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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창조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4.12 16:59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세상은 아직 생명이 자라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고 땅을 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세상은 죽음의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을 품을 수 없었던 바로 이 세상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세상을 생명의 땅이 되도록 하나님은 저 깊은 곳의 샘을 터뜨리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십니다. 생명을 낼 수 없었던 땅의 티끌입니다. 이것은 자주 인간의 덧없음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의 세상의 모습을 보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을 내지 못하던 땅은 죽음이 땅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땅의 지극히 작은 일부이지만, 그 흙은 바로 그 땅 전체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은 그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빚으시고 그의 숨을 불어넣어 그를 산 존재로 만드십니다, 흙덩어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와 함께 땅도 생명을 얻었다고 해야 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땅은 그 생명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죽음’의 지배 아래 있던 땅이 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인간의 창조가 그 해방의 계기이고 상징이며 여기에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Getty Image

인간의 존재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된 존재라고 해도 그의 존재 의의는 결코 축소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땅에 생명을 주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같습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자연의 일부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생명의 상징으로 세우셨고 그 역할을 하도록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 그 책임을 얼마나 잘 수행하였는가는 그 역할을 인식한 다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앞서 말한 대로 사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의 숨을 우리는 우리 속에 갖고 있습니다. 생명은 곧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삶의 형식으로 하나님의 그 숨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땅의 생명을 위해 그 숨 그 삶을 살도록 정해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역할을 역행하며 살 수 없는 자들임에도 이를 망각하며 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땅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긴 생명의 상징임을 잊은 채 오랫동안 땅을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땅의 생명작용을 돕고 그 결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상보적 관계를 깨뜨리고 땅을 점령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땅을 약탈하는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방해하는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땅을 창조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그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어둠에 갇힌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그 어둠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둠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에 갇힌 것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함께 땅도 그 안에 갇혔습니다.

마치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의 땅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땅의 해방을 위해 창조된 사람들도 땅과 함께 어둠 속에 갇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같은 어둠에서 사람과 땅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 죽음으로부터 살리셨습니다.

부활을 나타내는 동사는 수동태입니다. 행위자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도 행위자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희망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말은 약간의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활을 말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죽음 아래 있는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이 죽음의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땅과 사람을 어둠과 죽음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곧 부활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때문에 부활은 세상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제2의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처음 창조와 달리 그의 부활로 완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시작입니다.

다시 살아난 주님께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믿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평화를 전하며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일을 하십니다. 그들을 향해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창조 때 하나님이 흙덩이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던 것과 똑같은 말이 여기 사용됩니다.

다시 사신 주님은 하나님처럼 창조주로 일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로써 죽음으로부터 다시 산 존재가 됩니다. 창조된 아담이 죽음의 땅을 대표하여 땅을 살게 할 사람이 되듯이, 제자들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사람을 대표하여 사람을 살게 할 자들이 될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산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다시 삶은 죽음 아래 있는 세상을 다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소망과 부활의 힘으로 세상의 빛이 되기를 빕니다. 부활의 소식이 질병의 위험과 생태의 위기로 떨고 있는 세상에 평화의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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