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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속 그리스도교의 흔적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77)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3.19 17:50

Q: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 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_해석 손정도 목사와 김성주(일성)(4)

A: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가 시작된 시기는 주체사상이 창시된 시기인 1926년부터 1930년의 시기였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와의 대화 속에서 창시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소거하고, 그 자리에 ‘인민대중’을 격상시켜 새롭게 구성된 ‘사람위주의 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세속화된 그리스도교(secularized christianity)’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세속화시켜 창시된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민족주의적 그리스도교의 품에서 자라다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성주(일성)는 자신이 지내 온 1920년대를 회상하며 ‘민족주의자들에게 포위된 것과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민족주의자들’의 절대다수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아버지 김형직 선생과 어머니 강반석 여사부터가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외조부 강돈욱을 비롯한 칠골 외가는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김성주(일성)가 아버지 김형직 선생의 권유에 따라 ‘조선을 잘 알기 위해’ 입학한 칠골의 창덕학교는 조선의 자생적 미션스쿨이었습니다. 김성주(일성)가 창덕학교 시절 가장 따랐던 교사는 숭실중학 출신의 외종조부 강량욱이었습니다. 강량욱은 1930년대 중반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44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해방 후 북조선기독교련맹(현,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이끌었습니다.

강량욱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소년 시절의 김성주(일성)에게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성주(일성)의 부친인 김형직 선생의 독립운동 궤적을 좇아가면 모든 활동이 숭실중학, 교회당, 학교라는 세 가지 열쇠말과 엮여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형직 선생은 숭실중학 동문이 목회하는 교회당과 그 교회당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거점으로 독립투쟁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입니다.

김형직 선생의 일생을 민족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면 ‘예수운동’에 헌신하였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더라도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김형직 선생의 외침은 ‘민족’과 ‘예수’를 함께 품고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소년 김성주(일성)의 성장배경이었던 그리스도교가 그 소년이 장차 구상하게 될 주체사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 즉 주체사상의 형성에 그리스도교가 일절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가정이야말로 놀라울 정도의 억측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평양창덕학교는 김일성 주석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일제강점기인 1907년 4월1일 설립한 유서 깊은 학교로 김일성 주석이 1923년 4월부터 1925년 1월까지 공부한 곳이다.

김형직 선생의 친구들 중, 김형직 선생의 일생과 삶의 궤적이 가장 유사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해석 손정도 목사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평안도 출신에 같은 숭실중학 출신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직업적 혁명가로, 한 사람은 목회자로 삶의 길은 다른 듯하였으나, 직업적 혁명가였던 김형직 선생은 목회자인 동문들과 함께 예배당과 미션스쿨들을 거점으로 참된 예수살기를 실천하였습니다.

목회자였던 손정도 목사는 평생을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말년에는 공산주의 운동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상적 공통성으로 하여 김형직 선생은 장남 김성주(일성)를 해석 손정도 목사에게 부탁하였습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는 친아버지의 정으로 김성주(일성)를 양육하였던 것입니다.

김일성, 유물론적 맑스 사상에 물들다

김성주(일성)가 길림 육문중학교에 재학하며 학생운동을 이끌던 1927년부터 1930년까지의 3년의 기간은 김성주(일성)의 세계관이 형성되던 시기였으며, 주체사상이 창시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주체사상이 창시되던 시기에 김성주(일성)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끼쳤던 세계사적 사상조류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입니다.

김성주(일성)는 ‘유신론이자 관념론’인 ‘그리스도교 사상’과 ‘무신론이자 유물론’인 ‘공산주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하여 주체사상을 창시하게 된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철저하게 무신론과 유물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맑스주의로 대표되는 당시 공산주의 사상이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고, 모든 문제를 ‘물질의 선차성’을 기본으로 풀어내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신앙 유산인 ‘구원신앙’과 ‘창조신앙’에서 새로운 답을 구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무신론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을 소거한 바탕 위에, ‘구원’의 주체이자 ‘창조’의 주체로 ‘사람, 즉 인민대중’을 올려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창시된 주체사상은 기존 공산주의의 대표사상이었던 맑스주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 독창적인 ‘사람위주의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위주’라는 표현 자체가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배타적인 ‘사람의 주인 선언’이 ‘사람위주의 사상’인 주체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

우선,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을 사상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철학의 사명을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성주(일성)가 주체사상을 창시한 이유도 바로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식민지 노예 상태에 있던 조선민족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성주(일성)는 바로 이 문제를 ‘철학의 사명’으로 여기고, 여기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창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김성주(일성)는 사람의 운명문제 해결을 철학의 사명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요?

‘사람의 운명문제‘에서 ‘운명’은 ‘생명’과도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김성주(일성)는 사람이 죽고 사는 ‘생명’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철학의 사명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구원’에서 찾았습니다.

죽게 된 ‘생명’이 ‘구원’을 받아 다시 살게 되며,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 ‘도리(道理)’가 어떻게 하여 김성주(일성)에게 전해졌는지는 ‘그리스도교’를 말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영생에 이르는 이 구원의 도리는 모태신앙인 김성주(일성)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출석하던 교회당과, 장성하며 아버지와 함께 활동한 모든 교회당에서 설교되었던 그리스도교의 기본 가르침이었습니다. 소학교 시절 창덕학교 강단에서 외조부 강돈욱과 외종조부 강량욱이 가르쳤던 주제였고, 주체사상을 구상하던 길림 육문중학 시절에 해석 손정도 목사를 통하여 ‘길림 례배당’에서 선포되었던 도리(道理)였습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입각하여,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살아나는 민족의 광복과 구원을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영향 하에 ‘길림 례배당’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김성주(일성)가 주체사상을 구상하면서 ‘사람의 생명문제, 운명문제’에 해답을 줄 것을 ‘철학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그 해답을 운명의 ‘구원’을 통한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에서 찾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김성주(일성)가 주체사상을 창시하면서 해석 손정도 목사를 통해 선포된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을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

다음으로,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을 사상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사람의 운명문제’는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해답을 얻게 됩니다.

어떻게 하여 김성주(일성)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까요?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은 ‘하느님’을 ‘주인’이자 ‘창조자’로 고백합니다. 하느님이 세상만물을 만드신 ‘창조자’이시기에, 세상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 둘을 합쳐 하느님을 ‘창조주’라고도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세상만물의 주인이시기에, 세상만사를 주관하시고 결정하시는 분으로도 고백됩니다. 하느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고백하는 것은, 세상의 만사, 즉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을 세속화하여 전유합니다. ‘관념적 존재’인 ‘하느님’을 소거한 바탕 위에,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존재인 ‘세상의 창조주이자 역사의 주관자’의 자리에 ‘사람, 즉 인민대중’을 올려세워 격상시킨 것입니다. 이리하여 주체사상은 ‘사람위주의 사상’, 즉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영향 하에 ‘길림 례배당’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김성주(일성)가 주체사상을 구상하면서 ‘누가 이 세계의 주인이며, 누가 이 세계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를 통해 선포된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이자 고백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창조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맑스주의 철학의 유물론과 충돌하는 관념적 존재인 ‘하느님’을 소거하였으나,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보전하였으며, 그 대답을 ‘사람, 즉 인민대중’에게서 찾아내어 ‘사람위주의 사상’으로 창시되었습니다.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가능성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해석 손정도 목사를 통해 선포된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과 창조신앙은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 창시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에서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운명문제 해결’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과 그 문제의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기초하고 있는 근본원리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창조주로 고백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리를 ‘사람, 즉 인민대중’으로 대체하였을 뿐, 세계의 주인이자 세상만사를 결정하는 존재를 찾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창조신앙’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사이의 이러한 유사성은 주체사상이 그리스도교와의 대화를 통해 창시된 사정에서 기인합니다. 주체사상 창시기에 진행된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사이의 대화는 주되게는 해석 손정도 목사와 그가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전통과 김성주(일성)와 그가 대표하는 공산주의 사상 사이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사상의 창시기에 진행된 ‘해석 손정도 목사와 김성주(일성) 사이의 대화’는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원형’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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