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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둘째 날 ‘평화’평화와 개혁 3
김성윤 목사(평화의교회) | 승인 2020.04.06 17:14

종려 주일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나오시고, 월요일은 성전 청결 사건만 있었는데, 화요일은 몸으로 하신 일은 없고 입으로 일을 하신 날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의 화요일은 예수님이 말씀이 가장 많은 날이었습니다. 마가복음으로 보면 11장 20절부터 13장 끝까지입니다. 말씀하신 내용과 주제를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가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입니다. 이는 전날에 있었던 일의 연속성으로 시작합니다. 전날에 예수님이 시장해서 무화과 나무를 보았는데 이 나무는 열매가 없고 잎만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에게 영원토록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저주를 한 것으로 보통 알려졌는데, 그것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그 때는 무화과의 철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열매철이 아닌 나무에게 열매를 내놓라고 하고 없다고 영원히 열매를 먹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좀 당황스럽습니다.

어쨌든 베드로는 화요일 아침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렸다고 보고합니다. 예수님이 열매를 구했는데, 이파리 밖에 없으니 저주 받은 나무는 말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니 이정도는 되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른 말씀이 없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줄로 믿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동양 고전의 우공이산의 고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어리석은 늙은이가 산 흙을 옮기고 자식과 손자가 이어가면 산을 옮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용서에 대해 감동적으로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저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과 의심치 않으면 누구든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맥락을 잘 모르겠습니다. 해석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에서는 논쟁부터 시작합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에게 와서 예수가 무슨 권세로 이러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합니다. 나귀 입성과 성전정화를 보고 이들이 잔뜩 벼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응답이 기막힙니다. 논쟁에서 일종의 역논리 기법입니다. 공격자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 반격하는 방법입니다. 역으로 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무슨 권세로 하는 것이냐 묻습니다. 이에 대답하면 답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난감해집니다. 하늘로부터라 하면, 세례요한을 살해한 자기들 입장이 곤란해지고 아무 근거가 없다면 민중들이 선지자로 여기는 현실에 반하게 됩니다. 말 못하는 그들에게 예수도 말하지 않겠다고 논전을 마무리 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논전에서 철저하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통쾌합니다.

셋째로 이번에는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 맡은 이들에게 소출을 받으러 간 종을 살해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된 끝에 주인은 아들을 보냅니다. 아들은 존중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들을 죽입니다. 그 포도원을 차지하겠다는 의도 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자신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포도원 차지한 악한 종을 심판하실 것으로 종말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악한 포도원 강탈자가 사라지는 반격의 고리가 되는 모퉁이돌 역할을 자신이 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역전의 고리역할입니다. 그것이 결국 예루살렘 권력자들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예수를 향한 공격을 계속하게 됩니다.

네 번째 논쟁이 그것입니다. 예수를 함정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올바른가?입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히 세금을 내지만, 이스라엘은 특수합니다. 세금을 로마에 내기 때문에 대중의 반감을 받는 것입니다. 코로나19사태 때 교회 예배를 드리니 지역사회에서 미움 받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는 당연히 드리는 것인데 결국 고립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명언을 남기며 위너, 승자가 됐습니다. 이 말의 해석은 여러분들 각자 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는 사두개인들이 공격합니다. 참고로 아까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원칙주의자들이고 그래서 세금문제를 공격했는데,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거죠. 이들은 부활 후 형사취수 제도 즉 형이 죽으면 남은 동생이 가문의 보존과 여인의 생계를 위해 형의 아내를 취하는 제도에 의해 차례로 형제들의 아내가 된 여인이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문제제기합니다. 사실 자신들은 부활도 믿지 않으면서 부활을 질문하니 자가당착입니다. 결국 부활이 없다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논전입니다.

▲ 평화의 교회 김성윤 목사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진지하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기발하게 창의적으로 독창적으로 답하십니다. 부활 후는 지금의 현실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새로운 발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부활 후는 장가도 시집도 가는 것이 없다... 고 전혀다른 발상으로 부활을 해석합니다.

마치 통일 후 북의 땅을 회복하고자 집문서를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실향민들의 생각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통일 후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발상이 남과 북의 제도를 인정하고 통일한다는 새로운 방식... 지금은 6.15로 낮은단계의 연합연방제라고 말하는 전혀 다른 발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통일은 지금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현실적 삶으로 다가오는 것 같이 부활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부활관을 예수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서기관이 상대입니다. 이들은 율법 선생 답게 율법의 최고봉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는 그에 대해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결론합니다. 하나님사랑,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신 그리스도 문제, 회당의 상좌를 차지하는 서기관들의 이중성 문제, 과부가 내는 헌금의 가치 문제 등등... 복잡한 신학문제, 현실 삶의 실천과 지도자들의 허구적 이중성을 드러내고 폭로합니다.

마지막으로 13장에서 예수는 종말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종말에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시작합니다. 미혹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사람입니다. 요즘도 새겨야 할 말입니다. 사람 조심해야 합니다.

또 성도들이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담대하라고 제자들을 고무해 줍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음직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현실을 맞아 피할 것을 얘기합니다. 예루살렘을 하나님 도성이라고 믿으며 베고 죽지 말고 피하라고 합니다. 목숨을 부지해야 미래도 있고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자는 종교가 아니라 살자는 종교입니다. 죽어도 살자고 죽어야 합니다. 죽어서 죽는다면 개죽음일 뿐입니다. 죽지 않도록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 하시는 말씀은 그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해가 어두워지고 그러니 달이 빛을 내지 못하고, 별 또한 떨어지는 때입니다. 하늘이 흔들리니 권력이 흔들리고, 땅이 무너지고 좌우가 혼란스러운 때가 됩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건 거의 다 이런 때였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난리가 이어졌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사태도 종말시대의 한 표현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종말론은 그런 시대를 맞아 사는 성도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나 시대를 바라보고 시대를 해석하고 시대를 살아갈 길을 보여주는 삶이 우리의 삶이라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먼저 예수가 십자가로 살았고,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삶을 증언하며 이 마지막 시대를 십자가 삶으로 살아가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해서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의 둘째날은 예수님의 몸이 바쁘신 것이 아니라 입이 바쁜날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논쟁과 굵은 종말의 가르침을 마가는 둘째날 화요일로 몰아넣으며 바쁜 하루를 보내신 것으로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우리도 그 가르침대로 믿고 살아가는 삶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윤 목사(평화의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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