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성경의 침묵을 읽다”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3.02 17:04
1 야곱이 고개를 들어 보니, 에서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야곱은, 아이들을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나누어서 맡기고, 2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은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은 그 뒤에 세우고, 라헬과 요셉은 맨 뒤에 세워서 따라오게 하였다.(창세기33:1-2/새번역)

목소리를 빼앗긴 약자의 침묵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목소리를 빼앗긴 약자의 목소리를 찾아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납니다. 일상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속 하나님의 침묵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합니다. 반론도 있지만, 분명 목소리를 빼앗긴 약자들이 역사의 행간에 가득합니다. 성경은 예외일까? 성경에도 이름 없이 배제되고 억압당한 이들이 있을까? 나그네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밤새 윤간 당하는데 내어준 레위인의 첩(사사기19장)은 어떤가요? 레아와 라헬의 사랑쟁탈전에 이용당하는 몸종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의 이름 없는 자식들은 어떤가요?

▲ Jerry Uelsmann, 「Home Is A Memory」

오수경 님은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줍니다. “실바와 빌하와 그의 아들들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를 위한 한풀이, 그런 레아의 추격에 불안을 느낀 라헬의 방어막으로 이용되었을 뿐 진짜 가족이 되지 못했습니다. … 심지어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빌하를 강간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창35:22). … 성경은 이렇게 약자들의 ‘생각과 말’을 누락시켜 강자의 언어로 해석할 여지를 줍니다.”(오수경, 「두 아내와 두 여종/빌하와 실바」, 『사순절 묵상집 이 여인으로 보라2』[서울:평화교회연구소, 2020], 12~13)

‘가부장적 사회의 그늘이었을 뿐이고, 야곱이 저지른 일이지 하나님 시킨 일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 이 부분을 읽고, 설교하면서 약자들의 처절한 아픔에 주목한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 부분을 기록한 사람, 후에 읽은 사람과 설교한 사람 모두에게 여전히 이들은 소외된 게 아닌지. 그렇다면 자신 모르게 강자의 언어로 눈이 가린 게 아닙니까.

성숙한 접근이라면, 그 본문이 원래 말하고자 한 바에 우선 관심합니다. 정치, 사회, 역사의 맥락을 무시한, 자의적인 왜곡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록자나 편집자의 의도와 뜻을 분명히 찾아야 하고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없었던 하나님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사회, 문화, 종교적 틀의 한계를 하나님 뜻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행간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마음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 눈으로 읽어내시는 예수님처럼.

성경이 승자의 기록이 되지 않는 길은, 성경이 기득권자의 도구가 되지 않는 길은 오늘 읽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어떤 내용이냐만큼 어떤 눈으로 읽느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는 말이 회자됩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당하는 자의 자리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계신 주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강요된 침묵에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언어는 침묵이라죠. 성경의 행간, 그 침묵에도 하나님의 진심이 스며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빼앗긴 약자의 침묵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를 빼앗긴 약자의 목소리를 찾아줘야 하나님의 말씀이 누락되지 않습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이해학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