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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목사의 영향과 보호 아래 있었던 주체사상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74)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2.27 17:33

Q: 해석 손정도 목사의 민족신학과 주체사상의 관계는 무엇인가요?_해석 손정도 목사와 김성주(일성)(1)

A: 올해는 3.1 항일독립투쟁 10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1 항일독립투쟁은 신앙과 정견과 계급과 지역을 뛰어넘어 전 민족이 대단결하여 일제에 항거한 거족적인 투쟁입니다. 이 3.1 항일독립투쟁의 정신이 지향한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분단으로 인해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연재부터 3회에 걸쳐, 3.1 항일독립투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해석 손정도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김성주(일성)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해석 손정도 목사의 민족신학이 주체사상의 창시에 끼친 영향의 일단이 조명되고, 향후 전개될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에 있어서도 주요한 대화의 주제로 자리매김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3.1 항일독립투쟁은 신앙과 정견과 계급과 지역을 뛰어넘어 수많은 주체들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준비하고 일구어낸 거족적인 투쟁입니다. 3.1 항일독립투쟁이 지향한 민족적 이상이 좌절된 지점은 남북 분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1 정신 회복을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남북 대화입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민족신학이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 창시에 끼친 영향을 조명해 볼 이 연재가,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주제가 되고,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과 주체사상 신봉자들 사이의 대화, 신앙과 사상 간의 대화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해석 손정도 목사 ⓒGetty Image

지난 연재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북은 주체사상의 창시자를 김일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1920년대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실천적 경험과 교훈을 개괄’하여 주체사상을 ‘창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한 때로부터 1930년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한 때까지로 주체사상 창시의 시기를 특정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조선혁명의 진로」 발표에 대해,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노선의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조선혁명의 진로」는 주체사상 창시의 출발이 되는 두 가지의 진리를 담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의 진리 중 하나는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 동원하여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혁명은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자기가 책임지고 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북은 김일성이 이 두 가지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의 폐해’로부터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의 엄중한 후과’에서 찾게 된 ‘심각한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김일성은 「조선혁명의 진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험은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기 위하여서는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조직 동원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조선혁명의 진로」를 통해 밝힌 ‘새로운 길’은 주체사상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것과, 매개 나라의 혁명은 ‘주인’인 그 나라 ‘인민’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가 도출되었고, ‘사람은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주체사상의 ‘사람에 대한 견해’가 확립되었기에 김정일은 김일성의 이 보고를 ‘주체사상 창시를 선포한 역사적 사변’으로 평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이 주체사상의 창시기로 특정한 1926년에서 1930년에 이르는 시기는 김성주(일성)가 해석 손정도 목사의 보호와 영향 하에 있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주체사상 창시기에 해석 손정도 목사가 김성주(일성)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해석이 주체사상 창시의 물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주체사상의 형성에 해석의 사상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는 일생에 거쳐 ‘파벌(종파)주의’를 반대하였고, ‘자신력(自信力)’을 강조하였습니다. 해석은 1911년 4월 15일자 『그리스도교 회보』에 「그리스도인의 자신력」이라는 기고문을 투고하였습니다. 이 기고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크도다. 만사를 물론하고 성취한 원인은 자신력의 지은 것이로다. 대개 자신력은 나무의 뿌리가 되고 일하는 것은 가지와 잎이 되며, 자신력은 씨의 생기가 되고 일하는 것은 꽃과 열매가 되나니, 뿌리가 없으면 나무에 어찌 지엽이 발하며, 씨의 생기가 없으면 어찌 꽃과 열매가 열리리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조선 교인의 믿음이 세상에 전하여 들림이로다.
그런즉 항상 기도하고 바랄 것은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한 은혜를 내리시사 전국 교인이 믿음으로 믿음에 들어가 굳게 자신하는 힘이 일어남이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서양 격언에 이르기를 ‘사람이 편안하고 사치하게 세상을 보내면 환란을 당할 때에 용진분투(勇進奮鬪) 하는 힘이 없고, 또 사람이 전장(戰場)에 가장 요긴한 자신력이 나지 아니 한다’ 하였으니, 우리는 마땅히 편안함과 시치를 사랑치 말고 환란에 가하는 것을 편히 여길 것이라. 그리하면 칠팔월 망야(望夜)에 명랑한 달과 같이 우리 마음에 자신력이 생기리로다.
형제들이여. 또 동양 격언에 이르기를 만사를 물론하고 ‘시작이 반이라’ 하였으니 우리는 되겠다, 되지 아니하겠다, 판단치 말고 마음에 있는 대로 하여 봅시다. 그리하면 만삭되지 못하야 생산한 우리도 자신력을 얻어 바울의 일을 할지로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남을 의뢰치 말라. 만일 누구든지 남을 온전히 의뢰하는 자는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다른 사람으로 자기를 대신하며, 또 혹 절반은 자신하고 절반은 의뢰하면, 이는 반은 자기요 반은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
말하기 쉬운 20세기에 개인의 직위는 개인의 자신력으로 얻으며, 일가의 업은 일가의 자신력으로 성취하며, 일사회의 면목은 일사회 회원의 자신력으로 유지하며, 일국의 행복은 일국 국민의 자신력으로 향유(享有) 하느니 그런즉 우리 교회도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각 교우의 자신력으로 발달할지라.
만일 우리가 자신력이 없으면 명일이 금일과 같고 래월이 금달과 같고, 명년이 금년과 같하야 언제든지 스스로 서는 힘을 얻지 못하리니,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은 생각하여 보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당신의 사자로 쓰시고저 하심으로 거년에 전무한 대부흥회가 처처에 일어나서 백만명 기도와 백만명 찬미가 전국을 흔들 뿐 아니라, 영.미 양국 각 교회에서 조선을 위하여 특별히 날을 정하여 기도회를 열고 세계 만국이 다 주목하기에 이르렀으니, 이와 같이 은혜 받는 때에 우리는 속히 자신력을 얻어 남을 믿지 말고 스스로 서서 동양에 선교하는 큰 기관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믿고 바라나이다.”

베이징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세계 각국의 형세를 살펴본 경험에 기초하여, 해석은 남을 믿지 말고 스스로 서는 ‘자신력(自信力)’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해석의 민족신학이 동시대 여타 신학들과 달리 구별되는 점입니다. 1910~1920년대 조선의 개신교는 태동기였으며, 조선의 신학은 서구 선교사들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당시 서구 선교사들은 조선의 목회자들이 신학적으로 깊이 발전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으며,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것도 금기시 하였습니다. 서구 선교사들은 조선의 목회자들이 제국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학에 머무르면서 현세에서 관심을 돌려 내세를 지향하는 설교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해석은 자신력(自信力)을 가지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용진분투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석의 신앙에서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하나로 융합되어 어느 것을 먼저라고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해석에게 있어서는 목회이자 독립운동이었으며, 독립운동이자 목회였습니다. 해석의 민족목회 과정에서 열매 맺은 것이 해석의 민족신학이며, 이 민족신학은 한마디로 ‘자신력(自信力)’의 신학이었습니다.

해석은 자신력을 강조하는 민족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해 임시정부가 외교론에 치우쳐 남의 나라를 바라보자 과감하게 결별하고 길림으로 갔으며, 길림에서 자기의 힘에 의지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할 독립운동기지 마련에 매진하였던 것입니다.

해석이 강조한 ‘자신력(自信力)’은 주체사상이 강조하는 ‘혁명은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자기가 책임지고 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연상하게 합니다. 주체사상도 남에게 기대는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의 산물인 ‘종파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 유사성은 시대의 동일성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해석과 김일성은 동시대를 살았으며, 그 시기는 1920년대였습니다. 주체사상은 ‘1920년대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실천적 경험과 교훈을 개괄하여’ 창시되었다고 합니다. 1910년대부터 간직한 ‘자신력(自信力)’ 신학에 기초하여 ‘1920년대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최전선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실천한 이들 중 한 사람이 바로 해석 손정도 목사였습니다.

해석은 1920년대 내내 큰 나라에 의지하는 노선에 반대하여 ‘자신력(自信力)’에 근거한 무장항쟁의 거점을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모든 종류의 파벌에 반대하고 제 독립단체들이 합심협력하여 일치단결할 것을 부르짖었습니다. 김일성은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실천적 경험을 총괄적으로 분석하여 ‘종파(파벌)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며, 큰 나라나 기존의 진리에 의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동일한 해답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교훈’을 해석은 ‘신앙’으로 ‘고백’하였고, 김일성은 ‘사상’으로 ‘정립’하는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걷긴 하였으나, 주체사상의 창시기에 해석이 김성주(일성)를 보호하고 있었고, 민족신학에 기반한 열정적인 목회활동과 설교로 김성주(일성)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주체사상의 형성에 해석의 민족신학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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