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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자주성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의 형상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83)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4.30 17:46

Q: 주체사상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무엇이라 하나요?(2)_사람의 ‘자주성’(2)

A: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자주성’을 주체사상이 창시된 삶의 자리와 관련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지난 연재에 이어 ‘자주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체사상이 창시된 이후, 전일적인 체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자주성’에 대해서도 일련의 이론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주성과 자유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자주성’을 본질적 속성의 하나로 가지고 있는 존재, 자주적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주체사상이 내놓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자주성’은 온갖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살려는 사회적 인간의 성질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사람은 세계에 속한 다른 생명물질들과는 달리,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며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고 자연과 사회 및 자기 운명의 참다운 주인으로 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는 요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요구를 실현해나갑니다. 바로 이 점에서 ‘자주성’은 ‘자유’와 구분됩니다.

‘자유’란 일반적으로 그 어떤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철학적으로는 객관적 필연성의 인식에 기초한 그 지배를 의미입니다. 사회정치적으로는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착취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이에 비해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자주성’의 개념은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난 ‘상태’ 뿐 아니라,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요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의 성질까지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자주성을 가진 존재’라는 표현이 ‘자유를 지향하고 그것을 위하여 투쟁하는 존재이며 자유를 실현한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면,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은 ‘이미 이러저러한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난 존재, 자주성을 실현한 존재’라는 뜻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주성’의 개념은 ‘자유’라는 개념과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차이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며, 자유의 개념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자주성’의 개념은 또한 ‘독자성’의 개념과도 공통성과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성’이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자기 문제를 자신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서 자기의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성질’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독자성’이란 개념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자주성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자주성’은 단순히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는 성질과 함께 ‘온갖 구속과 예속을 반대하고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는 성질’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주성’이란 개념은 ‘독자성’이란 개념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이와 같이, 주체사상이 내놓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자주성’의 개념은 ‘자유’라는 개념과 ‘독자성’이란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독창적인 개념’이라고 합니다.

자주성의 표현 방식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회적 인간의 속성으로서의 ‘자주성’은 객관세계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성질이므로 사람이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람이 관계 맺는 대상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이며, 끝으로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주성’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로 됩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개조하고 정복하여야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자주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여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이란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자연필연성을 인식한데 기초하여 그 맹목적이며 파괴적인 자연력을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 성질’입니다.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존은 자연과의 물질대사에 의하여 유지되는 만큼 사람은 자연의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법칙의 작용을 통제이용하여 인간생활에 불리한 자연을 인간생활에 유리한 자연으로,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 자연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여러 가지 자연재해를 막지 못하고 사람의 생사운명이 전적으로 자연필연성에 의하여 좌우된다면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주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인식이용하고 자연을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의 하나를 이룹니다.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은 다음으로, ‘생활수단을 더욱더 풍족하게 생산하고 생활을 향상시켜나가는 성질’입니다. 사람은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수단을 자연으로부터 획득합니다. 사람이 생활수단을 넉넉하게 생산하지 못하고 의식주에서 부족을 느끼는 동안은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생활수단의 조그마한 부족도 느끼지 않게 되어야 자연의 구속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활수단을 풍족하게 생산하고 생활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의 하나를 이룹니다.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은 또한,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고 노동을 헐하고 능률적인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성질’입니다. 노동은 자연을 개조하는 사업이며 생활수단을 창조하는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노동을 힘들게 한다는 것은 곧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고 필요한 생활수단을 풍족하게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는 정도는 사람이 자연의 구속을 극복할 정도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의 발전수준을 표시하는 시금석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하고 노동을 더욱더 헐하고 능률적인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의 하나를 이룬다.

‘사회’와의 관계에서 ‘자주성’은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로 됩니다.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살며 활동하려면 자주성을 짓밟고 억누르는 낡은 사회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낡은 사회제도를 없애고 사람들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사회제도를 세워야 인민대중은 사회와 자기운명의 참다운 주인으로 될 수 있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은 무엇보다도, ‘한 계급, 한 민족이 다른 계급, 다른 민족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착취를 반대하고 사회성원들의 완전한 사회적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적 관계를 세우고 발전시켜나가는 성질’입니다. 적대적 계급사회에서는 절대다수의 사회성원들이 소수 착취계급에 의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예속당합니다. 그리고 민족들 사이에도 지배와 예속,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착취제도를 없애며 나아가서 노동계급과 농민의 계급적 차이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를 없애며 사회성원들의 완전한 사회적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사회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의 하나를 이룹니다.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성질’은 다음으로, ‘사회발전의 객관적 법칙을 인식한 데 기초하여 사회생활을 계획적으로 관리 운영해나가는 성질’입니다. 사람은 사회를 변혁하고 발전시키는 주인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회발전법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조절통제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관리운영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연발생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의 객관적 법칙에 예속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회발전법칙을 인식 이용하여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관리 운영하고 계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사회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의 하나를 이룹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주성’은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건전한 문화를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심하여 활동하는 사람의 성질’로 됩니다. 사람은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건전한 문화를 소유하여야 자기 운명을 자신이 틀어쥐고 개척하여나갈 수 있으며 자주적인 존재로서 참답게 살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기의 활동 방향과 방도를 스스로 선택결정하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실현해나가야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자주적인 존재로 됩니다. 사람은 자기의 요구에 맞게 독자적으로 결심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되며 환경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작용하며 그것을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갑니다. 그런데 사람의 판단과 결심 및 활동에서 독자성이 보장되고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으로 되기 위한 필수적 전제로 되는 것은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건전한 문화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가져야 사회적 존재로서의 요구와 이익을 자각하고 그에 맞게 그리고 독자적으로 자기의 활동방향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스스로 활동할 수 있으며, ‘건전한 문화’를 가져야 자연과 사회의 발전법칙에 맞게 행동 방향과 방식을 결정하고 활동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건전한 문화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심하며 활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특징을 이룹니다.

‘자주성’의 이상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은 그것이 ‘현실적인 사회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속성’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체사상이 내놓은 인간의 ‘자주성’은 자연과 사회 속에서 살면서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을 반대하고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서 옹호하고 실현하는 ‘현실적 인간의 실제적인 자주성’이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자주성과 하나님의 형상 교의와의 대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자주성의 ‘구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밝혀낸 사람의 ‘자주성’은 공리공담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회적 인간의 실제적인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체사상은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미처 포착해내지 못하였던 사람의 실제적인 속성을 ‘과학적’으로 포착하여, ‘사람’이라는 존재에 관한 ‘진리’를 밝혀내었다는 진리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의 이러한 진리주장에 대하여 응답하고 대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사람의 속성’에 관한 진리주장은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서 고백되는 ‘하느님의 형상’과의 비교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창조신앙’이 주체사상의 창시과정에서 ‘사람의 자주성’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면, 이제 전일적으로 체계화 된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주체사상이 주장하는 ‘사람의 속성’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재발견하는 작업은 통일시대 주체신학의 과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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