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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대화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80)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4.09 17:33

Q: 주체사상이 기초하고 있는 ‘철학적 원리’는 무엇인가요?_주체사상의 근본원리와 주체신학의 정립

A: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이 밝힌 ‘철학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맑스주의가 물질의 선차성과 세계의 인식가능성을 해명한 조건에서 주체사상이 새롭게 설정한 ‘철학의 근본문제’는 바로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 즉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였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 주체사상의 최고 원리

이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주체사상의 모든 체계를 전일적으로 관통’하고 있기에 ‘주체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원리’라고도 부릅니다. 주체사상이 제기한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해답, 즉, 주체사상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의 철학적 원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힌 새롭고 독창적인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철학은 오랜 역사에 걸쳐 발전하여 왔지만 주체사상 이전에는 그 어떤 철학도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올바로 밝힌 원리를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 이전의 철학은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양분되어, 세계의 시원에 관한 유물론적 또는 관념론적 견해의 테두리 안에서만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논하였기에, 모두가 다 일련의 제한되고 왜곡된 견해를 내놓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물질과 의식의 선차성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던 이전 시기의 철학들에 대해 비판합니다. 이전 시기의 철학들은 그 해답을 관념론에서 구하였건, 유물론에서 구하였건, 모두가 다 일정한 제한성을 면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에 대한 옳은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관념론과 종교 비판

주체사상은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 해명에 대한 이전 시기 철학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관념론’과 ‘종교’를 주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관념론은 세계와 사람의 운명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신비주의를 내놓았다. 관념론의 한 형태인 객관적 관념론은 사람이 초자연적인 정신적 실체에 의하여 지배되는 예속된 지위에 있다고 본다. 객관적 관념론에 범주에 속하는 종교철학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설교하는 종교를 노골적으로 합리화한다. 종교는 전지전능한 《신》,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에 의하면 사람의 운명이 《신》, 《하느님》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며 현실세계에서 사람이 겪는 불행과 고통은 사람이 현실세계에 출생하기 전에 《하느님》, 《신》의 뜻을 어기고 저지른 죄에 대한 징벌이므로 피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람들에 주어진 운명을 응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온갖 감성적 욕망을 버리고 《신》의 의사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야만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설교한다. 원래 종교는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대한 무지와 공포, 특히는 착취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들씌우는 사회적 힘에 대한 무지와 불안에 기초해서 발생한 현실의 왜곡되고 전도된 반영이다. 그것은 근로인민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제도에 순종시키기 위하여 착취계급에게 이용되어 온 사상적 억압의 도구이다.
종교철학은 자연과 사회, 사람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고 여러가지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신》과 동물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 《신》을 인식하고 따를 수 있는 정신과 동물적인 본능적 감성을 가진 이중적 존재로 규정하고 정신적 수양에 힘써야만 신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철학은 이와 같이 사람을 《신》에 의하여 창조되고 지배되는 예속적 지위에 있는 존재로, 《신》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된 숙명적인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고 사람들을 착취제도에 순종하는 노예로 만드는 데 복무한다.
종교철학의 세련된 형태인 객관적 관념론철학은 《신》, 《하느님》 대신에 《리》나 《절대정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 또는 정신적 실체를 내놓고 그에 의하여 자연, 사회, 사람이 창조되고 자연과 사회의 변혁과 사람의 운명이 지배된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운명’을 ‘신’에게 예속된 것으로 설명한다는 이유로 종교와 관념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종교철학의 세련된 형태’인 ‘객관적 관념론’에 대해서는 ‘철학의 탈을 쓴 종교’라고 비판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이나 정신적 실체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람의 예속적인 지위를 《론증》하고 사람들에게 착취제도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할 것을 설교하는 반동적 철학’이라고 타매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주체사상의 종교비판에 직면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람이 종속적인 존재인지 자주적인 존재인지를 답변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속성에 대한 이 대답은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고백을 담게 됩니다. 즉, 하느님이 사람을 노예로 종속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 혹은 하느님이 사람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견해를 이 대답 속에서 담아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노예로 고백하면 하느님이 지배자로 고백되는 것이며,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고백하면 하느님이 해방자로 고백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을 예속하는 지배자 하느님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제도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사람을 억압에서 자유케 하는 해방자 하느님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제도와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려 합니다. 지배자 하느님의 고백 위에 세워진 신학이 ‘노예신학’이라고 한다면, 해방자 하느님의 고백 위에 세워질 신학은 ‘주체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은 결단입니다.

완전히 상반되는 두 고백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지배자 하느님을 고백하면 지배자의 편에 서게 됩니다. 해방자 하느님을 고백하면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서게 됩니다. 주체사상은 종교비판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자연의 주인

주체사상은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 해명에 대한 지난 시기 관념론과 종교의 대답들을 비판하는데 이어, 주체사상이 밝힌 대답, 즉, ‘주체사상이 기초하고 있는 철학적 원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유물론적, 변증법적 입장을 전제로 하면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고찰함으로써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독창적으로 내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체사상이 내놓은 이 ‘철학적 원리’를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부분과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부분으로 나누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모든’의 범주에는 ‘세계’와 자기 자신, 즉 ‘사람’이 포함됩니다. 주체사상의 근본문제 자체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의 문제이기에 그 대답 또한 ‘세계’와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도출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세계’에는 크게 자연과 사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모든’의 범주에는 자연, 사회, 사람이 속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연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따르면 우선, 사람은 자연의 주인입니다. 사람 이외의 자연적 존재들 사이에서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란 없습니다. 사람 이외의 자연에는 다른 것을 지배하고 그것을 자체를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사물현상이란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한 물질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자연발전의 특출한 산물입니다. 사람은 자연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필연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자기를 위하여 통제이용하며 자연을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듭니다. 사람은 오직 자연을 지배하여야 생활수단을 얻을 수 있으며 생존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으며 또 지배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자연을 자기에게 복무하게 만들고 그것을 지배하는 존재는 세계에서 오직 사람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의 유일한 지배자로 되며 자연의 주인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회의 주인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따르면 다음으로, 사람은 사회의 주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생활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적 관계 특히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는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듭니다.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사회는 사람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객관적 조건을 이룬다면 사람은 사회를 주동적으로 형성하고 사회를 자기에게 더욱 더 복무하게 만들어나가는 주체를 이룹니다. 이것은 사회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므로 사람은 사회의 주인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자기 운명의 주인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따르면 끝으로,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운명이란 사람이 일생동안 거치는 생활경로와 이 행정에서 사람에게 차례지는 사회적 처지와 생활형편을 비롯한 일신상의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종교나 관념론의 주장과는 달리, 바로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활은 일정한 자연환경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과정은 자연환경과 사회적 조건을 자기에게 보다 잘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사회적 처지에 놓이게 되며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연과 사회를 얼마나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가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 할수록 자기의 처지와 생활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는 주인은 다름 아닌 사람이므로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 살펴본 이유를 들어, 주체사상은 사람이 자연과 사회 및 자기 운명, 즉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사람,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

다음으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사람이 하는 ‘역할’을 밝힌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람만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따르면 우선, 사람은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연의 사물현상들 가운데는 다른 것을 자체의 요구에 맞게 능동적으로 개조하는 사물현상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주동적으로 개조합니다. 사람은 인식과 실천 활동을 통하여 자연과 사회의 객관적 법칙을 파악하고 이용하며 자연의 사물현상들을 개조하고 기성의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사물현상들을 창조할 수 있으며 낡은 사회관계를 없애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생활수단을 얻을 수도,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여야 생존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세계를 개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함으로써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운명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과정을 통하여 개척됩니다. 사람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정도에 상응하게 사람의 사회적 처지와 생활형편이 개선되고 사람의 운명이 개척됩니다. 자연과 사회의 유일한 개조자는 사람이므로 사람이 자기 운명의 유일한 개척자로 됩니다. 사람의 운명을 개척하는 힘은 오직 사람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사람의 창조적 힘은 곧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의 힘을 이룹니다. 사람만이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자체의 이 힘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함으로써 자기 운명을 개척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만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므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세계를 개조하고 결정하는 존재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따르면 다음으로, 사람은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데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요인을 이룹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객관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객관적 조건을 마련하고 이용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주동적으로 불리한 객관적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전화시킬 수 있고 객관적 조건을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물질·기술적 수단을 만들고 다루는 것도 사람입니다. 물질·기술적 수단들은 아무리 위력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며 사람에 의하여 조종되어야 위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서 객관적 조건을 빨리 성숙시키고 옳게 이용하는가 못하는가가 좌우되며 힘있는 물질기술적 수단을 만들어내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가 못하는가가 결정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데서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작용을 하므로 사람의 운명을 개척하는데서도 결정적 요인으로 됩니다. 이와 같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사람의 운명을 개척하는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과 주체신학

이번 연재에서 살펴 본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주체사상이 스스로 제기한 철학의 근본문제인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대답이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는 주체사상이 제기한 철학의 근본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으며, 주체사상이 해명한 철학적 원리와 관련한 대답을 반드시 짚어보아야 합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주체사상의 모든 체계를 전일적으로 관통하고 있기에 주체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원리’입니다. 주체사상의 근본원리를 회피하고서는 주체사상과 대화할 길이 없습니다.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연재에서 해석 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主體神學), 즉 자주신학(自主神學), 민족신학(民族神學), 민중신학(民衆神學)이 주체사상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 즉 인민대중 중심의 세계관’에서 시작된 주체사상은 전면적인 체계화를 거쳐 발전 완성된 사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창시기와 체계화기를 거쳐 발전 완성된 단계의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의 주체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주체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제는 발전 완성된 단계의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결과물이 바로 주체신학의 정립이라는 것입니다. 주체신학의 정립은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의의를 가집니다. 주체신학의 정립은 우선,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의 통로를 개척함으로써 남의 그리스도인들과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상호 이해를 제고하는 대화를 가능케 하는 공통의 지평을 열어내어 남북 간 사상교류를 촉진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주체신학의 정립은 다음으로, 해석 손정도 목사의 주체신학으로 대표되는 일제 하 애국적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복원해내고, 자주적이고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광맥을 재발견하여 한국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유산을 풍부화 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주체신학의 정립은 끝으로, ‘무신론자들을 위한 복음’의 저자인 체코의 신학자 흐로마드카의 노력으로 대표되는 세계교회 차원의 그리스도교-맑스주의 간 대화의 연장선 속에서, 무신론적 세속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스도교의 진리로 소통하고자 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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