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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으로 우려낸 맛”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2.10 12:58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태복음 2:1~12)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탄생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가져온 삶은 무엇입니까? 도망자, 이방인, 난민의 삶입니다. 이집트로 숨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영아 살해라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톰 라이트는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평화의 왕은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 목에 현상금이 걸린, 집 없는 난민이었다.”(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 양혜원 옮김 [서울: IVP, 2010] 36)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의문과 불안이 가득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았는데, 왜 이렇게 힘겨운 일이 계속될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제까지 숨어살고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할까?’

ⓒ하태혁/Gallery Cafe U.H.M.

롤랑 바르트는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변광배 옮김 [서울: 민음사, 201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 산다는 것은 …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를 받는 것입니다.”(황정은 “디디의 우산”, 242) 부모님 해주신 위로와 격려의 말이 생각나 불안을 딛고 도전하게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나아가게 합니다. 또한 이미 벌어진 일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도 깨닫게 합니다. 고통스럽고 참담한 일 속에서 말씀은 보이지 않던 생명을 보여줍니다. 십자가가 생명의 입구라는 진실을 말씀이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2장도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뜻을 읽어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마주쳤을 물음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영아살해의 처참함, 도망자, 이방인, 난민의 삶 그 혼돈과 공포를 앞선 문장,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 읽습니다. 하나님 뜻이, 말씀 그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씀의 관점에서 그 모든 사건을 다시 음미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 가족이 겪은 사건이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예언과 성취의 옷입니다. 마태복음은 구약의 말씀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성취인용문이라 불리는 이런 표현이 마태복음에 열 번, 여기에만 세 번 등장합니다.

사춘기 때 듣던 노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악은 단번에 그 시절로 마음을 이끌어갑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우울과 허무 가득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풍경이 보였습니다. 힘겨워했던 그 시절, 그때는 느끼지 못한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혼자 괴로워했던 순간순간 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이들의 사랑이 늘 함께 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기억속의 사춘기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걸음 떨어져서 더 넓고 깊게 살펴보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경말씀도 우리가 경험한 일을 새롭게 보여줍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34:8) 마태복음은 예언과 성취의 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있습니다. 차 한 잔 찬찬히 음미하듯 하루를 맛보면 어떻겠습니까? 정신없이 바쁘게 쫓겼어도, 그 하루를 고요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담습니다. 녹차잎을 따스한 물에 우리듯, 하나님의 사랑에 우려냅니다. 그리고 찬찬히 맛을 보면, 순간마다 놓친 풍미들이 되살아납니다.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는 묵상, 하나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상,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 그 모두가 맛보아 아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마음으로 깨어 맛보는 삶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맛을 놓치지 않는 은총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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