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부활절 ‘희망’ -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평화와 개혁 8
양진규 목사(전주새누리교회) | 승인 2020.04.11 23:18

< 1 >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인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이 부활에 대한 논쟁을 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형사취수(兄死取嫂)제도를 근거로 합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여 형수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고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장치입니다. 차례로 죽은 일곱의 형제와 결혼의 연을 맺은 여인이 죽어서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는 질문으로 쑥 들어옵니다. 예수님의 대답의 핵심이 오늘 본문입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하여 사두개인과의 논쟁을 가볍게 일축합니다. ‘부활’은 예수님 이후에만 주요 주제인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도 유대인들에게, 아니 삶과 죽음, 그 이후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온 인류에게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만이 아니라 부활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죽지 않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 2 >

일단,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하겠습니다. 부활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으로 열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 이전에도 부활한 사람이 있다”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보여 주었는데, 거기서 그는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눅 20:37)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의미로 받아드립니다. 이것도 중요한 부활의 이미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고전 15:12-13)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부활의 섭리아래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 3 >

부활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지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섭리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믿고, 예수를 통해 부활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4 >

예수님의 부활은 몸이 다시 사는 ‘소생’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도 소생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엘리야를 통해서 살아난 사르밧 과부의 아들, 엘리사가 살려낸 수넴여인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살아난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베다니의 나사로, 베드로가 살려낸 다비다로 하는 도르가, 바울이 살려낸 유두고 등등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이들의 소생을 구분합니다. 이들은 살아났다 하더라도 그 수명을 다하고 다시 죽었을 것입니다.

▲ 전주새누리교회 양진규 목사

< 5 >

부활절기에 삶과 죽음, 그리고 영생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 부활은 죽은 자가 무덤을 박차고 나와 산 자들의 현장으로 다시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부활과 영생이야기를 하는 것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일차 목표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힘없는 자들의 목숨을 위협하여 권력을 유지 확대합니다. 세상 권력자들의 권력 서열은 사람을 많이 죽인 순서입니다. 징키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이 그렇습니다. 그 외에서 전쟁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전부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들입니다.

평시에도 통치는 죽임을 전제로 합니다. 복종하는 사람은 노예로 삼고, 불복하는 사람은 죽입니다. 성경은 육체적 생명은 누구나 죽는 것이라고 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입니다.(히9:27) 사람의 부활은 육체의 한 번 죽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밀알이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목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영생을 좌우합니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권력자의 위협에 비굴하여 부역하거나, 하나님 대신 그를 섬기거나 하나님 법 대신 세상 법을 따르면 육체는 보존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에는 어긋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몸이 죽더라도 영원히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은 몸이 살아있더라고 이미 죽은 목숨인 ‘좀비’같은 인생입니다.

< 6 >

무엇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계명은 하나로 집약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많은 계명이 있을 지라고 이 한 말씀에 다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유일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랑으로 집약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할 일은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활의 자격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그 모임을 뭐라 부릅니까? 바로 ‘교회’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자격을 얻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습니다. 교회가 살아있으면 예수님의 몸이 부활은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물론 서로 사랑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의미로는 교회라 할 수 없겠지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 다시 사셨습니다. 교회는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인은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부활한 예수님 몸의 실체가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나라가 구성됩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전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몸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면 좋겠습니다.(갈2:20, 롬 6:4-6, 고후 4:10-11)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믿고, 예수님과 같은 아버지의 아들로,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향해서 그리하여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영원한 생명 소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서로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로 충만한 세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과 함께 살아 영원한 사랑의 생명을 누리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양진규 목사(전주새누리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진규 목사(전주새누리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