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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넷째 날 세족 목요일 ‘결단’평화와 개혁 5
최헌국 목사(생명평화교회) | 승인 2020.04.08 17:29

이제 함께 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오늘 저녁 뿐이고 그리고 지금 곧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랑하는 이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한 번 생각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던 제자들과 음식을 같이 나누고, 그들의 발을 씻어 주기로 했습니다.

고난주간 목요일, 내일 성 금요일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눈 것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씻는 것 이었겠습니까? 그것도 왜 하필 ‘발’이었겠습니까?

발을 씻기겠다고 나선 예수의 행동에 제자들은 처음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발 씻는 거야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이 내 발을 씻기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메마른 땅 팔레스타인에서 샌들의 발은 먼지투성이였을 것입니다.

덜렁대던 베드로의 발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더러웠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제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 8)

사실 오늘날 우리들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성목요일, 발 씻김 예절의 참가자로 뽑히면, 발을 씻어 준다는데도, 아니, 발을 씻어 준다니까,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발을 씻고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손을 씻어 준다고 해 보십시요? 여전히 쑥스럽긴 해도, 발을 씻는 것 보다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것입니다.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고, 왠지 좀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곳이 발입니다. 자기 발이지만, 잘 보지 않습니다. 남에게는 더 더욱 보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발을 갑자기 씻어 주겠다고 했으니, 제자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쨌든 제자들은 있는 그대로, 그리 깨끗하지 않은 발을 내밀었습니다. 예수는 하루를 지내며 먼지투성이가 된 제자들의 고단한 발을 보듬고 씻겼습니다. 처음엔 쑥스럽고 민망했을 제자들이었지만 하지만 예수의 손길을 따라 전해진 예수의 마음을 읽으며 제자들의 마음도 차츰 변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 1)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죽을 때까지 사랑한 예수의 마음은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의 발로 전해졌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자신들의 발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 잡고 씻겨 주는 예수의 손길을 통해 제자들이 체험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들 대부분이 어릴 때에 하게 되는 체험, 바로 ‘엄마 체험’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들은 손으로 아이들의 발을 보듬고 뽀득 뽀득 씻어 줍니다. 엄마에게, 아이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 괜찮습니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때에 아이는 자기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받아들여짐”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에 대한 예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체험이 없으면, 예수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이 체험을 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교회라는 공동체가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발을 내놓지 않으려는 베드로에게 단호했던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 8) 그렇게 되면,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라 해도, 실제로는 예수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 체험을 이어 가야만 합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습니다. 천금 같은 마지막 순간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해 준 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것’이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매일 반복하는 행위들입니다. 씻는 것이나 먹는 것과 같이 지극히 평범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언제나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야 겠습니까? 예수께서 구태여 ‘발’을 씻긴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이들이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실 예수의 제자들도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별 볼일 없는 사람들’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그나마 가진 것도 포기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아니면 이젠 별로 갈 곳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십시다. 대학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학생들. 취업준비가 핵심이 되어 버린 왜곡된 교육현실에서 성장한 학생들. 그래서 다른 건 알지도 할 줄도 모르는 학생들. 그렇지만, 도대체 취직이 되지 않습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 해 봐도, 속은 바짝 타들어만 갑니다. 시기를 늦춰 보려고 휴학을 해 보고, 졸업유예가 늘어납니다. 누구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일찌감치 기가 꺾여 버린, 사회의 눈치만 보는 학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당해고를 당한 채, 길게는 십 년씩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입니다. 좀 어떠냐는 안부 인사에 괜찮다며, 씩 웃고 마는 볕에 그은 꺼칠한 얼굴의 노동자들입니다.하지만 속이 타들어 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합니다. 절박한 마음 하나 부여잡고, 크레인으로, 굴뚝으로, 송전탑으로, 전광판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들. 그렇게 해도, 자신들의 간절한 외침을 모른 척 외면하는 잔인한 사회, 각박한 시절을 지켜만 봐야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 생명평화교회 최헌국 목사

그리고 또 오는 16일이면 6주기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되지 않아 거리에서 피켓팅을 하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입니다. 304명의 세월호참사 희생자들! 도대체 왜 한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구하지 않았는지 알아야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했지만 지난 정권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외면과 거부당한 유족들입니다.

이 엄청난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느라 지난 6년 거의 매일 거리를 헤매 온 유족들입니다. 가까스로 구성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지난 정부는 무력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적 참사 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여전히 감추려는 세력들은 방해를 하고 지금의 정부도 약속한 만큼의 의지를 보이지 못해 집권 3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의 그 약속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갈 길은 너무 험하고 멉니다. 유가족들은 억울함과 답답함으로 속이 다 타 버려가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한풀이가 아닙니다. 다시는 내자식들과 같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 그것 때문에, 세족 목요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어떻게 해야 억울함과 절망에 빠진 이들의 발을 씻어 줄 수 있겠습니까?

이들에게 다가 가 함께 하는 것,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우는 것,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는 것. 이들의 보호자가 되는 것. 이를 우리는 연대라 부릅니다. 연대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도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가 가 보듬고 씻어 준 이들이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다시 다른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하는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우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함께 살아가는 그같은 것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대구시민들을 향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그같은 사랑을 펼쳤더랬습니다.

사랑 그것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이루어진 십자가가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우리를 인도 해 주실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십자가가 마침내 우리사회를 생명과 안전으로 가는 사회를 이루어 줄 것입니다. 그같은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 서로에게 어깨가 되어 주십시다. 함께 걸어가십시다." 생의 마지막 저녁,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예수의 속내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일을 다시금 기억하고 되새기는 오늘 세족 목요일 저녁, 우리에게 전하는 당부가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발씻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신 당부를 언제나 기억하십시다. 

특히, 힘들 때, 도대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예수의 이 말씀을 함께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쉴 곳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마음을 오늘 우리 삶에서 다시 살아 내는 길입니다. 그럴 때, 칠흑 같은 어둠 속, 죽음을 뚫고 나온 생명의 빛, 부활이 우리를 비춰 줄 것입니다.

최헌국 목사(생명평화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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