 약해서 짓밟히고 억울한 백성들을 위한 나라인 것입니다. 어떤 특권층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존재들을 통해 칼이 필요 없고 창이 필요 없으며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 평화의 상징인 낫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모습. ⓒGetty Image

4장 본문말씀 중에는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180도 달라지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5절 말씀이 그렇습니다.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5절) 이 말씀을 타종교에 대한 ‘배제’로 읽으면 폭력과 갈등의 역사가 시작되고, ‘공존’으로 읽으면 대화와 이해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말이 남의 신앙을 배제하거나 짓밟아도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했던 평화와는 전혀 다른 결과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함, 신앙의 성장을 지향하는 성도라면 배제, 배척, 증오, 혐오 대신 포용과 공존의 계시를 말씀 가운데에서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미가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시듯, 하나님은 평화를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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