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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죽음의 노래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
이모세 | 승인 2020.03.30 16:26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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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

부다페스트의 한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자 유대인인 자보는 자신이 고용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에게 연인 일로나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일로나 역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셋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함께 서로를 아끼는 공동체가 되어가고, 셋이서 자유롭고 행복한 연애를 한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 곡을 듣고 헝가리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안드라스는 자신이 저주받은 곡을 썼다며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일로나와 자보는 그를 멈춘 후 죽어도 셋이서 같이 죽자고 약속한다.

질투심을 전부 초월한 듯 한 그들의 연애방식(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 큰 위기 없이 행복했던 셋을 위협하는 건 자보 레스토랑의 단골이었던 한스 중령이다. 그는 한때 일로나를 짝사랑해 청혼했지만 거절당해 자살을 기도했었고, 자보가 그를 강에서 구해준 뒤 집에서 재우고 독일로 가는 기차역까지 배웅해줬었다.

그런 한스는 시간이 흘러 독일 나치군의 장교가 되어 자보 레스토랑을 찾는다. 그는 얼핏 자보를 상냥하게 맞지만, 권위적으로 자기의식을 챙긴다. 나치에 복무하면서 유대인들이 잡혀가기 전에 돈을 받고 이송시켜주고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전쟁 종식 후 사업가로써 자신의 입지를 유리하게 굳혀줄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한스 중령은 일로나에게 자보가 곧 나치에 붙잡힐 것이라 귀띔하고, 일로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한스에게 자보를 중립국으로 보내달라고 간절히 청하러 다닌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한스를 쫒아 다니는 일로나를 본 안드라스는 “헝가리 남자 두 명은 독일인 남자 한 명보다 못하냐”고 말했다가 뺨을 맞는다. 식당에서 독일인 장교들이 자보에게 수용소의 유대인 농담을 해달라며 굴욕을 주는 모습을 본 후 안드라스는 자신의 자작곡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한 후 식당에서 자살한다.

그들의 사랑은 통상적인 연애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초월적이었지만, 나치의 폭력과 한스의 기회주의적인 사업가적 야망에 의해 간단히 희생된다. 안드라스는 자살하고, 자보는 한스를 믿었던 탓에 죽음을 선택할 기회까지 빼앗기고 끌려간다. 일로나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을 전부 잃고, 자보를 구할 수 있다는 한스에게 속아 성상납을 한다.

자유란 개인들의 동기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힘을 가진 자에게 권력과 통치할 자유를 허락하는 사회에서 그들 셋의 자유는 설령 통념을 초월한 행복이 있었다 하더라도 너무 나약하게 짓밟히고 만다.

인간의 존엄과 죽음의 노래의 의미

안드라스의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 받은 노래라는 평을 듣는다. 한스는 ‘이 곡이 마치 자신에게 듣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고 말했고, 부잣집의 청년으로 소개된 여성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사가 없어도 이미 곡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이 여성이 자살했음을 암시하는 씬을 보여주고, 유럽 전역에서 이 음악을 틀어놓고 자살하는 청년이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등장한다.

자보는 안드라스의 죽음 이후, 일로나에게 안드라스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글루미 선데이’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말이라면서, ‘한 줌의 존엄도 지킬 수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자신의 생각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인 안드라스, 일로나, 자보(사진 왼쪽부터) ⓒGetty Image

세상은 나치가 세계를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잡아가두고 잔인하게 학살하면서도 음식의 풍미와 음악의 선율이 공존한다. 요컨대 자보에 따르면 ‘글루미 선데이’는 인간의 존엄이 한 줌도 남지 않는 세계에서 어서 떠나라고 손짓하는 음악인 것이다.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노래다. 생명을 통치하고 감시하는 권력은 평화와 고요함을 무기로 설득한다. 감옥의 수용자들에게 고분고분 말만 잘 들으면 함부로 가해지는 처벌이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나치의 세계에서 나치의 뜻에 반하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안심이 나치의 통제를 강화시킨다.

개인의 주권이나 선택의 자유란 시대를 넘어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고분고분 돈만 벌면 시장의 상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소비자 주권의식이 오히려 작업장 밖에서도 개인을 자본가의 힘에 예속시키게 만든다. ‘글루미 선데이’는 이 세상에 자유가 없다고 부르짖는다. 자유를 찾아 평화와 고요함을 깨뜨리는 극단적인 방식이 영화에서는 자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만이 글루미 선데이가 전하는 자유의 선언은 아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교차 되는 결말부에서 한스는 전쟁 후 자신이 꿈꾸던 바대로 세계 최고의 무역회사 사장이 되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힘 있는 유대인들만을 미리 구해놓은 결과, 도덕적 명성마저 세계에 자자해진 상태다. 그는 부다페스트의 자보 레스토랑에 찾아와 비프롤 음식과 글루미선데이 음악을 주문하고는 음악을 듣다가 쓰러진다.

▲ 바다를 가르고 싶은 이모세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음악 ‘글루미선데이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후 주방씬에선 ‘글루미 선데이’를 흥얼거리며, 처음엔 안드라스가 가졌던, 그리고 나중엔 자보가 자살하려다가 나치에게 쫒기느라 사용하지 못했던 심장 멎는 약병을 설거지 하는 일로나의 뒷모습이 나온다.

자살을 위해 사용되던 약과 자살로 상징 되는 음악이 한스를 살해하는데 사용되면서 글루미선데이의 영화적 의미는 자유가 없는 세상을 떠나라는 속삭임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재전유된다.

이모세  moses1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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