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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드러내는 교회로 살기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3.29 16:49
‘책망받은’ 것들은 하나 하나 모두 빛에 의해 드러나고 드러난 것 전체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십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에베소서 5,13-14)

성서를 읽을 때 곤혹스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것이 마치 카메라 초점을 맞추지 못해 희뿌연 상만 계속 맺히는 것처럼 아무리 해도 분명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 본문을 뒤로 하지 못하는 까닭은 분명한 상이 맺혀지도록 도와주심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위의 구절이 11절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책망받거나 폭로된’ 것들이 ‘어둠의 헛된 일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본문에서 그 일들이 자칫 빛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어 딜레마입니다.

어떻게 읽어야 할런지요? 혹시 수동태 분사를 이미 ‘책망받은 것들’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러면 ‘빛에 의해 드러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입니다. 양자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 간격의 크기가 아니라 단지 선후관계 뿐입니다.

▲ 그리스도의 빛으로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Getty Image

그리고 ‘~ 것마다’로 옮겨진 말은 ‘하루 전체=온 종일’처럼 ‘드러난 것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래도 문제가 남습니다. 빛이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지시하는 내용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앞의 빛은 드러내는 주체이고 뒤의 빛은 반사된 빛 내지 빛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비추는 빚이고 후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선언된 그 빛입니다(8절). 따라서 본문은 책망받은 자가 빛으로 전환되고 인정되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의 조명을 받아 빛이 된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로서 살라고 하십니다. 어둠의 헛된 일들이 끼어들 수 없는 빛가운데가 그 자녀의 생활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 영역은 별도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빛들의 삶을 통해서만 존재하고 실현되는 영역입니다. 바로 거기서 빛으로 존재하는 참된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교회 그 삶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들의 모임이 가시적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빛을 비추시고 빛으로 살라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되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빈약한 능력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새힘을 얻고 든든히 서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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