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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편파적 글쓰기를 합니다송진순 NCCK신학위원을 만났다
이정훈 | 승인 2020.03.07 18:3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신학위원회가 매달 『사건과 신학』이라는 웹진을 발행하고 있다. 보통 그 전 달이나 이전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주제들을 선정하고 신학자들이 이에 대해 분석하고 신학적인 응답을 내놓는 작업이다. 매달 6-8편 정도의 글이 발행된다.

에큐메니안에서도 이러한 글들 중 소개하고픈 글들을 선정 매주 소개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많게는 3편 정도의 글은 누락될 때가 있다. 이러한 누락은 글의 중요도나 퀄리티가 낮아서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편집부의 의도가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2월 웹진의 글 가운데 그동안 소개하지 못했던 필진 중 한 학자의 글을 읽게 되었고 이 글의 저자는 ‘송진순’ 교수였다. 그간 누락의 누락을 거듭하다보니 기자의 눈에 처음 보였던 필자였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글쓰기와 내용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자 개인적으로 낯선 학자였고 글의 내용이 신선했던 터라, 『사건과 신학』을 담당하고 있는 NCCK 강석훈 국장에게 연락,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송진순 교수가 가르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방문,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 국장에게 이미 신진학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와 신학계의 상황에서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이대 나온 여자입니다. (웃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마 거부감이 드실 것 같은데요. 저는 내세울 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생각건대 주변인 중에 주변인 아닐까 싶어요. 물론 반박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요. 그런데 신학이라는 삶의 자리에서는 marginality, 주변인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NCCK 혹은 에큐메니안 운동 내에서 젊은 목화자나 학자들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다. 그럼에도 신진학자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송진순 선생. ⓒ이정훈

주변 ‘of the’ 주변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선, 이화대학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공부한 기독교학과가 인문대학 소속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적 배경에서 학부에서 지금까지 공부했다는 점이 크지요. 그래서 교단 신학이 아닌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이라는 점에서, 주류 남성의 신학적 시각과는 다른 시선과 방향성을 갖고, 문학적으로는 여성적 글쓰기를 하면서 주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주변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목사안수를, 예장 통합 출신이긴 하지만 독립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이런 점에서 주변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역시 늘 경계해야 한다는 점도 압니다.

개인적으로는 예배와 예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 절기와 전통 그리고 예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설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다양하고 잡다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사실 한국 사회나 교회가 그리고 신학조차도 많이 보수화 되었습니다. 그래도 NCC 하면 여전히 진보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신학위원회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 신학위원회 강석훈 국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 강석훈 국장: 제일 처음 저하고 같이 일을 해보게 됐을 때는 제가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누었는데 성 소수자의 목회와 관련되어 있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다가 국제 심포지움 진행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국 신학자로서 성서신학자로서 발표를 해줄 분을 찾고 있었어요. 잘 아시다시피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가지신 분들은 그걸 잘 안 하시려고 하죠. 그때 용감하게 그 부분에 대해 성서신학적인 한국의 신학 안에서 이것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발제를 해주셨어요. 그때 계기가 되어서 만남을 가졌고 그 이후로 몇 번 정도 더 프로젝트로 만났죠. 그리고 이번에 “사건과 신학”(NCCK신학위원회가 매달 발행하는 웹진)이라는 것을 새롭게 프로그램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했고 그중에서도 선생님께서 초반에 이야기 해주셨지만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좀 더 가난한 사람들 소수자들, 권력이 없는 사람들 그게 사회의 어느 부분에 있어서든. 그분들의 시각이 필요했었고 시선이 필요해서 그래서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응답을 해주셨죠.

▲ 아니 교수님, 왜 그렇게 무모하게 대답을 하셨어요. (웃음)

- 강: 이건 농담인데 지금쯤은 후회를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제가 하도 부려먹어서. 이 계통의 물귀신으로 통하시는데 한번 물면 안 놓기 때문에. (웃음)

▲ 성서신학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굉장히 논쟁이 심하고 이야기하고 나면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되는 주제인데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 원래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2018년도 ‘함께하는 여정’에서 한국 상황을 발표하기 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한국 개신교인의 사회인식에 대한 조사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젠더 영역을 맡아 인식조사를 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개신교인의 혐오지향성을 살펴보게 되었지요. 2015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혐오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진지하게 보게 되었어요. 이러한 것이 계기가 되어 NCCK와 국장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측 발표를 담당하면서 인연된 송진순 선생(사진 왼쪽)과 NCCK 강석훈 국장(사진 오른쪽). 이들은 『사건과 신학』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편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 발표하시고 후회는 안 하셨어요? (웃음)

- 후회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왜냐하면, 이번에도 개신교인의 인식조사를 하면서 보니 젠더 영역에서 비개신교인과 개신교인의 혐오 지표가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어요. 타인에 대한 환대와 사랑의 종교가 비개신교인들보다도 심각하게 성, 인종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그것을 신앙의 합리화하는 과정이 가시적 현상이자 수치로 드러나게 되었지요.

▲ 이번에 『사건과 신학』에 쓰신 “기생과 공생 사이”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집이나 부동산 등의 경험이 직접 있으셨나요?

- 저희도 이전에 집을 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구입했는데요.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한국의 서민들은 다 마찬가지겠지요.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행정적으로 정리를 하게 되면서 제가 20년간 거래하는 은행에 가서 대출 한도를 알아봤는데요. 암담하더라고요. 4대 보험도 안되는 상황에서 부모님 집에 빌붙어 살아가지 않는다면 살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싱글에, 자식 없고, 비정규직, 계약직에 있는 사람들, 특히 취업조차 힘든 청년 세대가 이 사회에서 갖게 되는 열패감과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인식,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동산 대책 이후 많은 기사나 갭투자에 대한 책을 보면서 절망스러웠습니다. 직장, 집, 부모의 재력 등 소위 없는 사람들은 살 곳이 없더라고요, 진짜 부동산 카스트이지요. 매일의 노동이 건물주와 은행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기생과 공생 사이> 본문에서 제가 “규제로 인해 잠시 주춤했으나 들끓는 욕망이 어디로 튈까”라고 썼는데요, 일주일이 못가서 뉴스에서 ‘수용성’發 집값 이야기가 쏟아지더라고요,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며 참, 씁쓸했지요.

글을 쓰면서 의식있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토지 공개념, 즉 희년 사상 중심으로 토지에 대한 개념과 실현가능한 정책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논하신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렇지만 이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안과 욕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합니다. 신앙 혹은 정의로운 삶에 대한 소리도 당장 내 눈앞의 경제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니까요.

그래서 팔베개 하고 누워 “무자산이 자산이 되고 무능력이 능력이 되는 시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나 해볼까 하고 쓴 것입니다. 그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는 ‘자산과 능력’의 의미를 다시 정의내리는 일에서 출발하는 것인데요, 힘없는 사람들의 즐거운 상상과 연대가 모인다면 물질로 질서 지워진 사회에 균열과 틈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의 동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기본소득도 그렇고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와 안전망 그리고 나눔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사건과 신학』의 주제나 글을 쓰실 때 어떤 마음이 드세요.

- 글을 쓴다는 건 편향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는 없잖아요. 나의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학의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자기만의 리그에서 소통할 줄 모르는 선포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들, 나아가서 종교를 넘어 일반 대중과 대화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현실은 학계와 교계(신학과 신앙)는 물론 하나의 교회에서도 목회자, 직분자, 평신도 사이의 위계적 질서를 기반으로 각기 다른 담론의 수준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 강: 이건 첨언인데 제가 사건과 신학을 하면서 선생님들한테도 가끔이긴 하지만 요청을 드리는 바는 편들기를 좀 해달라는 말을 해요. 우리가 『사건과 신학』을 하면서 객관적인 생각을 갖자고 하는 건 아니고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의 편을 들어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 『사건과 신학』에 글을 쓰시면서 혹은 같이 모임하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사건과 신학』은 1년 정도 했는데요, 재미있어요. 2018년 말에 국장님이 신학위원회 아래 『사건과 신학』이라는 소위원회를 기획하시면서 연령, 교단, 전공, 관심사가 다양한 위원님들로 구성하셨어요. 그러면서 비교적 젊은 층인에게는 “좀더 야심차게, 푸시도 할 겁니다.” 하셨는데요, 지금까지는 위원님들과 매번 즐겁게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과 삶의 자리에 대해 배운다는 것이죠. 끊임없이 배워간다는 것은 진짜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사건 하나하나를 대할 때는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파요. 예를 들면 김용균님 이야기, 아동학대로 살해당한 소녀 이야기, 우리 안에 고통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가 고민입니다. 국장님이 이야기하셨듯이, “말하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사건과 신학』을 통해 이런 일련의 하나하나 사건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면에서 참신한 시도이고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매번 부딪히는 내 안에 딜레마는 과연 이러한 내가 그들의 시선이나 시각을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오만할 수도 있는데요. 그러기엔 제가 가진 것이 많은데 말이죠. 그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고 그들의 어떤 아픔을 제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리하려는 노력과 과정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겠지요.

▲ 학자로 학교에서 공부하시다가 구체적인 사회현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하셨을 때 제일 어려웠던 점이 뭐에요?

- 매일의 사건과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으려고 해요. 저도 잘 모르니까 라디오, 뉴스를 듣고 선후배들과 이야기하죠. 그렇지만 저는 무언가 구분 짓고 나누는 것, 이것은 사회적 현상이고 이것은 학문의 자리고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수업에서 토론 시간에 학생들에게 화두를 던져주지만 막상 자신의 이야기와 수다를 많이 하라고 이야기해요. 솔직히 수다를 떨다보면 삼천포로 빠지잖아요. 수다는 그것이 묘미이죠. 그 안에서 걸리는 정형화 되지 않은 어떤 생각의 실마리들이 많은데요, 수다는 이것을 신선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니까요. 사건과 신학을 가볍게 평가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사건과 신학은 그러한 다양한 색감을 가진 수다 떨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것을 통해 건강한 소통의 작업이 일어난다면 굳이 이것은 나의 사회적 현상의 바깥 문제고 이것은 내 안쪽의 신학적인 자리의 문제고 하는 경계가 허물어질 것 같아요. 저는 경계 허물기가 먼저 일어나야 된다고 봐요. 사회와 신학과의 선이 허물어지고 사유하고 되받아치는 수다와 소통의 장이 생기다 보면 건강한 실천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의식하면 행동하게 되니까요.

사실 교회가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너무 많은 경계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가의 문제가 크잖아요. 저는 사건과 신학이 교회의 경계 허물기의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이화여자대학교에 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입학했다가 신학으로 전향한 후 박사학위를 취득한 송진순 선생. 그는 모든 상황이 자신을 주변 of the 주변이 되게 했다고 한다. 그가 주일에 사역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 ⓒ이정훈

▲ 그동안의 다루어 왔던 주제들 중에서 제일 인상에 남았던 주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 매번 의미있는 작업들이었는데요, 1월에 쓴 부동산 문제도 씁쓸하고도 흥미롭게 썼고요, “소녀 말을 건네다”도 인상 깊었어요.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학대를 받으면서 죽어나가는데 어른 세대인 우리는 복지 사각지대, 혹은 폭력의 상황에 버려진 아동 인권에 대해 전혀 몰랐구나하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어요. 아무리 OECD의 순위를 손꼽고 국가적 위상과 경제 지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아동 문제,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을 다룬 교단 총회 문제도 그렇고, 성탄을 앞두고 우리는 무엇에 관심하고 있는가 하는 12월의 “성탄, 무력한 자들의 고백”도 의미있는 주제였어요.

 

▲ “내가 만약에 『사건과 신학』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편집인이다.”라고 한다면 한번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가 있으세요? 심도 있게 한번 다루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는 없으세요?

- 아, 저는 무엇을 주도하거나 편집인 되고 싶지는 않아요. (웃음) ‘주변 OF THE 주변’이 되고 싶은데 뭐하러 주도권을 잡겠어요. (웃음) 그리고 강 국장님이 정말 자신을 헌신하시는 걸 보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웃음)

하지만 ‘에큐메니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루어 보고 싶기는 해요. 예전에 NCCK 홈페이지에서 연혁을 본 적이 있어요. 1924년도에 NCCK가 출범을 했을 때 한국 교회와 초기 선교사들의 모임으로 시작을 했더라고요. 일제식민지 상황에서 교회연합의 모임에는 조선 청년 기독교인들과 여성들, 선교사이 참여했습니다. 교단을 넘어 신앙의 열정을 가진 젊은 기독교인들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졌더라구요. 또한 주목할 점은 NCCK가 처음부터 WCC에 소속 기관이 아닌 자생적인 모임으로서, 일치와 대화, 화해, 협력의 모임으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점이에요. 애초부터 WCC 산하에 있거나 타의가 아닌 자생적인 공동체로써 식민지 사회 상황 속에서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국난 극복의 의지와 노력으로 사회와 신앙과 신학 간에 긴밀한 관련 속 안에서 탄생했다는 걸 보고 놀라웠습니다. 이후 사회적 참여가 면밀하게 이어졌었고요.

그래서 이 시대 진짜 ‘에큐메니칼’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일반적으로 교회나 교인들은 NCC가 있는지도 모르거든요.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교단의 특색있는 목소리도 없는 게토화된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진짜 에큐메니칼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 시대에 맞게 제대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질문인데요, 에큐메니칼이 제대로 구현이 되면 한국 교회가 정말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 글쎄요. 송구하지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그보다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갖고 희망의 푯대를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겠지요. 예수님 역시 유대 사회 내 정치 권력과 종교가 유착과 타락하는 와중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 존엄성이 와해되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신 분이잖아요. 끊임없이 주변에서 예언자적 비판의 소리를 발하며 사회와 종교 개혁의 정신을 삶으로 살아내셨지요. 중요한 것은 완성이 아니라 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와 생명이시지만, 또한 길이자 문으로 우리 앞에 계신 것처럼요.

개신교가 계속해서 개혁하는 교회라 할 때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은 바로 불화와 갈등의 자리에서 진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종교의 존립을 말하기가 참 어려운 때이고요. 에큐메니칼한 정신 역시 가닿을 수 없는 로망이자 종말론적 희망으로 남겨두고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가야하는 여정에서 발견해 나가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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