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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가부활 후의 소망과 삶(베드로전서 1:3-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4.12 16:38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큰 기쁨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정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계신 모든 성도님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또 부활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베드로전서 본문에 나타나 있듯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이후로 나타나는 제자들의 말씀 선포나 초대교회에서 전해졌던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뻐하며 믿고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와 똑같은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이 땅에서의 삶 이후에 천국에 인도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절을 지내며 대부분의 교회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오늘 무엇을 믿고 기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부활을 맞이한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 제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흩어져 있기도 했고, 자신들끼리 모여있기도 했습니다. 엠마오로 향했던 두 제자의 이야기를 보면, 일부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순간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순간에도 자신들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구원만을 바라보았고, 자신들의 생계만을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지위만을 생각했습니다.

ⓒGetty Image

그러던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조금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눈에 자신들의 삶뿐만 아닌 다른 이들, 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본 120명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 중에 그들은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부활의 소식을 자신들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열 두번째 사도 맛디아를 선출합니다.

이들이 자신들 외에 다른 이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내렸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힘을 입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유명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물건과 재산을 모두 가져와 서로 나누며 살게 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살피게 되었고,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와 말씀전파에 힘쓰던 중,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문 앞에서 또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됩니다. 그곳에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에 힘입어 그를 치유합니다.

이후 이들, 예루살렘 교회라 불리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모임은 자신들끼리만 물건을 나누는 삶에서 더욱 확장되어, 자신들에게 나아오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시작합니다. 구제에 더욱 힘쓰기 위해서 일곱 집사도 선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부활의 순간은 우리의 감겼던 눈이 떠지는 순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세상의 많은 이들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어야 합니다.

사순절, 고난주간을 가정예배로 드리고, 각자 개인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지금껏 제가 눈을 감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제 마음속에 담겨있던 생각을 나누며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의 길은 때로는 너무 험난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갑니다. 부모, 형제자매, 연인, 배우자, 자녀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길을 나아갑니다.

우리의 길은 너무나 험난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만 보고 나아갑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중, 어느 순간 한쪽 손이 무거워집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련이라 생각하며 무거워진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앞만 보며 나아갑니다.

험난했던 한 고비를 넘긴 순간에야 내 옆에 있던 이들을 확인합니다. 어떤 이는 묵묵히 내 옆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이를 봅니다. 언제 쓰러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을 잡은 채 쓰러져 있는 이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언제부터 끌려왔는지, 끌린 자욱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다시 쓰러진 이를 바라봅니다. 계속 끌려왔기에 그의 다리는 상처투성이입니다. 내가 꽉 잡고 있던 손목에는 멍이 들어 있습니다.

그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나는 함께 걸어온 게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만 바라보며 이 사람을 끌고 왔구나. 이 사람이 힘든지 아직 여력이 있는지 확인조차 안하고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야 그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이는 혼자 씩씩하게 길을 걸어갑니다. 어떤 이는 혼자 다리를 절며 걸어갑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가족을 모두 등에 업고 힘겹게 걸어갑니다. 어떤 이들은 온 가족이 모두 쓰러져 조금씩 앞으로 기어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몇 명이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들은 늘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가 힘든지, 더 나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지쳤을 때는 함께 앉아 쉬기도 하고 서로의 다리를 주무르며 힘을 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기쁨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우리 옆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더 넓게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내 옆에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끌고가기보다 바라보며 위로하고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영역을 점점 넓혀 나가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곳에 참된 부활이 일어나고,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질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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