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어주신다는 이 말씀은 큰 위로일 수도, 깊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벼랑 끝 절박한 순간에 이 말씀은 버티고 견딜 힘이자 소망이 됩니다. 그러나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렸는데 받지도 찾지도 못하고 열리지도 않았을 때, 그만큼 큰 상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리도 간절히 구했는데 도대체 왜 주시지 않았을까? 받지 못한 상처를 더욱 아프게 찌르는 물음입니다. 이 약속을 의심하면 응답을 놓칠까봐 더 굳게 믿으려 애쓰고 애썼는데 도대체 왜?

찬찬히 이 말씀을, 그 앞과 뒤까지 잘 살펴봅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구한 그대로, 찾은 그대로 주신다는, 두드린 그 문을 열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문이 열리고, 무엇을 받고, 찾을지는 정해 있지 않은 약속입니다. 다만 한 가지 믿음만은 일깨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마음, 그 이상으로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신뢰입니다. 비유 그대로 부모라면 자식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뱀을 달라고 한다고 뱀을 주는 부모가 부모이겠습니까. 사랑은 달라는 그대로가 아니라 가능한 한 좋은 것을 주려합니다.

▲ 십자가 성 요한

절박한 문제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하나님 곁에 계실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저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해주고 계시겠구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신 몸 아픈 것을 너무나 미안해하고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그 사랑은 분명 깨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을까? 죽음조차 꺾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이 인간의 의지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작은 사랑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의지로 가능하겠습니까. 그 사랑의 근원은 헤아려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그 간절함보다 더 간절히 원하고 계시겠구나,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으시겠구나, 주지 못할 때 그 누구보다 아프시겠구나 깨닫습니다.

중세 신비가 십자가 성 요한이 그린 낙서 같은 십자가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올려다보는 시점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리스도의 등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내어주는 시점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부르짖지만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선을 담았습니다. 순교했던 제자들, 신앙인들을 구할 수 없었던 그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해도 그 사랑만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용서할 수 없다고 증오하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 역시 상처 입은 사랑으로부터 끓어오릅니다. 중단할 수 없는 그 사랑은 어디에서 흘러옵니까. 그 사랑이 분명하게 느껴질수록 그 근원이신 분을 결국 신뢰하게 됩니다. 자신을 다 내어주고 싶은 그 사랑의 근원을 믿게 됩니다. 자신보다 더 아파하고 더 괴로워하고 있을 그 사랑을 믿게 됩니다. 들어주고 싶어도 어쩌지 못하는 아픔을 알기에, 자신의 책임이 아니면서도 들어주지 못해 누구보다 미안해하실 그 사랑을 향해 불러봅니다. “하, 나, 님”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