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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가?”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3.30 16:21

이삼십 년 전 청년부 때, 저녁 예배가 오후 예배로 바뀐 첫 주일이 기억납니다. 오후 예배가 끝나고 친구들과 텅빈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예배까지 다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갔던 오랜 일상이 갑자기 깨졌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후 예배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교회에서 어정쩡하게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pc방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예배가 사라진 자리에 어느새 놀이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 주일성수의 참된 의미를 알았어도 그랬을까? 예배, 성가대 연습, 찬양단 연습, 또 예배… 예배가 주일성수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배가 주일성수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 형식이 사라진 자리가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 만일 주일성수에 담긴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다르지 않았을지, 이제야 생각해봅니다.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주일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이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성수의 참된 의미를 알고 추구해왔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여전히 이 문제가 한국개신교에서 논란 중이고, 특히나 이 문제로 한국사회로부터 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봅니다. “어떻게 해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가?”

▲ Vladimir Kush, 「세계가 태어난 곳」ⓒU.H.M. Gallery 단해기념관

안식일을 지키던 신앙이 부활을 기리는 신앙과 만나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는 구약의 안식일에 뿌리를 둡니다. 십계명 제4계명인 안식일의 근거본문은 출애굽기 20:8~11과 신명기 5:12~15입니다. 이 두 본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1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출애굽기 20:8~11/새번역)

12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 13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4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 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15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신명기 5:12~15/새번역)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아들, 딸, 남종, 여종, 가축, 나그네 모두를 쉬게 하라는 명입니다. 여기에는 파격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고대바빌론 문화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바벨론 종교에서 인간은 신이 일을 시키고 자신은 쉬기 위해서 만든 노예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쉼은 신과 왕과 자유인의 몫이었습니다(김학철 목사의 유튜브 영상 「주일에 꼭 교회를 가야하나요」 참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명하신 안식일은 충격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신과 왕과 자유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힘없는 약자들과 가축까지 포함하는 모든 생명의 쉼을 명하십니다.

남종, 여종, 나그네, 가축까지 다 쉬게 하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쉴 권리가 없다고 여겨졌던 모든 약자들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쉼에 참여케 하라는 사랑이 아닙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쉼을 모두가, 특별히 약자들이 누리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쉬면 먹고 살기 어려운 이들이 쉴 수 있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개인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명령입니다. 함께 협력해서 그런 사회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도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이들에게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강제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그러므로 약자들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깊이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유는 이 두 본문에서 약간 다릅니다. 출애굽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쉼에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11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출애굽기 20:11/새번역) 흑암과 공허에 뒤엉켰던 세상을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게 창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는 쉬시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을 바라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를 통해 구원해주신 아름다운 생명질서를 바라보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신명기 5:15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15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신명기 5:15/새번역) 여기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노예로 종살이하던 이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고 참여하라는 초대입니다. 흑암과 공허 속에 갇혔던 온 존재를 생명의 질서로 구원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라는 부르심이 더 구체화된 것입니다. 종살이에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하신 사랑을 기억하고 동참하라는 부르심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고통 받는 세상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뒤에야 하나님께서는 쉬셨습니다. 노예로 종살이 하던 백성을 구원하신 뒤에야 쉬십니다. 사랑하는 이를 구원하신 뒤에 만끽하신 그 쉼에 우리도 함께 하자는 부르심이 안식일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쉴 수 있기 전에는. 사랑하는 이가 쉼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 받는 데 어찌 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 보여주신 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쉼은 사랑의 노동을 전제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하려는 사랑의 노동이 없는 쉼은 안식일의 쉼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명하신 안식일의 쉼은 사랑의 참여가 피운 꽃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일주일에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안식일을 지킨 것이겠습니까? 일주일 내내 자신만을 위해서 살다가 주일마저도 하나님께 복 받겠다고, 혹은 벌 받을까봐 자신만을 위해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이 어찌 안식일을 지킨 것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안식일에 일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며, 안식일에 병을 고치십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의 노동을 인정해주십니다. 주님의 이런 마음은 제사가 아니라 정의와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명하신 제사는 약자를 도와주고 살리는 예배였습니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이사야 1:13, 17b)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쉼이 안식일임을 분명히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예배와 관련된 일이 끝나면 그저 할 일 없는 시간이었겠습니까. 주님을 따라서 사랑의 노동에 참여하고 주님을 따라서 사랑의 쉼을 만끽하는 것이 안식일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오후예배로 바뀌고 남은 저녁 시간을 놀고 즐기는데 다 써버렸을까요.

코로나19로 인해 주일예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란과 갈등이 계속됩니다. 한쪽에서는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고, 다른 쪽에서는 이웃의 불안을 감수하고라도 공예배를 강행합니다. 사람을 위해 있는 안식일의 정신이 주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흑암과 공허에 갇힌 생명을 창조질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안식이라면, 노예로 종살이할 수밖에 없던 이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해방에 동참하는 안식이라면, 어땠을지. 공예배와 가정예배, 두 가지 길밖에 없겠습니까.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고 실천하지 않겠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 주님의 길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주일성수를 어떻게 지속시켜야 하는지, 그 물음이 예배의 형식에 갇힐 수 없습니다. 적어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정의와 자비를 향한 궁리와 실천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 공예배가 없어도 고통 받는 이들 때문에 쉼을 누릴 수 없는 교회일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일로 공예배 없이도 분주한 교회일 것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안식일의 의미를 어떻게 실천할지 궁리하는 교회이길 기도합니다. 그 길을 궁리하고 실천하며 주님께서 초대하신 안식일의 참 뜻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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