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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으로 유혹하다”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3.19 17:42
5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7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마태복음4:5~7/새번역)

높은 산으로, 성전 꼭대기로 악마가 끌고 가는대로 따라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유혹이나 시험 자체를 거절하지 않고 너무 순순히 따르시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적극적 돌파입니다. 일부러 유혹과 시험을 찾아다니는 교만은 물론 아닙니다. 시험을 피하지 않고 돌파하시는 모습입니다.

사실 유혹과 시험의 자리는 특별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유혹에 노출되는 자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유혹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에나 유혹 꺼리와 시험 꺼리가 있습니다. 힘이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그 나름의 유혹과 시험이 다 있습니다. 심지어 거룩과 경건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은밀하고 교묘할 수 있습니다.

▲ Mark Bryan, 「The Laugh」(2016, oil on canvas)

첫 번째 시험에서 성경말씀으로 응답하시자, 두 번째 시험은 성경으로 유혹합니다. 거룩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성경,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치유와 구원을 받았지만, 그 성경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짓누르고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으로 유혹한 이단과 사이비만이 아닙니다. 정통이라는 교회도, 신앙인과 목회자도 얼마나 쉽게 구미에 맞는 말씀을 욕망의 도구 삼곤 합니까.

악마가 성경을 들먹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정욕과 전시욕의 함정을 숨겼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는데 말씀 그대로 다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드러나겠습니까. 수많은 SNS 채널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드러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 상상 못할 부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존재만 의미 있고 존중 받을만하다는 거짓은 오늘날 더욱 만연한 환상이자 우상입니다.

악마가 말씀 뒤에 함정을 숨기지 않아도 스스로 속습니다. 역사, 사회, 정치의 특정 이데올로기에 갇힌 욕망과 두려움을 성경으로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술 취한 사람이 술 취하지 않았다고 하고, 미친 사람이 미치지 않았다고 하듯, 성경을 욕망의 도구 삼는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자기 욕망의 도구 삼는 성경이라면, 성경을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입장을 벗어난 관점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를 성찰하며, 어떤 입장을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게 해달라는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기도처럼, 성경을 위해 성경을 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도, 말씀도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성경을 도구화하지 않고, 말씀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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