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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79)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4.02 17:03

Q: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 계승과 혁신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에서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가요?_해석 손정도 목사와 김성주(일성)(6)

A: 지난 연재들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은 주체사상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해석의 자주신학(自主神學)은 ‘자신력(自信力)’을 강조하였고, 주체사상이 ‘자기 스스로의 힘을 믿고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자주(自主)의 원칙을 세우는데 기여하였습니다. 해석의 민족신학(民族神學)은 ‘민족의 부활과 구원’을 염원하였고, 주체사상이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는 민족해방(民族解放)의 입장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해석의 민중신학(民衆神學)은 무력항쟁의 주체인 ‘민중(民衆)’을 가장 귀한 존재로 보았고, 주체사상이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사람, 즉 인민대중 중심의 관점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은 주체사상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하여,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선구이자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 신학의 핵심은 자주신학(自主神學), 민족신학(民族神學), 민중신학(民衆神學)입니다. 해석 신학의 영향으로 하여 주체사상은 자주의 원칙, 민족해방의 입장, 인민대중 중심의 관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은 그 창시기에 해석 손정도 목사의 그리스도교 신학과 대화를 통해 형성된 것으로 하여, 해석 신학과 강한 유사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향후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시도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선,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을 깊이 이해하고,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앙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계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석 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과 해석 신학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계승하는 것은 상호연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해석 신학의 계승입니다. 해석 신학을 이해하는 것은 해석 신학 계승의 전제이며, 해석 신학 계승은 해석 신학 이해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을 계승하고자 하는 이유는 해석의 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 신학은 그리스도교-주체사상간 대화의 통로 개척에서 그 입구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해석 신학 계승의 의의가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는 입구가 마련되는 데서 그쳐서는 아니 되며, 해석 신학을 계승하는 것은 해석 신학을 혁신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가 완전히 개척되기 위해서는 해석 신학의 단순한 계승을 넘어서 해석 신학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주체사상은 창시기의 주체사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주체신학’이라 불러야 하는가

오늘날 전면적으로 체계화된 주체사상의 대화를 위해서는 해석 신학이 제공하는 대화의 입구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해석의 신학을 전면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 날의 주체사상과 대화할 수 있는 신학으로 새롭게 혁신하여야 합니다.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위해 계승된 해석의 신학을 전면적으로 혁신하여 새롭게 정립될 신학을 ‘주체신학(主體神學, Juche Theology)’이라 명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신학이 ‘주체신학’으로 명명되는 이유는 우선, 그 신학이 다루는 대상이 주체사상(主體思想, Juche Idea)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을 다루는 신학은 신약신학이며, 구약을 다루는 신학은 구약신학이고, 이 둘은 모두 성서를 다룬다는 공통점으로 하여 성서신학으로 분류됩니다. 이처럼, 그 신학이 다루는 대상을 그 신학의 명칭으로 삼는 신학의 전통을 따라, 주체사상을 다루는 신학을 ‘주체신학’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신학이 ‘주체신학’으로 명명되는 이유는 다음으로, 그 신학이 기초하고 있는 철학이 주체철학(主體哲學, Juche Philosophy)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하나의 사상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상과 공통의 철학적 지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교 신학 전통과 해당 사상 간에 지평의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대화하자면, 우선 화이트헤드와 철학적 지반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립된 신학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이름을 따서 과정신학이라 명명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신학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적 지반의 이름을 그 신학의 명칭으로 삼는 신학의 전통을 따라, 주체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신학을 ‘주체신학’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신학이 ‘주체신학’으로 명명되는 이유는 끝으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계승해야 할 해석 손정도 목사의 신학을 한마디로 ‘주체신학’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승해야 할 해석 신학의 핵심이 바로 ‘주체신학’이기 때문에, 혁신을 거쳐 새롭게 정립될 신학도 그 이름을 계승하여 명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석 신학의 핵심 세 가지를 살펴보면, 이 모두가 ‘주체신학’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국립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있는 손정도 목사 묘역. 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을 계승·발전시켜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를 진행시켜야 한다.

우선, 해석의 자주신학은 ‘자신력(自信力)’을 강조한 신학입니다. 사람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자주의 정신은, 곧 사람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해석의 자주신학은 곧 주체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해석의 민족신학은 민족의 부활과 구원을 강조한 신학입니다. 민족이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명을 구원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민족해방, 민족자주의 신학은 바로 민족주체의 신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해석의 민족신학은 곧 주체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해석의 민중신학은 민중이 가장 귀한 존재이며, 무력항쟁의 주인도 민중이고,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구원과 해방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신학입니다. 민중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하고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신학은 바로 민중주체의 신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해석의 민중신학은 곧 주체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해석 신학의 핵심인 자주신학, 민족신학, 민중신학을 통칭하여 ‘주체신학’이라 할 수 있기에, 해석 신학을 계승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신학을 ‘주체신학’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주체신학을 통한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석 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을 계승하고, 이 신학에 의거하여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에 있어 커다란 의의를 가집니다. 그것은 우선, 해석 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이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 창시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하여, 주체사상과 공통의 원칙과 입장과 관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주체사상과의 대화에 가장 최적화된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은 스스로의 힘을 믿는 자주의 원칙, 민족의 부활과 구원을 염원하는 민족해방의 입장, 민중을 역사의 주인으로 보는 민중주체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의 영향을 받은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도 이러한 원칙과 입장, 관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은 김성주(일성)의 주체사상과 자주의 원칙, 민족해방의 입장, 민중주체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기에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데 있어 가장 최적화된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을 계승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는 데서 가지는 의의는 다음으로, 해석 주체신학의 원칙, 입장, 관점이 오늘날 전면적으로 체계화된 주체사상에서도 그대로 관철되어 공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상들은 창시기를 거쳐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용을 겪게 되며, 심한 경우 창시기와는 전혀 다른 원칙, 입장, 관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는 사상의 역사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심지어는 한 철학자가 살아생전에 입장을 번복하여 훗날 철학사에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기술되는 일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경우는 창시기의 원칙, 입장, 관점이 전면적으로 체계화되는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해석의 주체신학은 주체사상과의 대화에 있어 현재적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향후 주체사상이 엄청난 변용을 겪어 창시기의 원칙, 입장, 관점을 모두 버리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해석의 주체신학은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를 위한 통로로서 그 의의를 보전하게 될 것입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을 계승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는 데서 가지는 의의는 끝으로, 전면적으로 체계화된 오늘날의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위한 신학의 정립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은 오늘날의 주체신학으로 혁신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주체사상은 창시기의 주체사상과는 비할 바 없이 전면적으로 체계화되고 심화되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발전 풍부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북의 주체사상은 단순히 북에서 유행하고 있는 철학사조가 아니라, 북의 국가정치철학으로서 북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지도사상’입니다. 남의 그리스도교가 북의 주체사상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으로 체계화되고 풍부화 된 북의 주체사상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석의 주체신학은 오늘 날의 주체신학으로 혁신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오늘날의 주체사상과 대화에 임할 수가 있습니다.

혁신의 전제는 계승입니다. 혁신은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주체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의 주체신학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해석 주체신학의 원칙, 입장, 관점을 철저하게 계승하여야 오늘날의 주체사상과 대화하기 위한 오늘 날의 주체신학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해석의 주체신학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는 데서 입구의 역할을 한다면 오늘날의 주체신학은 출구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입구에 들어서지 못하면 출구에 나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석 주체신학을 계승하는 것은 오늘 날의 주체신학을 정립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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