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율법은 어떤 일을 하는가

칼빈이 구약과 관련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특히 율법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강요』 제2권 제7장에서 해명됩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구약의 백성을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만 소망을 두고, 그가 오실 때까지 참고 견뎌내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칼빈은 1절의 제목을 “모세의 종교는 은혜의 계약에 기초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불어판. II.vii.1)고 달았습니다.

칼빈이 생각한 구약성서 율법의 가치

칼빈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 약 400년이 지나서 율법이 첨가되었다(갈3:17)는 사실을 밝히며, 율법의 독특한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선민을 그리스도에게서 떼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출현시까지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며 그들의 기대를 강화해서, 오래 지체되더라도 지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나는 ‘율법’이라는 말을 경건하고 의로운 생활 원칙을 가르치는 십계명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전하신 종교형태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모세를 입법자로 세우신 목적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말소하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유대 민족의 조상들이 거저 받은 언약과 그들이 그 언약의 상속자임을 여러 번 그들에게 회상시켰다. 마치 그는 그 언약을 부활시키려고 파견된 것 같았다(II.vii.1).

칼빈은 율법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적인 전략의 첫 단계로서 본 것입니다. 칼빈의 율법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루터와 현저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루터는 율법이 죄를 각인시켜주고 죽음과 저주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율법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경원시 했고 복음이 율법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8장에서 확인하겠지만, 칼빈은 율법을 하나님의 구속적이고 섭리적인 계획의 전단계, 예컨대 복음의 하나의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특히 그가 십계명을 해설할 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그들에게 은총을 약속하시고, 은총의 즐거움으로 그들을 끌어 성결에 대한 열성을 일으키려고 하신다”(II.viii.13).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해방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하실 권리가 있는 하나님께 그들이 더욱 열렬하게 헌신하도록 하시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시대는 우리 모든 사람의 영적 노예상태를 예표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하늘 변호자께서 그 강한 팔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의 나라로 인도하시기까지 우리는 모두 영적 포로다. … 옛날에 하나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아 자기 이름을 경배하게 하실 의향으로, 바로의 견딜 수 없는 압박에서 그들을 해방하셨다. 그와 같이 지금 그는 자기 백성이라고 인정하시는 사람들을 모두 악마의 무서운 힘에서 풀어내신다”(II. viii.15).

이렇게 칼빈은 율법에 하나님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율법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재판법, 의식법, 도덕법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재판법과 의식법은 시대착오적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기·처분되었으며(II.vii.14), 도덕법만이 우리에게 적절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따라서 칼빈이 율법을 말할 때, 도덕법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칼빈이 율법에 약속이 포함되어있다고 말한 것은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곧 복음에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갈3:24).

율법의 두 가지 면

그러나 칼빈은 죄된 인간이 도덕적 율법을 도저히 완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율법은 어린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초등교사역할을 하고, 그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어간다고 했고, 그래서 약속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3절 제목은 “율법은 우리를 변명할 수 없게 만들어 절망상태에 빠트린다”고 말합니다.

자, 율법에 약속이 포함되어 있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데, 왜 우리를 변명할 수 없게 만들고 절망상태에 빠트립니까?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단호하게 율법은 복음이 아니고 우리를 저주하는 것이니까 율법을 폐기처분시키고 다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의 복음만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루터는 그런 점에서 단순하고 명료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큰 틀에서 받았고, 율법이 지닌 긍정적인 성격, 복음의 한 형식으로서의 그 기능을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율법의 적극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율법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면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면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예표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이끌고 바라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율법은 그 역할을 백분 발휘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면은, 우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 우리는 죄를 짓고 타락했기 때문에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인식하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써 자포자기하고 절망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그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우리를 변명할 수 없게 하고, 절망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고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그 요구를 결코 감당할 수 없고,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기를, 그러한 온전한 순종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율법의 무력함이 나타납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속된 생명을 받을 수 없고, 다시 순전한 저주에 빠지게 됩니다. “율법의 교훈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한 것이므로, 사람은 제시된 약속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 약속에서 혜택을 얻을 수는 없다”(II.vii.3).

그러나 만약 율법의 요구를 인간이 이룰 수 없다면,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는 조건으로 그렇게 좋은 약속을 하셔서 우리를 조롱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합니다.

율법의 약속에 조건이 붙어 있는 점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행해야만 약속을 얻을 수 있으며 완전한 준수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약속을 주신 것은 허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인애로 우리의 행위를 보심 없이 우리를 받아주시지 않으며, 우리도 복음이 보여주는 그 인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율법의 약속에 아무 결실이 나 결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에, 그 약속은 조건이 붙어 있더라도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베풀어 주시며, 자기의 충만한 친절에 다시 다른 선물을 첨가하신다(II.vii.4).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없는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셨고 자신의 순종을 보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면 영원한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허사가 아니라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제3권 11장 믿음에 의한 의, 곧 칭의를 다룰 때 자세히 설명될 것입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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