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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출 15:13-21; 고전 15:20-28; 요 20:1-10)부활주일(4월12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4.10 17:00

1.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 20:1)”, 곧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께서 계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요 20:2).”라고 합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 볼까요? 3절부터 8절 말씀까지입니다.

<빈 무덤을 발견한 마리아>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 20:3-8)

베드로와 다른 제자도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9절 말씀은 삽입구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여러분들의 성경에도 괄호가 되어있죠? 성경을 쓰시면서 왜 여기 괄호가 들어가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아마도 차후에 보충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 공동체가 시편 16편 10절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첨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편 말씀을 찾아볼까요?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죠? 따라서 요한복음 20장 11절 이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는 말씀입니다.

괄호(  )에 있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하는 말씀이 이미 복음서 앞부분에 나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눅 8:29).”라는 고백 후에, 예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눅 8:31)”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복음서 본문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요 20:10).”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것입니다. 오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록 부활주일을 맞이했지만, 부활의 기쁨보다는 현실의 걱정이 앞서,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교회의 본질과 기독교 신앙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2. 8탈 4변

코로나19는 세계와 교회의 문화와 질서를 바꿀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한국근대사와 종교사를 가르치는 옥성득 교수는 코로나-19 시대를 전망하며 ‘8가지 탈(벗어남)’과 교회의 ‘4가지 변화’에 대해서 말합니다. 저는 옥성득 교수의 아이디어를 빌어, 이것을 ‘8탈 4변’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1탈. ‘탈오리엔탈리즘’입니다.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모습을 보며, 이제 서구 우월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서양인의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관점)을 벗어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통제와 억압으로 일관한 중국의 국가주의 모델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탈. ‘탈미국중심주의’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5천-1억명 사망)과 함께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그 왕관(코로나)을 벗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마스크 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재기와 총기 구입 등. 게다가 의료장비가 부족하자 중간에서 의료장비를 실은 대형 화물기를 통째로 가로채기 까지 합니다. 이제껏 한국 개신교인들이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m, 미국이 모든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를 준다는 관념)’은 깨어진지 오래지만, 이정도로 나락에 떨어질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탈미국중심주의, 탈사대주의의 시작입니다.

3탈. ‘탈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부각했었죠? 자본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기치로 삼습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개입을 통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부정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통해, 시장의 자연성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지고, 그 대신 자급자족형 보호무역주의가 등장 할 것입니다. 그 결과 국가 간 양극화가 극심해 질 것입니다.

4탈. ‘탈유람선 문화’입니다. 일본이 유람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부두에 정박시켜 감염자가 폭증했듯이, 이제 크루즈 유랑은 물론, 레저 신화 자체가 붕괴될 것입니다. 동시에 해외  여행이 급감할 것입니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내면과 사이버 세계로 관심이 전환될 것입니다.

5탈. ‘탈종교’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4가지 변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6탈. ‘탈중산층 환상’입니다. 이제 중산층의 계층상승의 신화가 붕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위기 이후,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인데, 중산층이 계층상승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부의 양극화, 가난의 대물림 등이 지속될 것이며, 따라서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적 경제 체제가 등장해야 될 것입니다.

7탈. ‘탈실버 문화’입니다. 이것은 안락한 노후 신화의 붕괴입니다. 동시에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반대로 향락 문화가 발전할 것입니다. 노인들의 건강이 악화 될 것이고, 수명이 단축되며 인구가 감소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육식을 멈추지 않는 한, 이러한 위기는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8탈. ‘탈의료직’입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직업 등이 존경은 받으나, 직업 선호도에서는 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4가지 변화(4변)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변화는 교회가 건물과 공간의 의미에서 온라인과 시간의 공유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면 주일 성수가 무너집니다. 더불어 건물에 대한 중요성도 떨어져, 교회 건축이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두 번째 변화는 구원에 관한 관점 변화입니다. 이제껏 개인과 가족, 개교회 중심의 구원이었다면, 이제 코로나-19 이후에는 사회와 환경도 중요해 졌습니다. 곧 개인구원에서 사회구원으로 관심이 확장된 것입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감염병의 등장에 가톨릭이나, 성공회, 불교계의 대처를 보면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라 대응이 천차만별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개교회주의와 개인주의가 무너지고 연대의식과 공감의 영성이 부각될 것입니다. ‘신 앞에 선 단독자’가 아니라, 신 앞에 선 바울과 모세의 고백처럼, ‘신 앞에서 공동체’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모세의 고백을 볼까요?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롬 9:3)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였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세 번째 변화는 목회 방식의 변화입니다. 기존 행사 위주와 흥행 실적 중시의 목회 방식이 이제는 치유와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형교회 선호와 집단주의가 붕괴되고, 소소한 일상의 신앙이 부각될 것입니다.

네 번째 변화는 영성에 있어서 ‘외면적 행동주의’가 아니라, ‘안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내면주의’로 변화될 것입니다.

3. 부활의 순서와 목표

바야흐로 코로나19로 인해, BC(기원전, Before Christ)와 AD(기원후, Anno Domini)의 구분이 바뀌었습니다. 곧,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질병 이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인류의 문화가 변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교회의 문화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죽임의 문화’가 아니라, ‘생명의 문화’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다시 복음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하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제자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부활주일을 맞이했지만, 부활의 기쁨보다는 현실의 걱정이 앞서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보다 고린도전서가 먼저 쓰여 졌습니다. 바울서신을 통한 바울의 부활 신학이 있은 후, 복음서가 부활에 관해 기록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부활 신학은 부활에 관한 세련된 신학이자 해석학이고, 복음서의 기록은 후대의 전기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울이 말하는 부활 신학을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볼까요? 바울은 이렇게 부활의 타당성을 말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고전 15:21).” 매우 정교한 연결이죠? 사망과 부활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태초의 인간 아담과 완전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22절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ὥσπερ γὰρ ἐν τῷ Ἀδὰμ πάντες ἀποθνήσκουσιν, οὕτως καὶ ἐν τῷ Χριστῷ, πάντες ζωοποιηθήσονται 고전 15:22).” 원인과 결과를 아주 세련되게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이 말씀과 로마서 5장 12절 말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Διὰ τοῦτο, ὥσπερ δι’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ἡ ἁμαρτί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εἰσῆλθεν, καὶ διὰ τῆς ἁμαρτίας, ὁ θάνατος ; καὶ οὕτως εἰ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ὁ θάνατος διῆλθεν, ἐφ’ ᾧ πάντες ἥμαρτον).”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original sin)’라는 교리를 만들게 되죠? (물론 헬라어 성서가 아닌, 잘못 번역된 롬 5:12의 라틴어 성서를 참고하여 오류를 범했다고 합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고린도 전서 15장 22절 말씀을 통해 속죄론 교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죄론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기에, 조금 더 살펴볼까요? 속죄(atonement)라는 용어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핵심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분리되었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로 만드는(at-one-ment, 하나가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회복,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신 장소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긴 서문을 가진 고난의 이야기라면, 기독교 신학은 본질적으로 긴 교리적 서문을 가진 속죄론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속죄 받은 이들은, 곧 용서받은 이들은 회복된 관계로 인하여 부활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서신서 본문에서 부활의 순서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3-24)

정리해 볼까요? 부활의 순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고 마지막 때’입니다. 먼저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그 이후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관해 바울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는 때, 모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는 때인 ‘마지막(τέλος)’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은 텔로스, 곧 결말과 종말의 의미도 있지만, 철학에서는 ‘목표’로 쓰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강림의 목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고 그들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볼까요?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5-26)

지난주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모든 원수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뜻하죠? 더 나아가 불의한 제국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후 ‘사망(θάνατος)’ 자체의 멸망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목표가 완성된 다음의 모습을 바울은 이렇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는 것이죠? 공동번역 말씀이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 발 아래 굴복시키셨다’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굴복시키셨다고 할 때 굴복시키시는 그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느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고전 15:27-28)

4.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구약에 나와 있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날 때 경험한 역사였습니다. 구약 말씀을 볼까요?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출 15:13-18)

물론 이것은 일명 ‘모세의 노래’라고 칭하는 승리의 노래입니다. 능력의 팔과 콧김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음을 찬양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는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출 15:17-19)”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노래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심>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 15:20-21)

수요성경 공부 ‘성서의 여인들’ 미리암 편에서,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의 노래가 우리나라 민요 ‘쾌지나칭칭나네’와 같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죠? 미리암이 먼저 선창하면, 여인들이 후렴으로 연이어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미리암이 “여호와를 찬송하라”하면, 여인들이 “쾌지나칭칭나네”하고, 미리암이 “그는 높고 영화로우시다”하면 여인들이 “쾌지나칭칭나네”하는 것입니다. 한번 해볼까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다.” “쾌지나칭칭나네” 이렇게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비슷합니다. 왜냐?

<미리암과 여인들의 노래>

사실 ‘쾌지나칭칭나네’라는 말의 뜻이 “쾌재라(좋구나)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쫓겨 나가네.”라는 뜻입니다. 가등청정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장이죠? 그 ‘침략군의 수괴가 쫓겨나가기 때문에 좋다’라는 노래입니다. 정말 미리암의 노래와 연결이 잘됩니다.

<가등청정의 실제 모습 초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20년 부활절을 기점으로 세계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는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힘자랑하는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 대부분의 선진국이 우리나라 보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 한국 교회가 더 이상 이 위기의 시대에 대안이 아니라, 문제라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이 부활할 때, 불의한 이들은, 허울뿐인 신앙인들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마지막 심판을 경험할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두어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교만의 말을 탄자들을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 혐오와 증오의 말을 탄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말뿐인 사랑을 선포하는 이들 역시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 주님의 심판 아래 놓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목표는 결국 짐승과 같은 제국의 권세를 꺾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면,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입니다. 그 길을 준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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