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칼빈은 도덕법의 세 가지 기능과 용도들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용법은, 하나님께서는 오직 의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인간의 불의를 드러내고 깨우치며 결국 정죄하는 기능입니다. 죄의 실재를 일깨워주고 따라서 구속의 근거를 준비하게 하는 능력입니다(II.vii.6).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 앞에 설 때, 제1권 1장 3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자신의 죄된 진상을 보게 됩니다.

율법의 정죄 기능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이 율법의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해서 주저앉거나 용기를 잃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확실히, 율법은 악인들에게는 공포심을 일으켜주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율법을 아는 것이 다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거나 멸망하게 버려두시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32)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이 말은 “그들이 자기의 힘에 대한 어리석은 견해를 버리고 자기는 다만 하나님의 손이 받들어 주시기 때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벗은 몸과 빈손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피난해서 완전히 그 안에서 쉬며, 그 안에 깊이 숨으며, 의와 공로를 얻기 위해서 그 자비에만” 매달리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자비는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다”(II.vii.8).

도덕적 혼란 억제와 순종하게 하는 기능

율법의 두 번째 기능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도덕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입니다(II.vii.10). 칼빈이 가장 중요하고 율법의 중심적인 목적에 더욱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 율법의 세 번째 기능은 루터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기능입니다. 셋째 용법은 마치 채찍이 게으른 나귀를 재촉하는 것과 같이 신자들을 격려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기능입니다.

▲ 루터와 칼빈은 율법의 3가지 기능에 대해 인정하지만 율법 제3 기능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였다. ⓒGetty Image

칼빈은 이 용도가 하나님의 영이 이미 그 영혼 속에 사시며 주관하시는 신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날마다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2권 2장 27절에서 확인하였듯이 그들이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의를 향해서 아무리 정성껏 노력하더라도, 무관심한 육이 짐이 되어 제대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율법이 마치 게으른 나귀를 재촉하는 채찍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다윗이 율법을 찬양했을 때 바로 이 용도에 대해 언급했다고 말합니다(II.vii.12).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19:7-8).

마찬가지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 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칼빈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톨릭교도는 물론이고 루터교도들조차도, 칼빈의 이런 주장은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종종 칼빈이 “기독교적 율법주의”의 어떤 형식을 조장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율법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차이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여기서 율법에 대한 칼빈과 루터의 서로 다른 입장을 잠시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루터는 율법을 일반적으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목록에서 율법은 언제나 죄, 죽음, 그리고 악마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을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타락한 창조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한 방편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고려합니다. 율법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견해차는 “죄와 구원”에 대한 루터의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또한 루터와 칼빈의 성경관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칼빈이 ‘전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했던 것을 앞에서 밝혔습니다.

개혁교회의 ‘성경원리’는 바로 이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전체 성경이 그 충만함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어떤 특정한 부분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 안에 있는 또 다른 성경’(canon in the canon)을 주장하였습니다.

예컨대, 루터는 ‘전체 성경’에서 하나의 특별한 주제,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칭의론’으로 환원을 시킨 것입니다. 그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체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칼빈은 루터와 달리 한 특정한 주제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서 보다 자유롭게 전체의 성경이 그 충만함에서 말씀하는 것을 듣고자 했고, 그로써 ‘율법’에서 복음의 형식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칼빈은 종종 율법을 “사랑의 원칙”(II.viii.49)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더 이상 인간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조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율법으로 신자들에게 다가옵니다. 율법은 이제 신자의 삶을 독려하는 규범과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이른바 개혁파의 “율법의 제3 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관하여 루터파와 개혁파가 전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루터파와 개혁파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개혁교회의 독특한 특징은 그 세 번째 용법에 대한 강조에 있습니다. 칼빈과 루터는 율법의 처음 두 가지 용법들에 대해서는 같은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율법의 세 번째 용법을 가르치지 않았고, 그것은 칼빈과 개혁교회에 의해서 강조되었습니다.

분명히 칼빈은 율법을 신자들이 주님을 두려워하도록 붙들어 두기 위한 “고삐”, “의의 완전한 기준” 등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은 복종 이외의 희생은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1) 바로 이것이 칼빈을 비판하는 자들이 ‘율법주의’라고 부른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주의는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 것, 즉 루터가 ‘율법의 의’로 배척했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칼빈은 인간이 해야 할 것에 관하여 질문하는데, 그가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에 이 질문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복음을 주신 분이 또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믿음 안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율법은 의지를 위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 신학에서 기독교윤리는 루터가 시도했던 것처럼 믿음 위에 직접적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위에 확립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어진 은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의 근거가 되며, 일종의 메아리와 같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십계명을 제3부 “감사의 생활”에서 다루는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의 구조는 개혁교회의 윤리가 “감사의 윤리”라는 것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혁자들의 “오직 은혜로만”이 인간의 모든 업적(인간들의 노동과 성취)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인간의 책임적인 행위들을 활성화시켜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혁교회 율법관을 향한 오해

우리는 『기독교강요』 2권 3장 12절에서 칼빈이 바울의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을 주석하면서 교황주의자들과 어떻게 논쟁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전적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는 바울의 고백을 칼빈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 말씀은 인간의 일, 노력과 업적을 결코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바울의 진솔한 신앙고백을 칼빈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강제에 의해서 강요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기꺼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감사의 윤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는 칼빈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루터파가 칼빈과 개혁파를 향해 던진 “율법주의”라는 비난은 17, 8세기 이후 등장한 소위 칼빈-정통주의자들이라면 모르지만, 칼빈의 가르침에는 결코 해당하지 않는 비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과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도덕적, 윤리적 당위성이나 율법적 강제 때문이 아니라, 기쁜 마음에서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일은 괴로운 일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일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무거운 멍에,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의무로 부과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섬김이 무엇인지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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