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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익숙해서는 안 된다,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재일동포로서의 삶과 마음
이윤령 | 승인 2020.02.18 01:45
이 글은 지난 2월17일(월) 오후 3시부터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진행된 NCCK청년/국제위원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와 NCCJ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가 협력한 “조선학교(우리학교) 지키기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서 이윤령 학생이 발표한 발표문 전문입니다. 일본 내에서 차별당하는 재일동포의 삶을 보여준 글입니다. 발표문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이윤령 학생과 관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2학년 이윤령입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중고의 12년간 조선학교-우리 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조선의 말과 역사문화를 배우고 무엇보다도 재일동포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저였지만 언제부턴지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것에 솔직히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습니다.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미사일, 납치문제, 독재정권 같은 소위 말하는 “북조선비난”이나 한일관계의 악화가 보도될 때마다 그 화살은 재일동포를 향했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재일조선인을 향해 “죽인다”, “바퀴벌 레”등 심한 댓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학교 문화제의 날 학교 근처 역에서 모르는 아저씨들이 “조선사람 죽으라”, ”일본에서 나가 라” 등의 폭언을 큰 소리로 외친 적도 있었습니다.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3 시기 수학여행으로 공화국으로 출발할 때 나리타 공항에서 북조선여행을 자숙하라는 문서에 우리는 사인을 강요당했습니다. 이 문서에 사인하느라 출발이 1시간 이상 늦어졌습니다. 일본에 돌아왔을 때도 세관에서 짐을 확인한다고 트렁크를 열어야 했습니다. 주위의 시선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3일 고교무상화문제를 둘러싼 재판의 제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날 전국각지에서 많은 동포들이나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모여 우리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물론 우리 학교 학생도 전교생으로 재판소로 갔습니다. 하지만 판결은 패소였습니다. 판결이 나오자 동포들 속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당시 아버지·어머니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여러 감정이 섞어서 말을 잃었습니다.

▲ 2019년 11월 2일 조선학교 관계자들이 일본 도쿄(東京) 문부과학성 앞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안에 있으면 재일조선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있을 수 있지만 한걸음 밖으로 나가면 저 자신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TV를 볼 때나 인터넷에서 댓글을 볼 때 입으로는 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진심은 나는 일본에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일본사람으로 태어나면 좋았을까? 하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대학을 입학하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입학하기 전 저는 불안이 많았습니다. 익숙한 우리 학교를 떠나고 처음으로 다니는 일본학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재일동포한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나를 싫어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의 대다수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서 재일동포라고 이야기하면 “처음 들었다. 전혀 몰랐다.” 이렇게 말하는 애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저는 친구가 저를 재일동포라고 이상하게 보지 않아서 안심도 되었지만, 반면에 재일동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하고 놀라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경험한 일본 사회는 우리를 멸시하고 차별했는데, 왜 일본친구들은 우리 존재를 모를까? 많이 당황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차별에 익숙했기 때문에 왜 우리가 차별 당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차별당할 이유가 없이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별에 익숙해서는 안 된다,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여야한다, 그렇게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먹은 후에 저는 이제까지 피해를 당해 온 우리 재일동포들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응원하고 함께 노 력해주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무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문부과학성 앞에서 우리의 배울 권리를 위해서 소리를 지르며 함께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들을 오해하고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며, 그보다 지원해주시는 사람들이 더 많고, 실상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모르거나 알더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대학에서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studies)을 전공하면서 국제사회 그리고 일본의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알아가게 되면서 우리 재일동포 같은 소수자들이 살기 어려운 세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친구가 제가 재일동포 인 것을 알게 된 이후에 관심을 갖고 힘내자고 했을 때, 지금의 이런 어려움이 반드시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재일동포의 처지나 심정은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이 매우 복잡합니다. 조선 국적의 사람, 한국 국적의 사람, 일본 국적의 사람도 있고, 민족의 이름이 없거나 있는 데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말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재일동포라도 사람마다 다른 고민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저는 우리 재일동포끼리 서로의 고민이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며 함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대학에서의 만남과 대학생활을 통한 경험이 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제가 이런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재일동포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우리 이름과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재일 동포로 태어났기 때문에 뿌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민족적, 사회적 소수자의 시점을 가지고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정든 우리학교가 ‘일본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되고, 작년 10월부터는 우리 유치원도 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되어 확실하게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깊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아직 약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많이 경험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우리 함께 잘합시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윤령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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