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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습 3:14-20; 벧전 1: 3-12; 눅 24:13-35)부활절 둘째주일(4월19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4.17 17:27

1. 가장 절망적인 동행

오늘 복음서 말씀은 어쩌면 가장 절망적인 동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걸어간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절망의 걸음을 걷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바로 볼까요?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3-16)

▲ 가장 절망적인 동행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은, 지난주 말씀처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아무튼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a)” 그러자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눅 24:17b)”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들에 관해 설명해 줍니다. 쉬운 말씀이기에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18-21a)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이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인데,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씀이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의 일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을 발견한 이야기입니다.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눅 24:21b-24)

예수님의 빈 무덤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에 관해서는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중요한 말씀이죠? 예수님의 부활을 예수께서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 곧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줌으로 증명하실 수 있었으나, 오히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관한 말씀을 이야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상황은 계속 진행됩니다. 28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눅 24:28-31)

중요한 말씀이 하나 더 나옵니다. 곧 떡을 떼어 나눌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합니다. 말씀과 떡의 나눔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경험은 말씀을 들음으로, 그리고 떡을 나눔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부활의 경험

현재 코로나-19의 위기는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가능성일까요? 정반대의 가능성을 말하는 세계적인 철학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 Badiou)는 이번 위기 상황으로 국민이 국가의 통제에 더 강하게 순응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자본주의의 등장’을 경고 합니다. 반면 슬라보예 지젝(S. Zizek)의 경우, ‘세계를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보았습니다. 세계는, 아니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길로 갈까요?

먼저 미국의 경우를 한번 살펴볼까요? 바디우의 지적대로 움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시장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텍사스 부지사인 댄 패트릭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를 위해 미국인들은 일터에 돌아가야 하며, 코로나에 취약한 노인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보수 언론인들 역시 “각종 폐쇄 조치를 서둘러 해제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들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은 ‘사람의 생명’과 ‘자본주의의 생명’ 사이를 저울질한 뒤, 자본주의를 구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젝은 이렇게 대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취약한 이들에 대한 돌봄과 관련하여서는, ‘로컬’ 공동체들의 도움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적 의료 체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 반면, 자원의 생산과 공유와 관련해서는 효과적인 ‘국제적’ 공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한 국가의 개별적 노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급진적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야만’의 상태로 추락하게 된다.”

제젝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 곧, 의료 체계를 제대로 확립하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국가들이 의료 붕괴를 걱정합니다. 그리고 의료 붕괴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옵니다. 두 번째로 ‘자원의 생산과 공유’에 관한 지적입니다. 위기의 때에, 자국 중심의 국가 이기적으로 가지 말고,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젝은 임마누엘 칸트(I. Kant)가 말한 ‘이성의 공적 사용’을 제시합니다. 곧,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국제적 공조를 통해 나눔과 공유, 공감과 배려를 통해 세계를 급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더 강력한 자본주의가 등장하여 이 위기는 더 큰 위기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부활절을 지내며, 우리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의 위기에도 선거를 연기하지 않고 제대로 실시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47개국이 선거를 연기했었죠? 온라인 개학도 학년별로 시차를 두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염자 수도 폭증하지 않아 물리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회적 관심 갖기도 여전히 진행 중이죠? 아무튼 훗날 세계의 역사가 2020년대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코로나?, 코리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회복의 소식을, 부활의 기쁨을 전 세계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부활의 경험을 ‘말씀을 들음’으로, 또한 ‘떡을 나눔’으로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 이후에, 좀 더 부활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과 ‘희년’ 제도입니다. 조금 비약은 있겠지만, 취약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기본 전제로 기본소득을, 또한 자원의 생산과 공유는 성서의 희년 선포를 한 국가를 넘어 전체 지구촌으로 확대시키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기본소득과 희년 선포

먼저 기본소득부터 살펴볼까요?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금기시 되었습니다. 그러나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이라는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기본소득의 대략적인 핵심은 이렇습니다. ‘정치 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 혹은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노동요구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인 현금 지급’입니다.

이렇게 행정적인 편의와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또한 안정된 삶을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임금노동에서 벗어나, ‘일’과 함께 ‘여가’를 찾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바로 그 시작이 기본소득이 될 것입니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위기도 문제지만,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도 무시 못 할 위기입니다. 따라서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기본소득은 필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들이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기계 및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지속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천국을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으로 비유한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을 ‘장소’가 아니라, 집 주인이라는 ‘사람’으로 비유한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집 주인의 ‘마음 씀씀이’입니다. 그 마음 씀씀이가 바로 천국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도원 집주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2절부터 읽어 볼까요?

▲ 포도원 집주인과 품꾼들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아침 9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낮 12시)와 제구시(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20:2-7)

그리고 품삯은 늦게 온 사람들부터 지불하는데, 처음 온 사람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로마의 은전 단위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주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일찍 부르심을 받아서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이, 더 많이 받아야 된다는 공로주의를 거부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구제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한 데나리온, 곧 일용할 양식을 준다는 것으로, 기본 소득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불평하는 일꾼들을 뒤로 하고, 포도원 주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러한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는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루치 일당을 공정하게 나누어 주는 천국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두 번째로 희년 선포에 관해 살펴볼까요? 구약에 나오는 희년법(레 25:8-13)은 레위기 17장에서 26장까지 이어지는 성결법전(Holiness Code)에 속해 있습니다. 성결법전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법전’입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 희년법은 모세가 받은 율법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유대민족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내용을 볼까요?

▲ 희년 나팔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 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레 25:8-13)

처음에는 사회 운동이었던 이 희년법의 정신이 신구약 중간기, 곧 포로 귀환 이후인 제 2스룹바벨 성전기를 지내며, ‘사회 개혁’보다는 ‘영적인 차원’으로 변질됩니다. 왜냐하면 희년법의 혁명적인 성격 때문에 실현 불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묵시 종말론’ 개념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희년은 종말에 이루어질 궁극적인 총체적 회복이니, 현실의 고통은 잠시 참고 기다리자.”라는 의미로 전락합니다. 게다가 종교 지도자들 역시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쌓아왔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희년법을 사회적 실천이 아닌, 영적 차원의 개념으로 변질시킵니다.

아무튼 희년법의 핵심은 ‘노예해방’과 ‘토지 개혁’, 그리고 ‘조세 개혁’입니다. 모든 주민들에게 자유를 공포하죠?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레 25:10)고 합니다. 또한 빼앗겼던(혹은 저당 잡혔던) 토지도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로 환수됩니다. 이렇게 토지를 다시 가지게 되니, 세금도 낼 수 있고, 따라서 조세 개혁으로도 연결이 되겠죠? 이러한 희년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누가복음 4장에 나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7-21)

따라서 구약성서의 희년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개인적이며 영적인 사건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적이고 사회개혁적인 사건이 됩니다. 또한 희년과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지평과 맥락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애굽, 바벨론, 로마 제국 등의 정치 체제와 맘몬과 바벨탑의 경제 질서를 대체하고 상대화 시키는 급진성과 전복성, 그리고 혁명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경험입니다.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총체적인 우리 인간의 현실이 변화되고 새롭게 되고 희망이 가득한 새로운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의 경험입니다. 마침 오늘이 4·19 혁명기념일이기도 합니다.

4. 고난의 축복

그러나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듭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당장 기본소득 제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희년 제도의 경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장과 금융자본의 반대가 극심할 것입니다. 또한 서구 선진국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부활 신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5-6)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은 공동번역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구원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견디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σωτηρίαν ψυχῶν)’을 받음이라.”(벧전 1:7-9)

믿음의 결국을 영혼의 구원, 곧 ‘소테리안 프쉬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프쉬콘(영혼)은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화의 프시케(Psyche)라는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부인이 프시케입니다. 뜻은 ‘호흡’, 곧 ‘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호흡은 ‘생명’을 뜻합니다. 차후 ‘마음’이나 ‘영혼’이라는 의미도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의 결국은 호흡, 곧 생명의 구원입니다. 당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의 구원 선포는 부활 신앙에 기초하여 큰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프시케는 차후 지상의 생을 초월한 영혼 개념으로도 쓰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도 쓰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의 박해로 죽어가는 성도들에게 궁극적인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려 주실 은혜에 대하여 말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깊이 연구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속에 계신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신 대로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의 이런 사역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한 진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도움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분에게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천사들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벧전 1:10-12)

핵심은 이렇습니다. 비록 선한 일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 뒤에 올 영광을 보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지금의 생명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궁극적인 종말의 날에 영원한 승리를 얻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이 보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명성과 칭찬은 구약 말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5.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오늘 구약의 본문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습 3:14).” 왜냐하면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습 3:15)”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자, 회복의 은총이 임하는 날입니다. 복음서의 의미로는 부활의 날이며 사도 베드로의 서신을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임할 구원의 날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그 날에 관해 조금 더 보충해 줍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6-17)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습 3:18).”라고 말합니다. 여기 ‘절기’라고 되어 있지만 현대인의 성경이나 공동번역에는 ‘명절’로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쁨의 날이죠.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면 그 절기나 명절이 짐이 되고 수치가 됩니다. 현대인의 번역으로 18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볼까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서 명절에 대한 근심을 제거하겠다. 이것이 너희에게 짐이 되고 수치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악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은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9-20)

앞서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그리고 복음서의 두 제자도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동행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과 떡을 나눔으로 경험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절망으로 떠나왔던 길을 희망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에 관하여 말하게 됩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 24:33-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날까지 힘껏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관념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질서를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는 사랑입니다. 생명 존중의 사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위기로 이 사랑의 실천은 명백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과 희년입니다.

따라서 엠마오로 가는 절망적인 동행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여 부활 신앙으로 똘똘 뭉쳐, 새로운 세상을 위해 한 걸음 더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희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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