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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끝난 후 교회는다시 성전을 건축하다(에스라 3:10-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3.22 17:08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정예배로 대신하다보니 평소 3분의 1 분량의 설교문을 성도님들께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설교가 짧아져서 그런지 성도님들께서 평소보다 더 은혜롭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평소보다 조금 짧게 설교를 적으려고 합니다.

‘모이는 교회’가 반강제적으로 ‘흩어진 교회’로 바뀐 상황 속에서,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찾아서 살펴보고 전해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흩어짐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의 신앙

교회로부터 강제적으로 쫓겨나게 된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바벨론 포로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강제적으로 성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의 속국이 된 것이 여호야긴 2년인 기원전 597년이었고,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후 시드기야 11년(기원전 586년)에 파괴되기 때문에 처음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성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성전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에스겔의 예언을 보면, 에스겔 33장 21절에 그가 사로잡힌지 열두째 해에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초반에는 아직 성전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에스겔 33장 이전의 예언들은 성전이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33장 이전의 예언들 속에서 이스라엘이 타락하였고,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며 바른 신앙을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동쪽으로 가셨다고 말합니다. 성전을 떠나신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에스겔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예언을 시작했다는 점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바벨론으로 오셨음을 이야기합니다.

▲ 바벨론 포로기가 끝난 2년 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보며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Wikipedia

에스겔을 비롯한 바벨론 포로들은 성전과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또 성전이 없어서 그랬는지, 이들은 말씀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이전에 만들어진 성경은 열심히 전달하며 간직하였고, 포로기 동안에 기록된 성경은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전 중심의 예배가 말씀 중심의 예배로 전환되는 계기가 바벨론 포로기였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통해 기원전 586년 이후 일부의 유대인이 이집트 지역으로 이주해 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 초반, 이집트 엘레판틴 섬에서는 유대인들의 편지와 계약서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집트 엘레판틴에 이주했던 이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들이 기원전 3세기 집대성된 70인역 성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고, 어쩌면 아직 그들의 성경이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들에게 책으로 묶인 성경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책으로 된 성경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간직하고 전달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유대인 회당 문화는 이때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전이 필요한가?

복음서를 보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으셨을테지만, 가장 간단하게 이들을 구분하는 방식이고 교회에서 많이 들으셨을 구분법은 성전 중심의 사두개인과 회당 중심의 바리새인입니다. 바벨론에서 말씀을 중요시하며 예배를 드리던 이들의 문화가 바리새인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바벨론에서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드리던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에 굳이 성전을 만들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미 이들은 성전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지킨다면 성전이 없이도 예배드릴 수 있다는 신앙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굳이 성전을 다시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사실 포로 귀환 후에 이들은 바로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 3장 8절에도 이들이 귀환한지 2년 만에 성전을 건축했다고 말합니다. 그 2년 동안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 절기는 지켰지만, 성전 건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개는 귀환한 이들이 자기 집과 성벽은 건축했어도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음을 비판합니다. 참고로 느헤미야는 없는 성벽을 건축하러 온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다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러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성전 건축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예언서 학개와 스가랴를 보면 이들이 왜 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두 장밖에 되지 않는 학개는 간단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건축하라고 하셨으니까 건축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고민해야 할 말씀은 던지고 있습니다. 학개는 1장 5절과 7절에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라고 반복합니다. 성전보다 자기 집을 우선한 행위에 대한 지적일 수도 있지만, 귀환 이후 이들의 삶 전체에 대한 지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스가랴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스가랴는 시작부터 ‘악한 길, 악한 행위’에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그 후에 나타나는 스가랴의 예언은 대부분 성전과 연결된 이미지를 차용한 은유입니다. 스가랴 7장 9-10절은 하나님의 뜻을 단 두 줄에 정리해서 전해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스가랴는 분명 학개보다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고, 2차 성전 건축보다 후대의 이야기입니다만, 신앙적 해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2년 만에 자신들의 신앙이 해이해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세울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와 지금

지금 어떤 교회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고, 어떤 교회들은 인터넷 예배, 가정예배 등으로 예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로 모임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재정적인 문제 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걱정과 염려는 이번 사태 이후에 있습니다. 

인터넷 예배를 한 달간 드려본 성도님들은 분명 이를 통해서도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많은 청년이 그런 것처럼, 꼭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이에 대해 걱정할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개신교인이 줄고 있는 상황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교회를 빠져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염려가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들은 자신들이 새롭게 구축한 예배 형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더이상 성전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들은 성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오늘 에스라 본문을 보면, 성전을 건축한 이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예전 성전을 보았던 이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무너진 성전에 대한 슬픔이 다시 북받쳐 올라와 대성통곡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흩어진 성도님들이 코로나 이후에 다시 교회에 모일 것이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기쁨과 감동을 얻을 것이라는 그저 희망찬 말씀을 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기까지에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성전이 있을 때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며, 성전이 없을 때에는 말씀을 간직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는 노력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던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말씀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이런 분위기와 자료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던 신앙에서 벗어나 온 삶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을 독려하고 키워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평소에도 발현되는 그런 삶들이 이어진다면, 교회는 코로나 이후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2성전은 분명 건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개의 예언으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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