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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忘却)을 종용(慫慂)하는 시대에서4월은 잔인한 달
임석규 대표(기독청년학생실천연대) | 승인 2020.04.18 18:27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장이다. 433행과 50개 되는 작가의 주석이 시를 어느 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게 만들지만 이 짧은 문장은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망각의 눈으로 덮인 대지’를 다시 녹여 ‘그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는’ 4월의 그 따뜻한 봄을 어찌하여 작가는 잔인하다고 하였을까. 동 · 서양 가릴 것 없이 다시 떠올리기 싫은 것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임을 저 짧은 한 문장이 압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천 년이 넘어가는 역사 속에서도 기억하기 괴로운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유독 필자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국내 근 · 현대사를 돌아보면 정말로 짧은 시간에 괴로운 역사적 사건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에 강점당하던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기록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사건들의 공통점은 사람마다 각각 다양하게 제시를 할 수 있지만 필자는 그 사건들의 피해자들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내 온’ 지극히도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역사 속에서 일어났지만 이 원고를 집필하기 시작한 시간이 4월이기에 4월에 일어난 아픈 역사를 시간 순으로 돌아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좌와 우의 이념대립이 심화된 시기에 제주도에서 수많은 양민들이 공권력에 의하여 학살되었던 4 · 3 사건, 이승만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시위를 전개했고 그 가운데서 김주열 열사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상 당했던 4 · 19 혁명,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로 인해 소홀히 된 안전망과 박근혜 정권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까지…. 다시 기억하기 괴로우나 한국의 모습을 바꿔냈던 가슴 아픈 역사였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 중 하나를 찾아보자면 당시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 사건을 잊으라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강요하였단 점이다. 4 · 3 사건과 4 · 19 혁명 당시 이승만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선량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면서 매카시즘을 통하여 사람들의 반발을 강제로 억눌렀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광풍에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의 깃발 아래에서 투쟁했던 당시에도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진압하고 구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업에서만 아니라 공직사회에서의 윤리가 무너진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박근혜가 보여줬던 모습은 자신을 따르는 극우 언론들과 이익집단들을 통해 유가족과 연대하는 시민들을 악랄하게 억압하던 사악함뿐이었다.

이전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했다. 그 억압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었고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 저항하였다. 그 저항은 성공하였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더 이상 망각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는 망각을 너무나도 쉽게 종용하고 있다. 여전히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들을 위압하고 갖은 회유책으로 망각을 쉽게 종용하고 있다.

모순의 수레바퀴를 잠시 세웠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그 굴림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음악 가사에서는 ‘그 누구도 이제는 이 시대의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양산되지 않게 하려면 이러한 흐름이 멈추지 않을 거라고 우리에게 속삭이는 종용을 이제는 깨야 한다. 다시 그 누구도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임석규 대표(기독청년학생실천연대)  rase21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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