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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탈 4술 시대, 포노 심비우스의 3사코로나 이후 시대의 세상과 교회 모습 전망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4.08 17:27

1. 예외 상황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하버드 대학의 스테판 월트(S. Walt)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개별국가 단위의 권력을 강화하고 민족주의의 재발흥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유형의 정부와 체제들이, 곧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이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고 통제하기 위해 비상조치를 채택할 것이며 이 위기가 종식된 후에도 새롭게 얻은 이 통제의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월트 교수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 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기 때문에 현재의 초세계화 시대가 무너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 코로나-19는 덜 개방되고, 덜 번영하며, 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시작된 ‘예외 상황(Ausnahmezustand, 예외 상태)’을 ‘통제 상황’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조르조 아감벤(G. Agamben)에 따르면, 예외 상황이란 ‘현존하는 법적 질서가 보류되고 이를 대체할 다른 법적 질서가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일종의 법적 공백(Anomie)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유형의 정부가 코로나-19로 시작된 예외 상황을 하나하나 통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로, 대한민국은 민주적으로! 물론, 자가 격리 무단 이탈자들이 늘고 있어 일각에서는 전자 팔찌 도입이 거론되고 있으나 개발 시간과 비용, 법리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는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도입이 된다면 중국을 닮아가는 것이겠죠? 도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국 통제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부정적으로 보면, ‘자국 우선주의’, ‘이민자 및 외국인 혐오’로 확산되고, 동시에 기후변화 등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국제 공조는 약화될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지구 자체를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암 덩어리인 인간을 코로나-19를 통해 경고하며 대기와 환경을 보전해가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Y. Harari)도 이렇게 말하죠? “코로나 위기를 맞아 인류는 특별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지금 중국과 이스라엘은 개인의 생체정보까지 활용해 코로나-19 밀착감시 체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도 지적하듯이, 이제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감시 체계가 강화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면, 코로나-19를 통해 잠시 쉼과 ‘물리적 거리 두기’ 대신, ‘사회적 관심 갖기’와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바야흐로 코로나-19를 통해 새로운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지구촌 모든 인류(와 더불어 교회)가 전체주의와 이기주의가 아닌, 공감과 연대의 세상을 만드는 시험대에 내몰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3가지 신화의 붕괴

코로나-19로 인해 BC(기원전, Before Christ)와 AD(기원후, Anno Domini)의 구분이 새로워졌습니다. 곧,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질병 이후)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AD시대를 조망하며,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는 코로나-19의 위기로 적어도, 세 가지 신화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곧 선진국 신화, 미국 신화, 시장의 신화입니다. 먼저 선진국 신화를 볼까요? 박노자 교수의 말입니다.

“첫째, ‘선진국’ 신화다. 근대로의 전환이 더 빨랐던 구미권 ‘선진국’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 여태까지 한국인들의 지배적 집단의식이었지만, 코로나 위기는 이 의식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보여주었다. 구미권이 근대로 먼저 나아갔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켜온 구미 국가들은 무조건 선망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선진국’들은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신종 바이러스와 고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동양인 혐오’만 드러냈지 공감과 연대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제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잃었습니다. 가령 만성적인 예산부족 등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공공의료는 그 부실함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미국은 어떤가요? 영리 목적의 민영병원 위주 의료시스템은 팬데믹 대응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선진국’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지금까지 드러난 확진자 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시엔엔>(CNN)과 같은 주요 서방 언론사들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조직적 은폐 의혹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예산지원이나,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하는 영리의료, 재난 규모의 은폐와 축소 의혹 등을 과연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당연히 배울 점을 배워야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선진국’들의 민낯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더 이상 ‘선진국’ 신화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이야 말로 진정한 선진국입니다. 두 번째는 미국 신화의 붕괴입니다. 박노자 교수의 말입니다.

“둘째, ‘미국’ 신화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미국,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미국은 정부 주도로 무기 생산을 시급히 확충시키는 등 국가가 산업구조에 개입하여 비교적 능숙하게 재난을 극복했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를 거쳐 미국은 이러한 능력을 거의 상실한 듯하다. 의료설비 부족이 드러나도 국가가 처음에는 생산에 개입하기를 주저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바이러스 위협이 계속 남아 있고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약업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공공의료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절실히 필요한데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한 장기적 대책을 수립하는 대신에,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에 바빴습니다(물론 우리나라의 야당도 그렇죠).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부활절 이후의 경제활동 재개’를 거론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 인명 경시는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반성하지 못하는 미국 지도층의 일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노약자 층과 인종적 소수자의 인명과 인권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하고,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 국가가 되어 더 이상 세계의 ‘리더’를 자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의료진의 방역 대응 및 의료기술 수출, 가령 진단키트와 마스크, 비접촉식 체온계 수출 등으로 한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크게 올라갔지만, 미국의 위상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도 마찬가지죠? 변명과 남 탓을 하는 중국도 믿을 나라가 못됩니다. 모든 것을 숨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시장 신화의 붕괴입니다. 이미 우리는 마스크 배급제를 통해 시장이 아닌, 국가사회주의를 경험했습니다. 박노자 교수의 말을 들어볼까요?

“셋째, ‘시장’의 신화다. 시장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공급할 수 없음을 우리는 여실히 본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이나 소비 진작을 위해 주민들에게 국가가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급진적 주장’으로 인식됐지만, 지금 미국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나라마저도 주민들에게 현금 지원을 할 예정이다. 상당수 항공사 등이 어차피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항공업과 같은 사회 필수 시설의 국유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아직 위기의 초기이지만(2020년 4월 6일 현재), 시장만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개입과 국가 주도의 재분배 정책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따라서 시장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가 공공시스템의 부실을 떠안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제 코로나-19 이후, 과거 신자유주의 시대와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야 될 것입니다. 가령, 1930년대 미국의 뉴딜(New Deal) 정책을 방불케 할 수준의 국가의 경제 개입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여 생산을 통제하고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렇게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함께 공공부문, 그리고 재분배 장치들이 대대적으로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3가지 신화 붕괴에 직면하여 중요한 것은 지도자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환경(4대 강)을 파괴하고 ‘자기 배만 불리는 이’가 되어야 할지, 혹은 ‘국민의 삶은 나 몰라라 하고, 아버지의 이름에 얽매여 과거 군사독재로 회귀하는 이’가 될지를 고민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근혜’라는 최악의 지도자 둘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한국형 복지국가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진정한 복지국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조금 부족하지만 대한민국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노자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공익·공공성 위주의 경제 모델과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할 것이냐의 여부보다는, 한국형 복지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가 사회적으로 핵심적 화두가 될 것이다.”

3. 옥성득 교수의 ‘8탈 4변’

박노자 교수가 거시적 측면에서 AD, 곧 코로나 이후 시대를 3가지로 조망했다면,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한국근대사와 종교사를 가르치는 옥성득 교수는 조금 더 포괄적으로 코로나-19 시대를 전망합니다. 필자는 옥성득 교수의 아이디어를 빌어, 이것을 ‘8가지 탈(벗어남)과 교회의 4가지 변화(8탈 4변)’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1탈. ‘탈오리엔탈리즘’입니다.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선진국 모델로 인해, 이제 서구 우월의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통제와 억압으로 일관한 중국의 국가주의 모델도 실패했습니다.

2탈. ‘탈미국중심주의’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5천~1억명 사망)과 함께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그 왕관(코로나)을 벗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마스크 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재기와 총기 구입 등. 게다가 의료장비가 부족하자 중간에서 의료장비를 실은 항공기를 가로채기 까지 합니다. 이제껏 한국 개신교인들이 꿈꾸던 ‘아메리카 드림’은 깨어진지 오래지만, 이정도로 나락에 떨어질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탈미국중심주의, 탈사대주의의 시작입니다(탈친일파도 포함해서).

3탈. ‘탈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부각했었죠? 자본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기치로 삼습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개입을 통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부정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통해 시장의 자연성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자급자족형 보호무역주의가 등장 할 것입니다. 그 결과 국가간 양극화가 더 극심해 질 것입니다. 여우를 피하니 늑대를 만난 격입니다.

4탈. ‘탈유람선 문화’입니다. 일본이 유람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부두에 정박시켜 감염자가 폭증했듯이, 이제 크루즈 유랑은 물론, 레저 신화 자체가 붕괴될 것입니다. 동시에 해외  여행이 급감할 것입니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레저 문화는 이제 인간의 내면과 사이버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5탈. ‘탈종교’입니다. 이것은 4. 단원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6탈. ‘탈중산층 환상’입니다. 중산층의 계층상승의 신화가 붕괴되었습니다. 또한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부의 양극화가 지속될 것입니다.

7탈. ‘탈실버 문화’입니다. 이것은 안락한 노후 신화의 붕괴입니다. 노인들의 건강이 악화 될 것이고, 수명이 단축되며 인구가 감소될 것입니다. 바이러스도 주기적으로 출현합니다. 따라서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반대로 향락 문화가 발전할 것입니다.

8탈. ‘탈의료직’입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직이 존경은 받으나, 직업 선호도에서는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4가지 변화(4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교회가 건물과 공간의 의미에서 온라인과 시간의 공유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면 주일 성수가 무너집니다.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시간만 공유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물에 대한 중요성도 떨어져, 교회 건축이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두 번째 변화는 구원에 관한 관점 변화입니다. 이제껏 개인과 가족, 개교회 중심의 구원이었다면, 이제 코로나-19 이후에는 사회와 환경도 중요해 졌습니다. 곧 개인구원에서 사회구원으로 관심이 확장된 것입니다.

세 번째 변화는 목회 방식의 변화입니다. 기존 행사 위주와 흥행 실적 중시의 목회 방식이 이제는 치유와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형교회 선호와 집단주의가 붕괴되고, 소소한 일상의 신앙이 부각될 것입니다.

네 번째 변화는 영성에 있어서 외면적 행동주의가 아니라, 안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내면주의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인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 내적인 ‘감정의 기복이 없음’)와 에피쿠로스 쾌락주의 학파의 아타락시아(Ataraxia, 외적 변화에 ‘흔들림 없음’)와 같이, 전쟁과 폭력이라는 외적 위기 상황에 내적으로 침잠하려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이러한 3가지 신화의 붕괴와 세상과 교회의 ‘8탈 4변’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변화와 그 대응을 필자는 ‘9탈 4술 시대의 포노 심비우스의 3사’로 제안하고자 합니다.

4. 9탈 4술 시대, 포노 심비우스의 3사

1탈. ‘탈서구신학’입니다. 1919년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 Barth)의 『로마서 강해』 1판은 19세기 유럽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었고, 자유주의 신학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은 개신교 신학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라면, 코로나-19는 서구신학을 추종하는 한국 신학계 사대주의에 떨어진 폭탄이자, 더 이상 서구신학이 신학의 왕관(코로나)을 쓸 수 없음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2탈. ‘탈미국기독교문화’입니다. 기독교 문화를 미국 문화로 오해하는 한국 개신교에 기독교 공인 후 타락한 로마 교회처럼, 근본주의, 제국주의, 맘몬주의,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기독교 문화는 이제 더 이상 한국 개신교 문화를 주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탈. ‘탈건물신화’입니다. 이제 교회 건축이나 증축 같은 일들은 사라지거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밀집된 아파트 보다 전원주택이나 단독 주택 등이 선호될 것입니다. 바벨탑과 같은 건물 중심주의 신화가 붕괴되는 것입니다.

4탈. ‘탈숫자주의’입니다.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하죠?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여자 친구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분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떻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가 나가느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이것이 그분들이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 분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질 못한다. ‘100억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하고 감탄한다.”

코로나-19 이후 교회는 더 이상 숫자에 집착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염자가 몇이냐? 사망자가 몇이냐? 매일 방송은 감염자와 사망자 통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교회 출석 성도들의 숫자 파악은 이제 끝이 날 것입니다. 대신 숫자에서 ‘영성’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5탈. ‘탈개교회(개인)주의’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인과 개인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따라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관심갖기’를 통해 재난기본소득이라든지 중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습니다. 특히 감염병 대처를 위한 가톨릭이나, 성공회, 불교계의 대처를 보면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라 대응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개교회주의와 개인주의가 무너지고 연대의식과 공감의 영성이 부각될 것입니다.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으로 나갈 것입니다. ‘신 앞에 선 단독자’가 아니라, 신 앞에 선 바울과 모세의 고백처럼, 신 앞에서 ‘공동체’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 9:3)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6탈. ‘탈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부머 리무머(Boomer Remov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꼰대제거기’ 정도로 번역됩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퍼지면서 이 신조어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곧, 코로나-19가 기성세대인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 세대를 제거한다는 말입니다. 베이비부머는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60년 중반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86세대를 뜻하겠지요. 아무튼 10대들은 기성세대가 탐욕에 찌들었으며, 경제를 망가뜨렸고, 지구를 병들게 했다고 비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들은 그냥 앉아 있기나 해!”,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 이렇게 코로나-19를 통해 젊은 세대들은 노인세대들에게 “부머 리무버!”를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기둥 역할을 해왔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시작했습니다. 68만→66만→70만→74만→78만’ 올해부터 5년간 65세 노인이 되는 인구의 숫자입니다. 반면 ‘42만→38만→34만→30만→32만’이라는 숫자는 최근 5년간의 출생아 수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고, 그 중심에는 베이비부머가 있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거나 그들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함께 소멸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7탈. ‘탈신앙페이’입니다. ‘신앙페이(헌신페이)’는 신앙적 열정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열정페이’에서 가져왔습니다. ‘열정페이’는 말 그대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으면서 열정만을 요구한다’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청년 근로자에게 열정을 구실로 저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일을 시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열정페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흔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돈이 중요하냐?”, “젊은 나이부터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는 식입니다.

신학대학원이나 신학교를 입학하는 학생이 줄어듭니다. 차후 목회자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소명만을 요구하고 사명감, 신앙만을 이야기하기에는, 한국교회가 ‘탈베이비부머’가 되기 힘듭니다. ‘탈신앙페이’를 통해 젊은 세대를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교회를 주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8탈. ‘탈사이비 시대의 등장’입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그 뿌리를 쉽게 내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개신교 전체에 이미지 타격을 주었으며 -물론, 교회세습과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 극우 태극기 부대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지 않긴 하지만- 이제 상식적인 사람들은 쉽게 사이비 이단에 빠져 들지 않을 것입니다.

9탈. ‘탈입과 귀르가즘’입니다. 거리에 나서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만히 보면 눈들이 참 이쁩니다. 마스크를 벗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입을 가리고 있어 눈만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들에게 “말은 많이 하지 말고, 들어라!”의 영성을 일깨울 것입니다. 때마침 ‘귀르가즘’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귀’와 ‘오르가즘’의 합성어로 좋은 소리로 인해, 귀로 느끼는 희열을 뜻합니다. 음악과 소리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입을 닫음으로 영성의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이러한 ‘9탈 시대’를 전망하고 이제 대안으로 ‘4술 시대’와 ‘3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술. ‘주술 시대’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가 ‘탈사이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술과 같은 헛된 종교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신교의 이단 사이비가 아니라, 과학이나 불교, 샤먼(shaman, 샤머니즘에서 병을 고치고 공동의 제사를 주관하며 죽은 자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한 신흥종교가 민족 종교부터 기성 종교와 교단에 나타날 것입니다.

가령 유발 하라리의 데이터교와 같이,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뤄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유사과학종교는 물론, 외계인 숭배 종교가 등장할 것입니다. 또한 민중을 혹세무민하는 샤먼 종교가 사라지지 않고 종교심을 자극할 것입니다.

2술. ‘그냥 술’입니다. “먹고 죽자!”라는 것입니다. 세기말의 현상과 같이, 반복되는 바이러스의 위험에, 또한 실업의 위기, 경제적 위기의 상황에, 소외된 개인들이 자기 분열로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두 가지 ‘술’은 대안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대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정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긍정적이기도 한 대안입니다.

3술. ‘기술’입니다. 소위 ‘기술부정론’과 ‘기술결정론’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이러한 바이러스 침투의 참상을 벌였다면 이제 기술을 부정하는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이 가져온 위기 상황에 기술로 온라인 예배, 온라인 회의, 온라인 수업 등 재택근무 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세련된 기술결정론이 인간을 구원할 수 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비대면 네트워크 문화가 강화되어 예배부터 시작하여 종교 문화가 차원이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물론 N번방 사건과 같이 기술의 발전은 늘 항상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타락의 한 측면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지막 ‘술’이 있습니다.

4술. ‘예술’입니다. 코로나-19의 위기에, 이탈리아 주민들은 옥상과 베란다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안교회 시온찬양대/동안 앙상블 역시 지휘자가 개별 녹음을 취합하고 종합하여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합창을 만들었습니다. 위기의 시대에 예술이 구원의 빛을 주는 것입니다. 일찍이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 Heidegger)도 “시 짓기(詩作)를 통해 은폐된 존재의 진리를 보여줌으로, 신이 사라져 버린 이 세계에 신성한 세계를 보여주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술’이 우리를 ‘예수’로 이끌 것이며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사’입니다. 9탈 4술 시대에 포노 심비우스(phono symbious)가 직면할 3사입니다. 여기서 포노 심비우스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곧, ‘스마트폰 없이 살기 어려운 사람’과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곧, ‘지구 위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새로운 인간’의 결합입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포노 사피엔스가 공존의 삶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 깨달음은 세 가지 ‘사’로 정리가 됩니다.

1사. ‘사람’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새로운 인간을 만나야 합니다. 물론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도 공생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속임수와 착취, 혐오와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대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2사. 이렇게 사람을 만나면 ‘사건’이 생깁니다. ‘뺄셈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 Badiou)는 ‘사건’을 기존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어떤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사건을 만났을 때,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현재에 충실한 것이 바로 ‘주체’라고 합니다. 사건에 직면하여 충실함으로 존재하는 주체, 여기에서 진리가 개막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체란 진리의 투사이자, 진리의 효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건의 현재를 부인하는 ‘반동적 주체’도 있습니다. 또한 사건의 현재를 억압하거나 암살하는 ‘모호한 주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노 심비우스는 사건에 충실함으로 공생의 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3사.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사람을 통한 사건을 만나 충실함으로 진리의 효과를 드러낼 때, 그 기본 베이스에 사랑이 있어야 그 진리는 철학적 진리를 넘어 종교적 진리, 기독교의 진리로 승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9탈 4술의 시대에 포노 심비우스의 3사가 코로나 이후 시대의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포노 심비우스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세상입니다.

5.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세상

‘별(astro)’이 ‘없는(dis)’ 상태가 디재스터, 곧 재난(disaster)입니다. 지중해와 에게 해(Aegean Sea)를 향해하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별을 보고 항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별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곧 배가 방향을 잃는다는 말이고, 더 나아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난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죄악 된 이 세상에 희망으로 오신 예수님을 별을 보고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의 재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소망의 빛으로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달빛 동맹을 보세요. 대구(달구벌)와 광주(빛고을)의 아름다운 협력이 포노 심비우스의 길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가 대구 지역은 물론이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것은 재난을 극복하려는, 곧 별을 보려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물리적 거리두기’와 동시에 ‘사회적 관심 갖기’를 통해 대한민국은 이제 지구촌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재난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배가 발견한 저 하늘의 밝은 별이 되어,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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