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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사이에예수님의 비유(마가복음 4:33-3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2.16 17:05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소외당하고 외면당한 사람들을 안아주시는 활동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회개’와 ‘천국’에 중심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회개이고, 그렇게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천국’이 도래하게 되는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우리가 읽고 마음에 받아들일 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쉬운 말씀이었는지 어려운 말씀이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해서, 목회자나 신학자의 설명이 있어야만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누가 읽더라도 읽기만 하면 그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오늘 본문 34절에 나타난 말씀이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비유’로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고, 그 해석은 제자들에게만 설명하셨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미가 담긴 비유의 이야기만을 전하셨고, 그 본래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 집단만이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 본래 의미를 절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시편 78편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신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이에 대한 예시도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씨 뿌리는 비유’와 ‘그 해석’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모두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 앞에서 전하신 ‘씨 뿌리는 비유’가 들어가 있고, 마찬가지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그 의미를 해석해주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전하신 비유는 ‘씨를 잘 뿌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전하신 해석은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비유의 핵심과 비유에 담긴 의미가 바뀌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왜곡이 일어난 것인지, 복음서를 기록했던 교회들이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선포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셨던 비유의 의미와 교회 시대에 선포되었던 비유의 의미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비유

만약 우리가 본래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비유의 의미를 찾아가고자 한다면, 나중에 첨가되었을지 모르는 해석들을 제거하고 예수님께서 본래 말씀하셨을 비유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성서의 말씀은 퍼즐 맞추기 일까요. ⓒGetty Image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예언자들도 때로 비유를 사용합니다만, 비유는 무엇인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사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비유는 어떠한 것을 또 다른 것에 빗대어 쉽게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결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 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부흥 강사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상당히 원색적인 이야기들을 예화나 비유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흥회 성격상 아이부터 어른까지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런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고, 이런 이야기를 잘 하는 분들이 성공한 부흥 강사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말씀을 잘 하는 분이었을까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는 점을 보면, 예수님의 비유는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로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3절에는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라고 말합니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비유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직유와 은유가 있습니다. 직유는 직접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같은’, ‘~처럼’, ‘~인 듯이’와 같이 조사를 붙여서 만드는 방법입니다. 직유는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 ‘닭장 같은 아파트’ 이런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은유는 직유와 같은 조사를 사용하지 않고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은유와 직유의 가장 큰 차이는 직유는 실질적 유사성이 필요하지만, 은유는 내면적 동일성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내 마음은 호수다’와 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동일성을 담고 있는 비유법입니다. 물론 은유의 경우에도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대부분의 사람이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올바른 비유로 작용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비유는 직유일까요 은유일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은유로 생각해왔습니다. 복음서들이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으며, 그 의미는 제자들만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유법도 사실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때 비유법으로 작용을 하지만,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비유는 아무나 알 수 없는 은유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비유는 해석해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런데 앞서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살펴보았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표현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과 같으니’입니다. 이 표현 방법은 은유가 아니라 직유의 표현법입니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통해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의미로 천국을 설명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라나는 씨 비유

이런 맥락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천국 비유 중 마가복음에만 나타나는 비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4장 26-29절에 나타난 자라나는 씨 비유는 없습니다. 또 마가복음에는 누룩의 비유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4장 26-29절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이 비유는 씨를 뿌리고 추수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너무 간단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씨가 자라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야기를 시작하시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농경사회에서 씨를 뿌리고 이삭이 자라고 곡식이 열매를 맺으면 추수한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이런 곳이라고 하십니다. 물론 실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땅 상태에 따라서 씨가 열매를 못 맺을 수도 있고, 그 해에 비가 잘 와야 하고,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없어야 씨앗이 열매를 맺게 된다고 이야기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농사를 잘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저 씨앗을 뿌리면 열매를 맺는다는 자연 현상 자체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은 과학적으로 많은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씨가 왜 싹을 트는지 그 과정에 어떤 현상들이 발생하는지 이미 생물학적으로 많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어떤 설명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근본적인 생명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씨앗 속에 생명이 담겨 있을 수 있는지, 그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또 다른 생명들, 수많은 씨앗을 만들어내는지,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어도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생명을 만드시고 생명이 자라나게 하시고, 생명을 다시 생명으로 이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생명에 관한 어떤 철학적인 이야기를 던지고 계신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셨다면 씨앗보다는 사람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시는 편이 더 이해가 쉬웠을 것 같습니다.

천국은 바로 이 곳에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는 결국 우리가 그 씨앗으로부터 열매를 얻는다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씨를 뿌리고 그로부터 열매를 얻는다는 말씀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고 월급을 받아 그 월급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도 어떻게 일해야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잘 압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방법을 잘 알듯이 우리도 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때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연결된 지금 사회 속에서 우리가 모든 결과를 다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했다고 해서 그대로의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AI가 엄청나게 발달한다면, 카오스처럼 연결된 이 세상의 인과관계가 다 밝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은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옛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예상대로 일이 잘 끝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순리(順理)’대로 됐다고 말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흘러갔음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 중간에 예상 못 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결과로 이어졌을 때, 그것이 순리대로 일이 잘 풀려나간 경우입니다.

우리는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할지 안 할지를 모릅니다. 이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도록 이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멀리 있는 어떤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우리의 일이 순리대로 진행되어 나갈 때, 우리는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도 우리는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고 돈 벌어서 집 살 수 있다’는 말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부모 찬스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이루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로마에 의한 속국으로 지배당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순리대로 살아간다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삶도 우리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너희에게 천국이 가까이 있다. 너희는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 삶에서 모든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현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우리가 감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감기가 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고, 그러면서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 알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천국이고, 우리는 천국을 누릴 수 있는, 또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천국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심으로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 천국을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천국의 기쁨 속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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