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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희년 선포코로나19 이후 경제 위기의 대안
최병학 목사(남부산용교회) | 승인 2020.04.15 16:57

1. 더 강력한 자본주의인가? 급진적 변화의 시기인가?

▲ 코로나19 이후 경제, 약탈자와 희생자가 될 것인가?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J. Assange)는 “코로나 위기는 지금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가능성일까요? 정반대의 가능성을 말하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 Badiou)의 경우, 이번 위기 상황으로 국민이 국가의 통제에 더 강하게 순응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자본주의의 등장’을 경고 합니다. 반면 슬라보예 지젝(S. Zizek)의 경우, ‘세계를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보았습니다. 세계는, 아니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길로 갈까요?

미국을 볼까요? 바디우의 지적대로 움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시장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텍사스 부지사인 댄 패트릭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를 위해 미국인들은 일터에 돌아가야 하며, 코로나에 취약한 노인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보수 언론인들 역시 “각종 폐쇄 조치를 서둘러 해제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들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은 사람의 생명과 자본주의의 생명 사이를 저울질한 뒤, 자본주의를 구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의 시대가 바디우의 경고로 진행될지, 아니면 지젝이 언급한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될지는 다음의 지젝의 말에 그 답이 있을 것입니다.

“취약한 이들에 대한 돌봄과 관련하여서는 ‘로컬’ 공동체들의 도움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적 의료 체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 반면, 자원의 생산과 공유와 관련해서는 효과적인 ‘국제적’ 공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한 국가의 개별적 노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급진적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야만’의 상태로 추락하게 된다.”

지젝은 두 가지를 말했죠? ‘취약한 이들을 돌봄(의료 체계)’과 ‘자원의 생산과 공유(국제적 공조 체계)’입니다. 이를 위해 지젝은 임마누엘 칸트(I. Kant)가 말한 ‘이성의 공적 사용’을 제시합니다. 곧,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적으로 생각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국제적 공조를 통해 나눔과 공유, 공감과 배려를 통해 세계를 급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더 강력한 자본주의가 등장하여 이 위기는 더 큰 위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2. 기본소득: 프페카리아트와 플루토크라트의 공존

지젝이 언급한 두 가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 제시하면, 기본소득과 희년 제도가 될 것입니다. 조금 비약은 있겠지만, 취약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기본 전제로 기본소득을, 또한 자원의 생산과 공유는 성서의 희년 선포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기본소득부터 살펴볼까요?

사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위기도 문제지만,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도 무시 못 할 위기입니다. 특히 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국제노동학의 권위자인 가이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 (박종철출판사, 2014)이라는 책에서 프레카리아트(precariat)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대량 실업으로 소득을 벌 기회가 없고, 해고당하기 쉬우며, 명시된 직무 기술서가 없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진급의 기회가 없고, 임금 인상을 보장 받지 못하며, 집단적 의사 표현의 수단이 없는 계층이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한(precarious)’이라는 말과 ‘무산계급(peoletariat)’이라는 말의 결합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세계는 노동자들이 점점 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위기에 직면하여 우리 사회는 0.1 대 99.9의 사회로 변할 것입니다. 언론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플루토크라트: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열린책들, 2013)라는 책에서 전 세계 상위 0.1퍼센트의 신흥 갑부들을 조명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새로운 세계적 갑부들의 뒤를 쫓아 다녔다. 유럽의 비밀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미국 케이프코드 연안의 마서즈 빈야드나 실리콘벨리 회의실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인터뷰를 나누고, 맨해튼의 권위 있는 저녁 만찬에서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부자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다른 사람들을 호명하는 말이 바로 플루토크라트입니다.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플루토(pluto)’와 권력을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의 모든 것을 다가진 최상층이라는 의미의 조어입니다. 이들은 과거의 부자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혁명적인 경제의 지각변동이 일으킨 파고의 정점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국의 동포들이 아니라, 자신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진 세계적인 동료 부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뉴욕, 홍콩, 뭄바이 등 어디서 살든 간에 계속해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곧, 19세기 산업 혁명과 미국의 서부 개척이 그 시대를 지배한 부자들을 만든 것처럼, 오늘날 기술 혁명과 세계화는 새로운 플루토크라트 집단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경제 분석에 대한 수학적 방법으로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이 있습니다. ‘핵심적인 구성원 20%가 전체 가치의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구성원 80%가 남은 가치 20%를 놓고 경쟁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프릴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파레토의 법칙은 낡은 이론에 불과하고 이제는 0.1대 99.9로 나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 0.1%의 사람들은 부와 권력의 모든 것을 가졌다는 의미로 ‘플루토크라트(Plutocrat)’라고 부른다.”

▲ 반 플루토크라트 운동

이 책은 부제에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도금시대(Gilded Age, 미국 북부와 서부의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는 20세기 초와 같이 플루토크라트들을 위협할 공산주의도 없고, 전 세계 어디서든지 소비자와 노동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플루토크라트들은 중산층들과 타협해야 할 이유도 없고, 하층민들을 배려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프릴랜드의 말입니다.

“신흥 국가들이 첫 번째 도금 시대를 겪고 있는 동안 서구 국가들은 두 번째 도금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일부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혁명이다. 기계의 발명이 농부와 장인의 노동을 대량 수확과 대규모 조립 라인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처럼, 기술 혁명은 육체노동자를 로봇으로, 그리고 사무직 노동자를 컴퓨터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플루토크라트들이 막대한 부를 노력 없이 유지하고 세습이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범죄와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책에서도 인용했지만, 루이스 브랜다이스(L. Brandeis)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갖거나, 또는 소수에게 집중된 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둘 다를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요? 소수에게 집중된 부도 나누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금기시 되었습니다. 그러나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이라는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긴급재난지원금에 관해 실현가능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용해 볼까요? “18세 이상 성인 모두에게 50만원씩 주자. 소득을 잣대로 삼는 데서 생기는 선별의 난점을 풀 수 있고, 성인으로 대상을 제한해 재정부담도 덜 수 있는 방안이다. 또한 재원도달도 ‘사회연대세’를 한시적으로 도입해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1~2% 포인트 높이면 된다.”

이렇게 자본에 잠식되지 않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가이 스탠딩도 이렇게 말합니다. “안정된 삶을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임금노동에서 벗어나, ‘일’과 ‘여가’를 찾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본소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99.9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플루토크라트들에게 ‘사회연대세’를 물려야 합니다. ‘양심적인 부자’를 기대하지 말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법의 구속 안에 있는 부자들의 ‘법 준수 정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프레카리아트와 플루토크라트가 공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21세기 기본소득

기본소득(Basic Income)의 시작에서부터 최근의 스위스 국민투표까지, 기본소득의 알파와 오메가가 담긴 책이 있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두 정치철학자인 필리페 판 파레이스와 정치과학자인 야니크 판데르보흐트의 『21세기 기본소득: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 (흐름출판, 2018)입니다. 파레이스&판데르보흐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화로 인하여 희소한 기술과 가치 있는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계적 규모의 시장이 제공되는 반면, 자격증 취득을 통해 기술을 익힌 많은 사람은 무역과 이민 등 전 세계적 차원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어 이런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독점체들이 약화되거나 축소되고 심지어 해체되고 있으므로, 기업 내부의 암묵적인 보조금들을 통해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들의 소득 창출 능력을 키워줄 여지도 줄어들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고 있으며, 임금 또한 직원들 사이의 생산성 격차에 따라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저축 능력과 상속권을 갖춘 이들은 자본소득까지 얻을 수 있어서 사람들 사이의 소득 불평등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이 책은 총 8장에 거쳐, 왜 우리가 기본소득을 정치적 포퓰리즘이나 진영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지, 일하면서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기본소득이 모든 사람의 자유와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는지를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알려줍니다. 특별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실업, 불평등의 심화를 해결할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들을 이 책을 중심으로 살펴볼까요?

첫째는 ‘경제성장이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업은 극단적인 양극화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기계화로 인한 숙련 노동의 감소 추세는 많은 사람을 저임금과 비숙련 노동으로 내몰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소득이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하는 이들에게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 시민의 구매력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이에 수반되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은 경제성장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구매력을 유지시켜주면 이런 문제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기존 복지시스템의 한계 때문’입니다. 현재의 대다수 복지시스템은 완전 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의 일자리 47퍼센트 정도가 미래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따라서 생산력의 증대에도 사람들이 일자리와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것은 현재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현금으로 소득을 분배함으로써 효율적인 소득 재분배와 실업으로 인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셋째는 ‘빈곤의 함정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복지 수급자들은 일자리를 얻거나 다른 수입원이 발생했을 때 수급 자격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수당을 포기하면서까지 안정성도 없고, 임금도 낮으며, 힘들고 고된 일자리를 찾아 일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한번 수급 자격을 잃게 되면 다시 자격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히 까다롭고, 모욕적이며, 긴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보다는 그냥 수급자로 남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것은 사회의 발전가능성을 저해하며,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정한 기본소득은 일자리의 질을 높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이 있으니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자유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는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넷째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지니고 있는 ‘행정적 비효율성 문제’입니다. 무조건 지급되는 기본소득 제도는 재산 조사나, 부양가족 조사, 노동 능력의 판정, 비자발적 실업의 입증, 부당수급자의 적발 등을 위한 행정적 낭비가 상당히 해소됩니다. 또한 현재의 복지 시스템은 자격이 있는 사람마저도 자신이 해당자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각종 사항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 제도는 별다른 조사나 행정적 조치 없이 간단하게 ‘입금’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수혜자가 될 수 있어, 복지사각지대를 줄이면서 행정적 비효율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이렇게 말하죠? “기본소득은 필수가 될 것이다(It’s going to be necessary)!”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또한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 기업 대표들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이유는 기계 및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인간 노동이 대체되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의 실현만이 전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4. 천국은 포도원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

마태복음 20장에는 천국을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으로 비유한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을 ‘장소’가 아니라, 집 주인이라는 ‘사람’으로 비유한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집 주인의 ‘마음 씀씀이’입니다. 그 마음 씀씀이가 바로 천국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도원 집주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2절부터 볼까요?

▲ 포도원 집주인과 품꾼들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아침 9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낮 12시)와 제구시(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20:2-7)

그리고 품삯은 늦게 온 사람들부터 지불하는데, 처음 온 사람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로마의 은전 단위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주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일찍 와서 열심히, 그리고 많은 일을 한 사람이 더 많이 받는 공로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구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한 데나리온을 준다는 기본 소득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사실 기본소득에 관한 정의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정치 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 혹은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노동요구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인 현금 지급’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바로 그러한 현금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던 것입니다. 불평하는 일꾼들을 뒤로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 포도원 주인의 이러한 기본소득 정책이 바로 천국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루치 일당을 공정하게 나누어 주는 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5. 희년: 자원의 생산과 공유

앞에서 지젝의 아이디어를 빌어, 자원의 생산과 공유는 희년 선포로 연결이 된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구약에 나오는 희년법(레 25:8-13)은 레위기 17장에서 26장까지 이어지는 성결법전(Holiness Code)에 속해 있습니다. 성결법전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법전’입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 희년법은 유대민족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내용을 볼까요?

▲ 희년 나팔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 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레 25:8-13)

처음에는 사회 운동이었던 이 희년법의 정신이 신구약 중간기, 곧 제 2차 성전기를 지내며 ‘사회 개혁’보다는 ‘영적인 차원’으로 변질됩니다. 왜냐하면 희년법의 혁명적인 성격 때문에 실현 불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묵시 종말론 개념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희년은 종말에 이루어질 궁극적인 총체적 회복이니, 현실의 고통은 잠시 참고 기다리자는 의미로 전락합니다. 게다가 종교 지도자들 역시 지금껏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쌓아왔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희년법을 사회적 실천이 아닌 영적 차원의 개념으로 변질시킵니다.

아무튼 희년법의 핵심은 ‘노예해방’과 ‘토지 개혁’, 그리고 ‘조세 개혁’입니다. 모든 주민들에게 자유를 공포하죠?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레 25:10)고 합니다. 또한 빼앗겼던(혹은 저당 잡혔던) 토지도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로 환수됩니다. 이렇게 토지를 다시 가지게 되니, 세금도 낼 수 있고, 따라서 조세 개혁으로도 연결이 되겠죠? 이러한 희년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누가복음 4장에 나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7-21)

따라서 구약성서의 희년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개인적이며 영적인 사건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적이고 사회개혁적인 사건이 됩니다. 또한 희년과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지평과 맥락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애굽, 바벨론, 로마 제국 등의 정치 체제와 맘몬과 바벨탑의 경제 질서를 대체하고 상대화 시키는 급진성과 전복성, 그리고 혁명성을 가지게 됩니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기본소득 역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문제점을 부정하고 상대화시키는 급진성과 전복성을 지닙니다. 이렇게 경쟁을 정당화하며 이윤 추구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경제 질서 속에서 사람들의 자유와 회복을 위한 돌봄과 배려의 장치로 희년법의 정신과 기본소득은 기능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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